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강민호·양의지·이지영, 프로야구 포수 기근 시대 끝낸다
2015-11-07 08:00
2000년대에는 명포수의 시대였다. 박경완은 소속팀(현대 유니콘스·SK와이번스)에 무려 4번의 우승과 2번의 준우승을 안겼고, 그와 함께 리그를 양분하던 포수 진갑용은 삼성 라이온즈에 우승 3번과 준우승 3번을 안긴 바 있다. 또 LG 트윈스 조인성과 한화 이글스 신경헌도 팀의 안방을 10년 이상 지키며 전성기를 누렸다.
최근 한국 프로야구에는 대형 포수가 사라졌었다. SK 명포수 박경완이 작년 4월 은퇴식을 가졌고 그와 리그를 양분하던 삼성 진갑용도 지난 8월 마스크를 벗기로 했다. 이미 한화 고참 포수 신경헌도 몇 년 전 그라운드를 떠났고, 한화 조인성도 노쇠화에 접어든 지 오래다.
하지만 다행히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바로 이미 FA 대박을 터트린 강민호를 비롯해 양의지, 이지영이 대형 포수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선수 생활을 비교적 오래하고, 경험이 중요한 포수 포지션의 특성상 각각 30세, 28세, 29세인 이들의 커리어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 강민호
185cm·99kg의 좋은 신체 조건을 지닌 강민호는 2004년 롯데 자이언츠의 2차 3순위(전체 17순위)로 지명 받으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는 입단 이듬해부터 104경기를 출전하며 경험을 쌓기 시작해 2006년 최기문에 이어 주전 포수로 전 경기 선발 출전하며 자리를 잡았다.
2007년부터는 그의 타격재능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2007년 타율 0.271 홈런 14개, 2008년 타율 0.292, 홈런 19개를 때려내며 공격형 포수의 명성을 얻음과 동시에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강민호는 경험을 쌓으며 수비에서도 일취월장했다. 2011년에는 자신의 두 번째 골든 글러브를 받았다. 그리고 2013년에는 포수 역대 최고액인 75억원에 친정팀 롯데와 프리에이전트(FA) 계약을 체결하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는 초창기 공격 쪽에만 주안점이 맞춰져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볼배합과 경기 운영에도 눈을 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거기에 홈런은 덤이다. 올해 은퇴한 진갑용은 강민호를 “공수를 겸비한, 거기에 한 방까지 갖춘 최고의 포수”라고 평가했다.
강민호는 김동수-박경완-진갑용으로 이어지는 국가대표 포수 라인의 계보를 잇는 선수이기도 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해 한국에 처음이자 마지막 야구 금메달을 안겼고, 2014년 인천 아시아 게임에 출전해 타격에서 부진했지만 안정적인 리드와 수비로 한국의 아시안게임 2연패를 도왔다.
그는 통산 12시즌 동안 1249경기에 나서 타율 0.272, 홈런 172개를 기록하고 네 번의 골든 글러브를 받았고, 특히 올시즌 타율 0.311, 홈런 35개(4위), 타점 86개의 맹타를 휘둘렀다.
양의지는 올 시즌 두산 베어스의 한국 시리즈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광주진흥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6년 2차 8순위(전체 59순위) 지명을 받아 두산에 입단한 양의지는 2007년 곧 바로 경찰청에 입단해 미래를 준비했다. 경찰청 감독이자 명포수 출신인 유승안은 양의지를 잘 훈련시켜 두산으로 돌려보냈다. 제대 후 본격적으로 주전 자리를 꿰찬 2010년 양의지는 20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신인왕에 올랐다.
양의지는 공 배합 및 블로킹, 도루저지에도 능할 뿐만 아니라 타격에 큰 강점이 있다. 유승안의 지도로 익힌 부드러운 스윙폼은 그를 정확성과 파워 모두를 지닌 타자로 만들었다. 그는 통산 타율 0.288로 훌륭한 컨택 능력과 동시에 2014~2015년 2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며 장타력도 뽐냈다. 특히 올해는 타율 0.326(11위), 홈런 20개를 기록하며 두산을 포스트 시즌으로 이끌었다.
포스트 시즌에서의 활약은 더 빛났다. 그는 플레이오프 3차전을 제외한 전 경기에 출전하였다.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나성범의 타구에 맞아 발가락 미세 골절상을 당했음에도 한경기를 쉰 후 출전을 강행하는 정신력을 보였다. 니퍼트, 장원삼, 유희관으로 이어지는 1,2,3선발들을 탁월한 리드로 이끌었고, 뛰어난 수비능력도 뽐냈다. 또 플레이오프에서는 4차전 멀티히트, 5차전에서 홈런을 때려냈고,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는 결정적인 2타점 적시타를 기록하여 팀이 14년 만에 우승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 이지영
이지영은 강민호, 양의지에 비해서 비교적 늦게 빛을 본 편이다. 그는 경성대 시절 장원상, 김기표와 전성기를 누렸지만 프로의 지명을 받지 못하며 2008년 삼성 라이온스에 신고 선수로 겨우 입단했다. 그는 2009년 1군 23경기에 출전하기도 했지만 미래를 위해 시즌 종료 후 바로 상무에 입단했다. 그는 상무에서 타격에 눈을 뜬 모습을 보였다. 2011년 제대 이후 2012년 삼성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은 2013년부터 조금씩 주전으로 입지를 굳혀갔고, 2014년에는 이흥련과 경합했지만 올 시즌에는 124경기에 출전하며 진갑용의 뒤를 이을 삼성의 주전 포수로 자리 잡았다.
초창기 공격형 포수로 가능성을 인정받은 것과 다르게 올해 완전히 수비에 눈을 떴다. 올 시즌 7개의 에러만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고, 10승 투수를 네 명이나 배출한 삼성 투수진을 리드하며 팀의 정규시즌 4연패를 이끌었다. 또 3할9푼7리라는 경이적인 도루 저지율을 기록하며 상대 주자를 꽁꽁 묶었다.
또 타격도 안정세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장타는 오히려 줄었지만 정확도를 높이며 3할이 넘는 타율에 타점도 55개나 올렸다. 과거엔 기복이 있었다면 이제 꾸준히 때려내고 있다.
20대 후반에 접어든 이 세 명의 차세대 대형 포수의 등장으로 롯데, 두산, 삼성은 10년은 안방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오히려 지금보다 경험이 쌓이면 수비와 볼 배합과 같은 부분에서는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도 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이미 이지영과 양의지가 치열하게 경쟁했고, 국가대표팀에서는 강민호와 양의지가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앞으로 김인식 국가대표 감독은 포수 포지션에서 선수를 고를 때 즐거운 고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