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기획-그레이트 코리아] 이필상 “한국경제 미래 ‘남미냐, 독일이냐’ 향후 5년이 갈림길”

2015-09-07 08:20
⑤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 인터뷰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는 4일 서울 동작구 유한재단에서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과 대담형식으로 본지 기획인 ‘광복 70주년 기획-그레이트 코리아’를 통해 한국 경제를 진단했다. 이 교수는 현 한국 경제에 대해 “한마디로 내우외환의 위기”라고 말했다. [사진=아주경제 유대길 기자 dbeorlf123@]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정곡을 찔렀다. 그래서 아팠다. 올해 상반기 한국 경제를 괴롭혔던 ‘디플레이션’(deflation) 공포처럼 답답함이 엄습했다. 이필상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겸임교수의 ‘한국 경제 진단’이 그랬다. 이 교수는 한국 경제가 5년 내 ‘남미의 길이냐, 독일의 길이냐’의 갈림길에 설 것으로 경고했다. 9월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신흥국 부도 위험성이 세계 경제 위기의 도화선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중국발(發) 경제 쇼크와 관련해 연착륙하는 중국과는 달리, 한국 경제는 경착륙 이상의 위기를 겪을 것이라고 만반의 준비를 당부했다. ‘수출·내수’ 동반 부진에 시달리는 현 상황은 경기순환이 아니라 ‘구조적 원인’에서 기인한다고 잘라 말했다. 이 교수와의 인터뷰는 4일 서울 동작구 유한재단에서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과 대담형식으로 진행했다.

◆현재 한국 경제는 ‘수출과 내수의 부진→소비 하락→기업 투자 위축’ 등의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최경환 경제팀은 확장적 재정지출, 한국은행은 금리 인하 등을 처방책으로 내놨지만, 시장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다.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진단해 달라.
“한마디로 내우외환의 위기다. 대외적으로는 수출의 길이 막혔다. 내수는 어떤가. 빈사 상태다. 나라 안팎의 위기 요인이 한국 경제를 엄습했다. 대외 상황을 보자. 우리나라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최대 수출국인 중국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러자 중국은 자국의 경기부양을 위해 위안화 평가절하를 단행했다. 문제는 그만큼 우리나라 수출이 비싸진다는 것이다. 중국의 위안화 평가 절하로 우리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나. 수출 시장을 뺏길 수밖에 없다. 그간 20년여 동안 고도성장한 중국은 현재 우리나라 주요산업의 기술을 거의 다 따라잡은 상태다. 우리나라 수출이 발목 잡힌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럽과 일본 변수도 마찬가지다. 유럽발 금융위기로 우리 수출이 줄어들고 있다. 일본은 엔저 공세로 우리 수출 시장을 빼앗고 있다. 신흥국은 어떤가. 국제유가 하락으로 부도위기에 처한 나라가 많다. 8월 수출 지표를 보면 (전년 8월 대비) 14.7%포인트 감소했다. 지역적으로는 중국 8.8%포인트, 일본 24.4%포인트 감소했다. 암담한 상황이다.”

◆지금 상황은 경기 순환이 아니라 구조적 원인에서 발생했다는 것인가.
“그렇다. 지금은 경기 순환적인 불황이 결코 아니고 경제기반 자체가 주저앉는 구조적 위기다. 그간 한국 고도성장을 이끄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한 수출이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이 와중에 내수도 빈사 상태에 빠졌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가계부채’와 청년을 포함한 ‘고용시장의 위축’이다. 가계신용(카드사 판매신용과 기타 금융기관 대출 등을 합친 가계 빚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 통계)을 보면 1조90조원(지난해 말 기준)까지 증가하면서 한 가구당 6000만원 이상의 빚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 고용은 어떤가. 한 축으로는 가계부채, 다른 한 축으로는 고용문제, 여기에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연쇄부도에 처한 상황이다. 내수산업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결국 현재 위기는 구조적 위기다. 이제는 우리가 무엇을 먹고살 것인가를 근본적으로 고민할 시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돈만 푸는, 단편적이고 임기응변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 이것은 또 다른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경제가 위기인데, 위기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 더 큰 위기’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는 “지금은 경기 순환적인 불황이 결코 아니고 경제기반 자체가 주저앉는 구조적 위기”라고 밝혔다. [사진=아주경제 유대길 기자 dbeorlf123@]


