[인터뷰] '치즈인더트랩' 박해진, 굳이 고됨을 택하다
2016-02-12 12:52
배우가 캐릭터 이름으로 불리는 귀한 경험은 많은 경우 신인에게 국한됐다. ‘꽃보다 남자’ 구준표를 연기한 이민호나 ‘하늘이시여’에서 왕모를 맡은 이태곤 등 역할로 첫인상을 남긴 배우는 대개 큰 인기를 끌고 나면 본래 제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박해진은 어떠한가. 데뷔작인 2006년 KBS2 ‘소문난 칠공주’에서 이태란을 짝사랑하는 연하남(성이 연이요, 이름이 하남이다)으로 출연해 “연하남”으로 불릴 때만 해도 여느 배우가 그렇듯 금세 제 이름을 찾을 줄 알았다. 하지만 2014년 시청률 50%에 육박한 KBS2 ‘내 딸 서영이’ 때에는 “서영이 동생”으로 불리더니, tvN ‘치즈인더트랩’이 방영 중인 지금, “유정 선배”로 인지되고 있다. 박해진이라는 이름 석 자를 아시아 전역에 떨친 이후에도, 기어코 캐릭터가 되고야 마는 그다.
3일,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 위치한 카페에서 박해진을 만났다. 무려 10일간 50여 명의 기자와 일대일로 만나 인터뷰하는 고된 일정을 자처했다. 피하고자 한다면 핑계거리는 많았다. 그보다 인지도가 낮고, 경력이 적은 연기자도 라운드 인터뷰(2명 이상의 기자와 동시에 진행하는 인터뷰)를 하는 요즘인 데다 국내는 물론 베이징, 발리 등 그의 빠듯한 일정을 모르는 기자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제 방식이에요. 힘든 것과 덜 힘든 것 중에 선택해야 할 때는 힘들더라도 좋은 결과가 나오는 쪽을 택하는 것이요. 반대쪽을 고른다고 편한 게 아니라 덜 고될 뿐이라면 조금 더 고되더라도 좋은 결과를 내자는 식이죠. 사실 매 순간 갈등의 연속이죠. 하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 있어요. 고된 쪽을 택하는 것은 이미 체화됐거든요.”
“캐스팅 제의가 여러 번 왔고 여러 번 거절했죠. 드라마화되기에 적합한 작품인가 싶었거든요. 현실의 축소판으로 봐도 될 만큼 다양한 인물이 나오고 긴 호흡으로 그들의 미묘한 심리를 세심하게 다루는 작품을 16부작으로 다 담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죠. 제가 유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요.”
“‘잘해야 본전’이라고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죠. 힘을 주지 말아야 하고, 노골적으로 티가 나지 않으면서도 뉘앙스는 풍겨야 했죠. 대학생의 풋풋함을 유지하면서 말이에요.…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박해진은 습관대로 행동했다. ‘치즈인더트랩’ 유정은 완벽한 겉모습 속에 서늘한 본성을 숨긴 인물. 섬세한 캐릭터를 정교하게 표현하는 것이 극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한 그는 모든 장면을 두 가지 버전으로 촬영하는 고된 길을 택했다. 결과는? 캐스팅 단계부터 왈가왈부 잔소리를 늘어놓았던 원작 팬들, ‘치어머니’(‘치즈인더트랩’과 시어머니의 합성어)에게 단번에 합격점을 받은 것은 물론, 드라마 역시 매회 자체 최고시청률을 숨 가쁘게 갈아치우며 동사 월화드라마 중 역대 최고 히트작이 됐다.
“‘치즈인더트랩’이 박해진의 배우 인생을 대표하는 ‘인생작’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사전제작 작품이라 나도 시청자가 돼 다음 회차를 기다리고 있는 입장이다. 종영하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라며 진중하게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기대 이상으로 사랑받고 있는 것은 맞다. 기쁜 만큼 부담과 걱정도 크다. 내 다음 걸음이 한결 무거워졌다.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하겠다. 유정 선배에 대한 여운을 즐기며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끝으로 박해진은 “드라마에서는 편집돼버렸지만, 유정은 아버지의 억압 속에 자라 아픔과 상처를 몸속에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분노조절장애를 지닌 아버지가 그 습성이 대물림 될까 봐 유정에게 감정을 억누르게끔 가르쳤다. 외롭고 결핍 있는 캐릭터”라면서 “홍설(김고은)을 통해, 또 백인호(서강준) 등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유정이 성장하는 모습을 잘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