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최경주 프로골퍼(2015프레지던츠컵 부단장) “진정한 챔피언은 프레지던츠컵 대회 그 자체죠”

2015-10-21 00:00
아시아에서 처음 열린 대회에서 1점차 박빙 승부 이끌어…“첫 승·플레이어스챔피언십 우승 이어 세 번째로 눈물 흘려”

최경주는 "2015년 프레지던츠컵은 여러가지 면에서 '감동'을 주었다"며 "2년 후 대회에서는 미국팀도 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프레지던츠컵 조직위 제공]





“원하던 선수로서 활약하지는 못했지만
한국 골프역량, 세계에 과시한데 대만족
대회 진행·갤러리 관전 문화 한결 성숙
팀 동료들과 산 낙지 먹은 일 잊지못하고
일정 안맞아 노래방 가지 못한 것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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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손길 필요한 사람 돕는 데도 앞장
대회 때도 인근 한인교회 찾는 크리스찬





약 2주전 인천 송도의 잭 니클라우스골프장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미국-인터내셔널 남자프로골프단체전)에 세계 골프팬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유럽 선수들이 빠졌지만, 세계 남자골프 톱랭커들이 출전해 대륙의 명예를 걸고 기량을 다투는 무대였다. 더욱 1994년 이 대회가 출범한 이후 아시아에서는 처음 열리는 마당이었다. 한국 남녀골퍼들이 근래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큰 대회를 과연 제대로 치를 수 있을까’는 우려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대회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경기 자체도 마지막 순간까지 1점차 박빙의 승부를 펼칠만큼 박진감있었다. 무엇보다 대회 성공의 요소가운데 하나인 갤러리들의 관전태도가 성숙됐다.

대회가 잘 끝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공이 있었지만, 인터내셔널팀의 수석부단장을 맡아 동분서주한 프로골퍼 최경주(45·SK텔레콤)의 힘이 컸다.

그는 대회가 끝나자마자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 있는 집으로 갔다가 시즌 마무리를 할겸 일시 귀국했다. 대회 기간, 대회 후 그를 짬짬이 만나 2015프레지던츠컵을 치른 소감을 들어봤다.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우선 경기는 마지막 날, 마지막 조, 마지막 홀에서 승부가 결정날만큼 손에 땀을 쥐게 했지요. 우려됐던 갤러리들의 관전 태도도 전에 볼 수 없을 정도로 성숙됐습니다. 대회 운영, 자원봉사들의 헌신적인 노력 등도 돋보였습니다. 한국 골프와 한국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였고, 한국에서 골프를 대하는 인식에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 미국팀이 이겼지만, 이번 대회의 진정한 챔피언은 ‘프레지던츠컵 대회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만든 골프 걸작품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대회에서는 미국팀이 15.5-14.5로 1점차 승리를 거뒀다. 이 대회 전까지 역대 전적에서 미국이 8승1무1패로 앞섰기 때문에 이번에도 손쉽게 이기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미국은 진땀나는 승리를 했다. 갤러리들은 최종일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2만여명이 대회장을 찾아 생애 다시보기 힘든 명승부를 관전했다. 그들은 뒷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비가 오는데도 우산조차 제대로 펴지 않았다. 기존 국내 골프대회에서 흔히 봤던 사진 촬영이나 휴대전화 통화 장면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들은 인터내셔널팀뿐 아니라 미국팀 선수들이 굿샷을 할 때에도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미국 일간신문 USA투데이 같은 외국 언론들도 ‘한국 갤러리들의 수준이 높았다’고 평가했다.
최경주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대회를 마치고 곧 미국에 갔는데 댈러스의 미국인들도 ‘너무 멋있었다. 한국이 그처럼 뷰티플한지 몰랐다.’고 말하더라고요. 팀 핀첨 미국PGA투어 커미셔너를 비롯한 대회 관계자나 매스컴 등에서 박진감있는 경기, 성숙한 관전 문화, 매끄러운 운영 등을 ‘기대 이상’이나 ‘대만족’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비록 한국에서 대회가 열렸습니다만, 미국이나 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에서 아시아 골프를 보는 눈이 달라졌을 겁니다.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치렀으니 멀지않아 일본도 이 대회 개최 신청을 할 것으로 봅니다. 인도나 말레이시아도 충분히 개최 능력이 있고요.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미국PGA투어 ‘CIMB 클래식’은 대회 개최 비용이 프레지던츠컵과 비슷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임팩트’는 프레지던츠컵이 훨씬 크잖아요.”

최경주는 당초 인터내셔널팀 선수로 활약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팀의 스탭으로 이 대회에 참여했다. 그는 대회 전 결과를 1점차 승부로 예상했다고 한다. 그런데 첫날 포섬 5매치에서 인터내셔널팀이 미국에 1-4로 완패하자 ‘올해도 힘드나?’고 생각하기도 했다.
최경주는 그러나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인만큼 올해는 뭔가 다른 결과를 보여주고 싶었다. 둘째날 포볼 매치부터는 ‘이겨야한다’는 각오아래 팀 단장인 닉 프라이스와 함께 조편성을 더 신경써서 했다. 그 덕분인지 둘째날엔 팀이 3승1무1패로 앞서면서 균형을 맞추기 시작했고 최종일 마지막 순간까지 승부를 점치기 힘든 ‘드라마’를 펼쳤다.

