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 루키즘을 고발하며
2015-12-30 10:48
김동열(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박웅현의 '여덟 단어'중 한 단어는 ‘자존’이다. 자존감이 부족한 젊은 세대에 관한 이야기다. 외국인 친구가 서울에 와서 본 비슷비슷한 ‘강남언니들’에 대한 얘기를 소개하고 있다. 남들이 정해 놓은 기준,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정해 놓은 얼굴형과 몸매를 따라가기 위해 다이어트와 성형에 몰두하는 우리 시대의 삐뚤어진 자화상을 지적하고 있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아를 존중하면서 발랄하고 생기있는 모습에 개성넘치는 옷차림을 한 젊은 여성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자연스러움과 개성과 자존감은 어디로 가고, 유행과 연예인을 쫓아 얼굴마저 갈아엎는 천박함이 우리 젊은이들의 머릿속 맨 앞 칸을 차지했는지 아쉬울 따름이다.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본 적이 있는지? 20년 전에 봤을 때는 느낌이 별로였는데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가 돼 다시 보니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이 영화가 아름답게 그렸던 중년의 사랑도 가슴에 오래 남았지만, 주연을 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주름살 자글자글했던 얼굴도 기억에 오래 남았다.
요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가 미국에서도 이슈가 된 바 있다. 지난 2000년 8월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새파이어(William Safire)는 루키즘(Lookism)에 대한 글을 통해 인종·성별·종교·이념 등에 이어 ‘외모’가 새롭게 등장한 차별 요소라고 지적했다.
국제미용성형협회(ISAPS)의 자료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성형수술을 가장 많이 한 나라는 한국으로 1000명당 16명 정도가 성형수술을 받았다. 일본은 9명, 독일은 5명, 영국은 4명 정도인 것과 크게 대비된다. 선진국 젊은이들과 경쟁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를 키우는 데 전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형편인데 외모, 포장, 형식에 치중하는 풍조가 유행인 점이 안타깝다.
나아가 헌법 제11조 1항도 성별, 종교, 연령, 장애, 용모 등에 따른 ‘포괄적 차별금지’ 조항으로 시대에 맞게 개정돼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3항에 ‘용모’가 차별의 유형으로 열거돼 있기는 하다. 하지만 ‘헌법’ 제11조 1항에는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금지만 규정됐다.
여성, 장애인, 고령자에 대한 차별금지법만이 별도로 제정돼 있다. 하지만 애매하고 부족하다. 외모에 따른 차별금지와 차별에 따른 처벌의 내용을 관련 법령에 명확히 규정해 놓을 필요가 있다.
외모중시(Lookism)와 ‘따라하기’의 폐단은 기업과 산업에서도 드러난다. 서울공대 26명의 원로교수에게 물었다. 성장률이 2~3%대로 급락하고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돼버린 한국경제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해법은 무엇인가요?
26명의 멘토들이 해준 값진 이야기들이 신간 '축적의 시간'에 담겨있다. 압축성장과 선진국 따라잡기에 익숙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스스로 뭔가를 새롭게 만들어 시장에 내놓고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개념설계’의 역량이라고 한다.
애플이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컨셉의 제품을 시장에 내놓음에 따라 기존의 세계 1위 핸드폰 메이커였던 ‘노키아’는 그 충격으로 파산했다. 이게 바로 애플이 갖고 있는 ‘게임체인저’의 역량이고, ‘개념설계’의 역량이다.
그런데 그런 역량은 단기간에 어디서 사올 수 없다. 장인과 전문가의 실패 경험이 오랫동안 쌓이고 쌓이는 ‘창조적 축적’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축적의 시간’을 중시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 속에서 비로소 새로운 개념의 제품과 서비스가 나올 수 있다. 그래야 우리나라 산업의 고부가가치화가 가능하고, 중국과 일본 사이의 샌드위치 신세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남의 눈을 너무 의식하고, 남이 설정해 놓은 기준을 따라가고, 남의 것을 베끼던 시절과 이제 이별해야 한다. 이제 병신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