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미국 행사와 가격 비교 해보니…
2015-10-05 00:01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참전해보니…"형편없는 전장"
아주경제 김현철·안선영 기자 = "TV를 사려고 왔는데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가격보다 비싸네요. 차라리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때 해외 직구(직접 구매)를 노려야겠어요."
"손님, 신상품은 할인되지 않습니다. 블랙프라이데이 할인 상품은 별도로 마련된 행사장에 있어요."
우려가 현실이 됐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었다.
◆ 이름만 '블랙프라이데이'
정부 주도 하에 오는 14일까지 진행되는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는 외국인 관광객과 내국인 소비를 활성화해 내수를 살리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행사 할인율이 50∼70% 적용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해 시작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막상 할인 전쟁에 뛰어든 고객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가 제품을 건지기 위해 몸싸움까지 하는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와는 달리 할인 행사장을 제외한 매장은 차분하다 못해 썰렁할 정도였다.
대부분 제품은 가을 정기세일과 큰 차이가 없는 10~30% 할인에 그쳤다. 의류, 신발, 주방용품 등 일부 품목만 50~70% 할인이 적용돼 9층 행사장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평소 백화점 한쪽에서 판매하는 매대 상품을 행사장에 모은 정도였다.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의 대표 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캐나다구스와 몽클레어는 찾아 볼 수도 없었다. 일부 매장에서 파는 제품은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행사 때 살수 있는 가격보다 훨씬 높았다.
구스다운 이불(퀸 사이즈)의 경우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에 8만원 대에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알레르망 매장에서는 30만~4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WMF 칼의 경우 7개입 세트를 70달러에 살 수 있지만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에서는 3개 세트에 19만9000원이었다.
신혼 준비를 위해 백화점을 들렀다는 김지혜(31·여)씨는 르크루제 냄비와 알레르망 이불을 구경했지만 이내 손에서 내려놓았다. 평상시에 살 수 있는 가격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온라인몰에서 사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고 아쉬워 했다. 가전제품도 전혀 할인하지 않고 있다는 걸 확인한 김씨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서울 강동구의 홈플러스에서는 블랙프라이데이 특가로 삼성전자의 55인치 TV를 38% 할인 판매했다. 하지만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에서 TV는 보통 50~60%의 할인율이 적용된다.
잠실 제2롯데월드몰 곳곳에서도 코리아 그랜드 세일 안내문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각 매장별로 소폭 할인을 진행하고 있을 뿐, 특별 할인을 진행하는 행사장 자체도 없었다.
◆ "인기 제품은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때 경쟁하기 위해 안 내놔"
반면 백화점과 대형마트 곳곳에서 큰 폭으로 할인하는 제품도 있었다. 덴비 그릇의 경우 지난해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당시 12.5달러에 구매할 수 있었던 일부 제품을 롯데백화점에서 1만6500원에 판매 중이다.
홈플러스는 옷과 골프용품 등 일부 품목을 50%에서 최대 90% 할인해 고객들을 붙잡았다.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참여 업체들은 정부 주도 하에 짧은 기간 준비해 충분한 물량을 확보할 시간이 없었다고 꼬집는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고가의 유명 브랜드들은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에 맞춰 판매하기 위해 재고를 축적해 놓고 있다"며 "이번 행사는 시작 전부터 소비자들의 호응도가 크지 않아 대대적인 준비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참여업체 수를 늘리기 위해 전국에 분포돼 있는 편의점까지 집계해 실제 할인되는 점포는 얼마 안된다는 지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연락이 안돼 이번 행사에 참가하지 못한 업체도 있다는 후문도 들린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 달 전에 정부에서 행사에 참여하라고 연락해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했다"며 "예정도 없이 갑자기 참여한 행사이다 보니 물품 구색 맞추기에 급급했다"고 토로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재고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재촉해 참여는 했는데 신제품에 큰 할인률을 적용해 팔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국경절을 맞아 한국을 찾은 유커를 공략하겠다는 정부의 애초 취지와 다르게 홍보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가족과 함께 한국을 찾은 청린(41)씨는 "한국에서 이런 행사를 하는지 모르고 방문했다"며 "매장을 둘러봐도 특별히 저렴한 제품이 보이지 않아 면세점에서 화장품이나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본점 여성복 매장에서 근무하는 이모(37·여)씨는 "국경절이지만 블랙프라이데이 행사 때문에 유커 보다 한국인이 더 많이 매장을 찾고 있다"면서도 "정작 구입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매출도 예년 정기세일 수준에 머물 것 같다"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