이번 대회 30매치에서 마지막 주자는 인터내셔널팀의 배상문(캘러웨이)과 미국팀의 빌 하스였다. 두 선수 모두 단장 추천으로 출전했다. 배상문은 이 대회를 끝으로 군에 가야 하는 상황이고, 하스는 자신을 뽑아준 아버지 제이 하스에게 보답해야 할 판이었다. 이 매치 전까지 스코어는 양팀이 14.5-14.5로 동점이었다. 배상문이 하스를 제치면 대회 사상 두 번째로 인터내셔널팀이 승리하고, 두 선수가 비기면 2003년 이후 12년만에 공동 우승을 할 터였다. 배상문은 막판까지 끌려다니다가 1홀 뒤진 채 마지막 홀에 다다랐다. 인터내셔널팀은 이제 무승부를 이루는 것이 최대목표가 됐다. 그것은 배상문의 어깨에 달려있었다. 마지막 홀에서 배상문이 하스를 제쳐야 비길 상황이었다. 배상문은 그러나 압박감 때문이었는지, 마지막 홀에서 실수를 했고 우승컵은 미국팀에 넘어갔다. 배상문은 한동안 일어날 줄 몰랐고, 최경주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나라도 그 상황에서는 긴장했을 겁니다. 그날 상문이를 마지막 주자로 내세운 것은 프라이스 단장이 결정한 일이었어요. 미국팀에서 하스를 내세운 것을 보고 배상문을 상대로 정한 겁니다. 17번홀까지 상문이가 1홀 뒤지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마지막 홀에서 뒤집지 못했다고 하여 탓할 바는 아닙니다. 상문이는 자기 몫을 다했어요. 대회 후 상문이한테 ‘입대 날짜가 정해지면 연락하라’고 격려했지요.”
최경주는 대회가 끝난 후 만감이 들었는지 눈물을 보였다. 그는 “승부, 배상문 경기에 상관없이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이 가슴벅차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무대 진출 3년만인 2002년 컴팩클래식에서 미국PGA투어 첫 승을 거뒀을 때, 2011년 ‘제5의 메이저대회’라고 하는 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서 우승했을 때 눈물을 흘리고 이번이 세 번째”라고 했다.

2년마다 미국과 그 외 지역에서 번갈아 치러지는 프레지던츠컵은 상금이 없다. 대회에서 나온 수익금은 각 선수들에게 분배돼 선수들이 지정하는 단체 등에 기부된다. 올해 대회는 결산을 한 후 최종 기부액이 밝혀진다. 최경주는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기부금과 경비를 합해 1인당 20만달러 정도가 되지 않을까한다”고 예상했다. 선수들을 따라온 캐디들에게는 5000달러씩 돌아간다. 최경주는 “몇 몇 인터내셔널팀 선수들한테서 ‘KJ재단에 기부하고싶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귀띔했다.

이번 대회 인터내셔널팀에는 7개국 선수들이 섞였다. 더욱 개최지는 비영어권인 한국이었다. 그래서 부단장을 맡은 최경주의 역할은 더 중요할 수밖에 없었고 그는 팀웍을 위해,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대회 기간 딱 한 번 외부에서 식사할 기회가 있었지요. 대회 이틀전인 화요일 호텔에서 나가 한 한식당에 갔습니다. 여덟가지 정도의 메뉴가 나오는 식당이었는데 그 중 산 낙지도 있었어요. 내 아내가 펄펄 끓는 물에 살아있는 낙지를 집어넣으니 다른 선수들이 기겁을 하더군요. 두 번째로 집어넣으니 그제서야 재미있다고 배를 잡고 웃더라고요. 팀 분위기 너무 좋았고요. 평생 잊지못할 겁니다. 시차와 각기 달랐던 선수들 스케줄 때문에 노래방에 못간 것이 아쉽습니다.”



◆최경주 프로골퍼는…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다. 호적에는 1970년생으로 돼있으나 실제로는 1968년생이다. 만 47세다. 처음에는 역도를 했지만 골프로 바꿨다. 1993년 프로로 전향했고 그 이듬해부터 한국프로골프투어에서 활약했다. 1999년에는 일본투어에서 2승을 올렸고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미국 무대에 도전, 한국 남자골퍼로는 처음으로 2000년 미국PGA투어프로가 됐다.

한국 남자선수들이 미국 무대에 진출하는데 그가 닦아놓은 길이 ‘페어웨이’가 됐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묵묵히 개척해간 그에게는 ‘탱크’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국내에서 16승, 해외에서 12승 등 총 28승을 올렸다. 미국PGA투어에서는 8승을 거둬 아시아 선수로는 최다승 기록을 갖고 있다.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 골프토너먼트에서도 아시아 선수로는 최고 기록(단독 3위, 2004년)을 보유하고 있다. 2011년에는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딴 대회를 창설(CJ 인비테이셔널)했다.

그는 또 국내외에서 나눔을 실천하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상금 일부를 태풍이나 수해·지진 등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내놓곤한다. 국내에서는 KJ재단을 설립해 골프 꿈나무를 키우고 손길이 필요한 이웃을 돕는데 힘쓰고 있다. 아내 김현정씨와 2남1녀가 있다. 아내의 영향으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됐다. 대회 때에도 인근 한인교회를 찾아가 예배를 한다. 2014-2015시즌에는 다소 부진했으나 2015-2016시즌에는 부활을 다짐했다. 그는 시즌 넷째 대회인 샌더슨 팜스 챔피언십부터 출전할 계획이다. 최경주는 2011플레이어스챔피언십 우승 덕분에 이번 시즌까지 미국PGA 투어카드를 보장받았다.



 

최경주                                                                          [사진=아시안투어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