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직속 막강 파워
2016-02-11 06:00
1988년 12월 12일. 5공비리특별수사부가 본격 가동됐다.
같은 달 6일 취임한 신임 김기춘 검찰총장의 직속 수사조직이었다.
기존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 핵심 수사세력을 필두로 대검찰청 연구관, 각 지검의 내로라하는 특수부 검사들로 구성된 5공비리특수부는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5개반으로 구성된 특수부는 최종적으로는 20건을 분할해 맡아 수사를 벌였다.
1989년 1월 31일 51일간의 수사를 마무리한 특수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인척 10명과 장세동 전안전기획부장, 이학봉 전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등을 사법처리했다. 47명이 구속됐고 29명은 불구속 이었다.
1981년 설치된 중수부는 ‘공직자 비리수사처’로 검찰총장이 직접 관리했을 정도로 중요한 조직이었다. 당시 막강한 위세를 과시했던 공안부와 함께 검찰 조직의 양대 핵심 부서였다.
중수부는 청와대나 검찰총장의 하명사건을 수사하면서 5공비리는 물론 이철희·장영자 6400억원 어음사기사건, 율곡비리,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 이용호게이트 등 굵직한 사건을 맡아왔다.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전직 총리 3명(김종필, 박관용, 김원기), 대통령 아들 2명(김현철, 김홍업)과 대통령의 형 2명(노건평, 이상득), 대통령 동생 1명(전경환)을 기소했다.
사법처리된 재벌 총수도 10명을 훌쩍 넘는다. 2000년 이후 기소된 전현직 국회의원, 고위공직자, 지방자치단체장만 100명에 육박한다.
심재륜 전 중수부장은 정보기관 직원으로부터 미행당하면서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 구속을 관철해 '국민 검사' 소리를 들었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심 중수부장에게 여러 경로를 통해 불구속해 달라는 의사를 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2003~2004년 안대희 당시 중수부장이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노무현)과 야당 이회창 대선 후보의 대선 자금을 파헤치자 노 전 대통령은 "요즘 안 부장 때문에 죽을 맛"이라고 속내를 토로한 것으로 전해진다.
궃은 일도 적지 않았다. 2000년 주가조작 등으로 수사받던 이용호씨와 관련한 수사정보가 유출되면서 '이용호 게이트'로 비화됐다. 수사기밀 누설 혐의로 신승남 전 검찰총장과 김대웅 전 중수부장이 기소됐다.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조사했으나 20일 넘게 사법처리 결론을 못 내는 바람에 결국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낳은 것은 중수부 폐지의 서곡을 알리는 사태였다.
중수부 폐지의 또 다른 결정적 계기는 2012년 11월 30일 한상대 총장의 퇴진 문제를 놓고 벌어진 검란(檢亂)이다. 한 총장 퇴진에 앞장선 중수부가 스스로 권력집단이 됐다는 '주홍글씨'가 새겨지면서 파국으로 치달았다.
대선후보 시절 중수부 폐지를 주장한 박근혜 대통령은 검란 다음해인 2013년 4월 중수부를 전면적으로 폐지했다.
◆다른 듯 너무 비슷한 부패범죄특별수사단과 중수부의 조직 구조와 역할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 청사에서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하 특수단)이 공식 출범했다.
특수단의 규모는 김기동(52·사법연수원 21기) 단장을 비롯해 주영환(46·27기) 1팀장과 한동훈(43·") 2팀장을 포함해 수사검사 11명과 수사관 등 30여명이다. 예전 중수부는 1과장, 2과장, 3과장, 4과장 체제로 구성됐고 수사검사와 수사관 등으로 구성돼 상시 인력도 특수단의 두배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수단 출범에 대해 '미니 중수부의 부활'이라는 지적이 잇따르자 법무부는 '한시적인 태스크포스(TF)'임을 강조했다. 옛 중수부처럼 상존하는 정식 직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보고 체계는 대검 반부패부(부장 박정식 검사장)를 거쳐 검찰총장에게 하는 식이다.
하지만 한시적인 TF 조직이고 출범 규모가 다소 적은 편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옛 중수부와 닮은 부분이 상당하다.
