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th BIFF] '영화나라 흥행공주'를 꿈꾸는 '칸의 여왕' 전도연 [오픈토크 일문일답]
2015-10-05 06:06
다음은 일문일답.
20돌을 맡은 부산영화제에 온 느낌은?
부산영화제를 생각만큼 많이 오지는 못했다. ‘무뢰한’으로 오랜만에 와보니 많이 감격스럽다. 지쳐있었는데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았다.
수상 사실을 알고 왔는데도 감격스럽더라. 촌스럽게 눈물도 흘렸다. 무대에 올라가니까 힘들었던 시간이 생각나 울컥했다. 예전에는 영화를 찍기만 하면 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상을 많이 받았다. 지금은 어렸을 때 수상했던 느낌과 많이 다르다. 이제는 잘했다고 주는 것이 아니라 힘내라고 주는 것 같다. 좋은 상을 받았으니 힘내서 연기하겠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무뢰한’을 다시 소개하는 기분은?
하드볼드한 장르라 어둡고 무겁지만, 그리움이 묻어있는 작품이다. ‘무뢰한’을 찾아보게 되고 기억하게 되는 시간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에게도 그런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
솔직히 흔쾌히는 아니었다. 두 번 정도 거절을 했다. ‘협녀’ ‘남과 여’ 출연이 확정된 상태였고, 시나리오가 좋다는 이유로 선택하기에 ‘무뢰한’은 너무 무거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23년 만에 영화를 찍은 오승은 감독을 살려드리기는 한 것 같다.
올해 ‘무뢰한’ ‘협녀’ ‘남과 여’를 선보이게 됐다. 다작이 힘들지는 않느냐
1년에 세 작품이나 출연한 것은 처음이다. 마음은 행복했는데, 심신이 지쳐있었나 보다. 그런데 부산에 와서 참 힘을 많이 얻었다. ‘남과 여’ 홍보도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도연 인생에서 가장 좋은 선택은?
배우가 된 것이다.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고, 아직까지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이라는 것이라는 사실이 뿌듯하고 기특하다.
연하인 상대 배우 김남길(재곤 역)과의 나이차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무뢰한’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느꼈던 재곤과 김남길의 첫인상이 너무 달라 걱정이 많았다. 김날길을 처음 봤을 때 귀여운 동네 꼬마아이 같았기 때문이다. 맨날 애교부리고, 장난치고, 어리광부리는 동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힘들 때 지치지 않게 옆에 있어 준 오빠 같은 존재다. 그래서 재곤에게 더 마음이 갔던 것 같다.
전도연에게 사랑이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다. 내 영화가 장르적으로 다양하다고 생각들 하는데 나는 첫 영화부터 지금까지 다른 식의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현실에서는 그렇게 사랑을 쫓기 힘들지 않느냐. 그래서 영화를 찍을 때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사랑은 판타지 같은 존재다. 앞에 있어도 알아채지 못하고, 하고 있으면서도 또 다른 것을 쫓게 되니까.
‘무뢰한’에서 초라하게 시드는 혜경을 연기할 답답하지는 않았는지
감독에게 짜증을 많이 냈다. 여자를 모르면서 왜 이런 캐릭터를 썼냐고 했던 것 같다. ‘무뢰한’ 전까지 나는 캐릭터에 영향을 안 받는다고 생각했다. 촬영할 때 모든 것을 쏟아내고 끝나면 온전한 나로 돌아온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 ‘무뢰한’ 찍을 때는 혜경처럼 술도 많이 마시고, 이야기도 많이 했다. 인간적인 혜경을 표현하기 위해서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쏟아냈다. 그런 나를 감독이 잘 받아줬다.
수많은 남자 배우와 연기했다. 가장 호흡이 좋았던 배우는?
배우는 연기가 소통이고 대화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누구와 연기해도 호흡이 잘 맞을 수밖에 없다. 어릴 때 ‘넘버3’를 보면서 송강호의 팬이 됐는데 같이 연기할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더라. 그래서 ‘밀양’에서 송강호와 연기할 때 참 행복하고 즐거웠다.
후배 남자 배우들이 전도연과 연기하고 싶어한다. 눈여겨보는 후배 남자 배우는?
아무래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유아인? 참 보기 좋더라. 열심히 할뿐더러 그 친구가 가진 재능, 감정이 큰 에너지로 다가와서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무뢰한’을 찍으면서 ‘칸의 여왕’이 연습벌레가 됐다고 하더라.
노력을 많다. 감정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보니까 대사가 내 말처럼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본도 많이 봤다. 기억해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오게 하기 위해서다.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 부담될 텐데 어떻게 이겨내고 있나.
칸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털어내고 극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칸 여우주연상은 너무 큰 존재더라. 배우를 하는 순간까지 그 수식어를 달고 있지 않을까? 굳이 벗어나거나 부담을 피하려고 하기보다는 받아들이려고 한다.
원하는 수식어가 있다면?
예전에는 영화나라 흥행공주였다. 조만간 그 타이틀을 되찾고 싶다. 좋은 작품으로 찾아뵈면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 다시 보더라도 참 잘했다는 캐릭터가 있을까?
내가 꼽기는 힘들 것 같다. 얼마 전에 CGV에서 전도연 특별전을 했다. ‘접속’ ‘해피엔드’ ‘너는 내 운명’을 봤는데 지금 봐도 참 좋은 영화더라. 내 연기가 좋았다는 말이 아니라 영화의 감성이 요즘 영화와 뒤처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엄마가 돼서도 로맨스의 여왕 타이틀을 유지하는 비결은?
나이 들어서도 멜로를 찍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외모와 상관없이 마음에서 감성적인 것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힘들 때 가장 힘이 되는 존재는?
딸, 내가 지칠 때마다 ‘지치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내가 일하러 갈 때 “엄마 가지마”라고 조른 적이 없다. 기특하고 고맙고 짠하다. 좋은 엄마의 기준이 뭔지 잘 모르겠다. 좋은 엄마인지 아닌지는 아이가 판단하는 것 아니냐. 나는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내 딸은 “우리 엄마가 착한 엄마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더라. 아이와 이야기할 때는 아이가 직접 결정할 수 있게끔, 아이의 방식대로 해결할 수 있게끔 시간을 주는 편이다. 물론 아이의 선택이 부족하고 성에 안 찰 때도 있지만 엄마로서 인내해야 하는 시간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딸이 연기자가 되고 싶어한다면?
칸의 여왕을 넘어설 수 있다면 시키겠지만 날 뛰어넘지 못할 거라면 못하게 할 것 같다.
영화 ‘밀양’을 엄마가 된 지금 다시 찍는다면?
‘밀양’을 찍을 때 정말 힘들었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을 때라 내가 흉내만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감독은 진짜를 원하는데 나는 스스로 가짜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진짜가 뭔지 모르는 나에게 진짜를 원하는 감독이 밉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래서 더더욱 내 감정에 빠지지 않고 더욱 신애(전도연 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지금 다시 연기한다 해도 더 좋은 모습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