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 달 뒤면 서른 되는 '국민 여동생' 문근영
2015-12-10 14:39
한때 국민 여동생이라 불렸던 배우 문근영은 30대를 눈앞에 두고 태연했다. 국민 여동생이라는 지나간 타이틀에 대한 아쉬움도, 다가올 30대에 대해 유난스러운 기대도 없이 묵묵히 제 갈 길을 가겠다고 했다. 단지 “이제는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며 눈빛을 반짝거릴 뿐이다.
문근영은 3일 종영한 SBS 수목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에서 언니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푸는 한소윤 역을 맡았다. 멜로나 막장으로 한눈팔지 않고 스릴러 장르에 온전히 충실한, 지상파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는 드라마인데다 사건의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어떠한 감정도 표현하지 않는 관찰자 역할을 맡았으니 도전이다. 아역 꼬리표를 벗은 이후 언제나 작품 중심부에서 색이 짙은 캐릭터로 제 존재를 뽐내던 그였으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 이용석 PD가 “문근영이 이 역할이 왜 하고 싶지? 독특하네”라고 할 만하다.
“작품성이죠. 제가 맡은 롤의 크기에 연연하지 않았어요 ‘이런 작품이 내 필모그라피에 있다면 뿌듯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옆길로 새지 않고 한 우물을 판 장르물이 지상파에 있었던가요? 시청률이 낮았다고요? 7%나 나왔는걸요. 저는 2% 예상했는데 말이에요. 관찰자적 입장을 연기하는 것도 정말 힘든 작업이었죠. 사실 별다른 감정 표현이 없어 단순히 힘을 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출연진을 만나고, 그 캐릭터가 가진 감정의 진폭을 경험하고, 그것을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어요.”
고된 작업이었던 것만큼 성과도 크다. “이전에는 작품에서 줄곧 내 감정을 표현하기 바빴는데 이번 드라마를 통해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법을 배웠다. 또, 주인공은 의외로 상대역이 한정적인데 이번에는 작품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와 맞닥뜨리면서 다른 사연, 다른 비밀을 가진 캐릭터를 제 개성으로 연기하는 수많은 배우와 호흡하는 법을 다시금 알게 됐다”고 했다.
문근영의 의외의 선택은 일전에도 있었다. 사도세자와 영조의 이야기가 중심인 영화 ‘사도’에서 혜경궁 홍씨를 맡았을 때도 언론과 대중은 “문근영이 왜?”라는 반응이었다. 문근영은 “소속사에서 엄청 반대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뻔한 건 싫어요. 정형화된 것은 재미없죠. 하지만 그런 주인공을 찾기가 쉬운가요? 그래서 매력적인 조연을 하고 싶었는데 ‘문근영이 조연을 왜 해? 한물갔나’라고 생각할까 봐 주저했죠. 대중의 반응, 나에 대한 기사, 소속사의 만류…모든 것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는데 ‘사도’ 때 처음으로 고집부려봤어요. ‘두고 보라고. 당신의 기대치는 충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한테 당당할 만큼은 연기해내겠다’고 마음먹었죠.”
그것은 또 다른 시발점이 됐다. “‘사도’를 촬영할 당시 저에 대한 의심이 극에 달할 때였어요. ‘내가 이렇게 칭찬을 받아도 되는 건가? 내가 이 상을 받아도 되는 건가? 배우 문근영은 잘 해내고 있는 건가?’하는 의심이요. 그때 이준익 감독님께서 ‘넌 문근영이야. 그걸 의심 하지 마. 네가 하고 싶은 작품, 네가 연기하고 싶은 역할이 뭐든 다 해도 돼. 너는 문근영이니까’라고 말씀해주셨죠. 어찌나 큰 힘이 되던지. 진짜로 한물간 거면 또 뭐 어때요. 또 기회가 오겠죠. 저는 이제 서른 살밖에 안됐으니까요”
서른을 한 달 앞둔 지금이 20대의 대표작을 꼽기에 더할 나위 없는 시기라고 부추기자 문근영은 잠시 고민하더니 2010년 작품인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를 꼽았다. 2008년 드라마 ‘바람의 화원’으로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SBS 연기대상 대상을 받고는 상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버거워하던 소녀의 모습이 선명한데 말이다.
“다른 작품으로 대상이라는 어마어마한 상을 받기도 했지만 ‘신데렐라 언니’의 은조를 꼽고 싶어요. 은조의 방황과 불안이 제 20대를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이고, 제일 열정을 쏟아부었죠. 은조가 내 20대의 모든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20대의 대부분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2000년 ‘가을동화’ 이후 15년 ‘국민 여동생’으로 살아온 문근영은 “이제는 확실히 여동생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걸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 물론 잔재는 남아있겠지만, 그것 역시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바심은 없다”고 했다.
“어렸을 때 일을 시작해서 그런지 연기를 대하는 마음이 여전히 순수해요. 그때는 내가 상대 배우보다 돋보이고 싶다 거나, 내 역할이 얼마나 큰지를 따지지 않고 순전히 연기가 좋아서 했으니까요. 나만 잘났다고 작품이 잘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됐달까…그 마음 잃지 않고 열심히 하려고요. 목표요? 다작이요. 재고 따지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