우선 두 조직 모두 검찰총장 직속이라는 점이다.
김 총장은 지난해 12월 3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부패사범 수사에 공백이 있어서는 안되고, 수사는 늘 적시에 효과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며 "지휘·보고체계를 더욱 효율적으로 개선하고, 수사에 필요한 인적·물적 지원도 보다 신속하게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2016년 한 해 검찰의 특별수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자"고 강조했다.
이는 김 총장이 직접 특수단 수사에 힘을 실어주고 확실한 수사 결과를 도출해 '검찰의 특별수사 능력이 약화됐다'는 지적을 불식시키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두 조직의 보고 체계가 거의 유사하다는 부분도 주목된다.
특수단은 대검 반부패부(부장 박정식 검사장)을 거쳐 검찰총장에게 보고하는 체계다. 예전 중수부는 중수부장이 검찰총장에게 직보했다. 직보하는 수장이 중수부장에서 반부패부장으로 바뀌었지만 방식은 달라진게 없는 셈이다.
옛 중수부나 특수단이 궁극적으로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거나 인적·물적 자원을 집중해야 하는 전국 단위의 대형 부정부패 사건을 수사한다는 점도 다를바 없다.
이때문에 특수단이 출범하자 "대대적인 사정 태풍이 몰려올 것임이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언제, 어떤 대상을 어느 수준의 강도로 수사할 것인지만 남겨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향후 수사 전망과 특수단 강화 가능성
김 총장은 지난해 말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사회지도층 비리 △시장질서를 교란하고 국가재정 부실을 초래하는 기업·금융 비리 △국가안보의 균열을 가져오는 방위사업비리를 대표적 부정부패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단호한 척결" "적극 단속" "발본색원" 등의 강한 어휘를 사용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5일 주재한 신년 첫 국무회의에서 부패척결 의지를 분명히 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달 12일 부패방지 4대 백신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내용은 △대형 국책사업에 대한 '실시간 부패감시' △대규모 자산운용기관의 '선제적 리스크 관리'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차단을 위한 '상시적 정보공유 및 연계' △내부통제 장치 강화 등 '클린시스템 도입'이다.
검찰 총수의 강경한 신년사 내용과 박 대통령의 부패척결 의지 표명, 이를 이은 황 총리의 부패방지 프로젝트 발표가 촘촘히 이어지면서 검찰에 힘이 실렸고 특수단 출범은 사실상 기정사실화 됐다.
검찰은 집권 4년차를 맞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을 공고히 뒷받침 할 것으로 관측된다. 만약 누수현상이 발생할 경우 즉각 수사권을 발동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벌써부터 부실 또는 민영화 된 공기업, 공적 자금이 투입된 기업과 금융기관, 대기업과 등이 수사 대상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는 미확인 소문이 떠도는 실정이다. 관·경제계는 바짝 몸을 낮춘 채 사태의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더구나 올해는 총선과 대선을 앞둔 중요한 시기다. 정계도 특수단의 시선을 비켜가기는 힘들다. 각종 비리 의혹이 제기된 정치인들이 잔뜩 움츠러들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일단 본격 수사가 가동될 경우 특수단의 인원은 대폭 늘어날 것이 확실시 된다. 김 총장이 "수사는 늘 적시에 효과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필요한 인적·물적 지원도 보다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TF의 특성은 필요한 사안에 따라 시간을 늘이고 각종 자원도 수혈 받을 수 있다는 점"이라며 "특수단에 대한 우려 섞인 시각이 거두어 지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 정권이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더욱 정국 주도권을 강화하고 레임덕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성이 커지고 있어 특수단이 과거 중수부보다 권한과 역할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과거 중수부는 나는 새도 떨어뜨리고 산천초목도 벌벌 떨게 만든다는 말을 들었다. 이른바 무소불위의 권한으로 부정부패한 권력층 인사를 처단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반면 '표적 사정' '하명 수사' 등의 시비를 불러오면서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법조계는 특수단의 성패 여부에 대해 수사 공정성 확보와 정치적 편향성 극복에 달렸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특수 수사 활동에 대한 검찰 내 독립성을 보장하고 정치적 외풍을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시적 TF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는 특수단의 향후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