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기업 성공 스토리] ④ 손정의, "막히면 뚫어라" 터프한 교섭자 DNA
2015-12-08 00:01
아주경제 한준호 기자 = 일본 통신규제기관인 총무성에 지금도 회자되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2001년 6월,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NTT 측의 업무 방해로 자사 브로드밴드 '야후 BB'의 관련 공사가 지체되자 담당자였던 후지노 마사루(藤野克) 현(現) 총무성 지상방송과장을 찾아가 NTT의 방해 행위를 조목조목 설명해 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총무성이 시정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그는 후지노에게 "100엔 짜리 라이타를 빌려달라"며 "총무성 건물에서 휘발유를 뒤집어 쓰겠다"고 협박했다. 이어 "당신들이 NTT에게 주의를 주지 않으면, 난 앞으로 전진할 수 없다"면서 "이제 야후 BB 사업을 접겠다는 기자회견을 열고, 그 회견이 끝나면 다시 이곳에 찾아와 휘발유를 뒤집어 쓰겠다"고 분신자살을 예고한 것이다. 이에 백기를 든 총무성은 결국 NTT에 대해 시정조치를 내렸고, '야후 BB' 공사는 마무리할 수 있었다.
손 사장의 터프한 교섭자 기질은 이미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나타났다. 197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살레몬테 고등학교 재학 시절, 교장을 찾아가 "교과서 내용은 모두 이해할 수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해 곧 바로 대학입시시험을 치렀다.
그러나 영어로 출제된 대학입학시험지를 받아 본 그는 “영어 실력을 보는 시험도 아닌데, 일본어로 번역해주지 않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주장해 시험감독관과 한판 붙었다. 결국 특례로 영어사전 지참을 허락 받아 끝내 시험에 합격했다. 그렇게 일본에서 미국 고등학교로 편입한 후 2주 만에 대학입학 자격을 취득했다.
그는 여름방학이 되자 일본에 귀국해 '음성인식 다국어 번역기'를 팔기에 나섰다. 마쓰시타 전기(파나소닉)를 찾았지만, "작품은 재밌지만 상용화는 어려울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샤프(Sharp)를 찾아 사사키 타다시(佐々木正) 전무를 설득해 극적으로 발명품 판매에 성공, 약 1억 엔의 자금을 손에 쥐었다.
후에 사사키 전무는 "손정의는 내게 3일 뒤에 미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꼭 만나달라"고 사정했다며 "만나보고 두 번 놀랐는데, 그가 젊어서 놀랐고, 발명품이 기발해서 놀랐다"고 회고한 바 있다.
손 사장은 대학을 졸업해 일본으로 귀국, 창업하기에 앞서 자신이 꼭 해야할 사업을 1년 반 동안 고민했다. 고민하는 과정에서 40개 업종을 선별, 이 중에서 자신이 50년동안 열중할 수 있는 사업과 내가 반드시 1등을 할 수 있는 사업 등 25개 항목을 독자적 기준으로 적용시켜 당시 일본에는 생소했던 'PC용 소프트웨어 도매업'을 선택했다.
1981년 후쿠오카(福岡)에 위치한 허름한 빌딩 2층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자본금은 2000만엔, 사원은 아르바이트생 고작 2명으로 '일본 소프트뱅크'를 설립했다. 손 사장은 이들을 사무실에 모아 놓고, 사과 궤짝에 올라 "5년 뒤 매출 100억엔, 10년 뒤 500억엔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하고, "매출을 두부를 세듯이 하고 싶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두부를 1쵸(丁), 2쵸(丁)라고 세는데, 매출을 1조, 2조 단위로 달성하겠다는 뜻이다. 그 훈시를 들었던 아르바이트생 2명은 기가 막혀 곧 바로 퇴사했다.
손 사장은 회사를 설립하고, 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은행을 찾아 '무담보, 무보증, 낮은 이율'로 융자 1억 엔을 신청했지만 단칼에 거절 당했다. 그러나 대학시절 '음성인식 다국어 번역기'를 구입한 사사키 타다시 샤프 전무가 개인 자산을 담보로 내놓으며 제일권업은행(第一勧業銀行) 고지마치(麴町)지점에서 융자에 성공했다.
이후 손 사장은 매해 5월2일을 '대은혜의 날'로 지정, 제일권업은행 고지마치 지점장과 사사키 샤프 전무(현 소프트뱅크 상담역) 등을 모시고 연회를 베풀고 있다. 그가 터프한 교섭자 DNA와 함께 굳은 의리를 지녔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