◆중요한 지적이다. 말씀하신 내용을 하나하나씩 풀어가 보자. 우선 대외적 변수다. 중국발 경제 쇼크 이후 두 가지 시각이 존재한다. 중국 경제가 ‘연착륙할 것인가, 경착륙할 것인가’다. 일각에선 1980년·1997년·2008년에 이은 중국발 세계 경제 위기 가능성도 제기하는데.
“두 가지로 나눠서 봐야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중국 입장에서 보면 경착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연착륙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 면에서 보면 ‘경착륙’이다. 일단 지금의 중국발 위기는 그간 20년여 동안 경제성장 과정에서 겪은 과잉부채와 과잉투자의 후유증에서 온 것이다. 앞으로 구조조정을 제대로 펴고 내수활성화 정책을 쓴다면, 다시 한 번 중·장기적 차원에서 계속 도약할 수 있는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값싼 노동력도 있고, 기술 수준은 거의 선진국 수준으로 따라오지 않았나. 결코 경착륙은 아니다. 재도약할 수 있다.”

◆중국발 경제위기가 자국에는 연착륙이지만, 우리나라 경제에는 경착륙처럼 큰 위기로 다가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부에선 ‘중국이 기침하면 세계가 독감에 걸린다’는 것도 같은 맥락인가.
“우리나라는 실물부문과 금융부문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이 절대적이다. 중국 성장률이 10%대에서 6%대로 떨어진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파다. 더 문제는 중국이 우리나라 주력 산업인 조선·철강·자동차·석유화학 등의 기술을 다 따라잡았다는 것이다. 가격 경쟁력에서 뒤처지면서 수출이 안 되고 있다. 실물경제의 충격파가 커서 앞길이 안 보일 정도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해외투자 중 1/4이 중국 투자다. 중국 증시가 침체하면 동조현상이 생긴다. 중국 금융시장이 불안하면, 중국의 실물경제의 거품은 꺼지게 돼 있다. 우리나라에는 직접적인 충격파가 전달된다. 중국의 ‘그림자 금융(시중은행과 같은 수준의 건전성 규제를 받지 않는 금융)’도 문제다. 제대로 된 규모 파악이 안 되고 있지만, 최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3배 정도로 추정된다. 그림자 금융에 의존한 부동산 투자로 거품도 낀 상황이다.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 상당한 고통을 겪을 것이다. 만일, 중국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외환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한다면, (한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을 것이다. 먹고 살 길이 안 보인다. 우리에게는 중국 경제가 비틀거리는 것 자체가 경착륙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의 경기 경착륙이 겹치면서 9월 우리 경제가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이른바 ‘9월 위기설’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실체가 있다고 보나.
“위기에는 급성과 만성이 있다. 급성위기의 대표적인 것은 1997년 우리가 겪은 외환위기다. 별안간 국가 부도위기가 커지면서 경제가 마비되는 급성위기가 9월에 나타날 것으로 보지 않는다. 문제는 만성위기다. 미국의 금리 인상을 기점으로 위기가 고조될 것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당시 미국이 기준금리를 0%까지 내리면서 경제를 살렸다. 미국 경제는 살아났지만, 미국발 금융위기가 유럽의 재정위기와 남미 국가부도 위기로 이어졌다. 지금은 중국 경제가 바닥을 치고 있다. 미국의 위기가 연쇄적으로 작용한 셈이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는 “세계 경제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 있는 것은 신흥국”이라고 주장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 기사 정리=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미국 금리 인상으로 우리 경제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보다는 다른 나라의 연쇄작용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인가.
“세계 경제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 있는 것은 신흥국이다. 중국 경제 침체로 원유 가격이 폭락했다. 원자재를 수출하는 신흥국 재정상태가 말이 아니다. 러시아·브라질·인도네시아·태국·말레이시아·터키·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부도위기에 처한 나라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 ‘자본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자본의 이탈로 실물 경제가 취약한 나라부터 부도가 현실화될 가능성 크다. 만성위기에 불을 지를 수 있는 것은 미국의 금리 인상이다. 달러가 국제통화국인 미국은 시뇨리지 효과(Seigniorage Effect·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함으로써 얻는 이익)를 누린다. 그래서 미국 경제는 부도가 나지 않는다.”

◆기로에 선 한국 경제의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갈 것으로 예측하나.
“향후 5년간 ‘남미냐, 독일이냐’의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남미 국가처럼 경제주체들이 빚더미에 앉아 거리로 쏟아져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이 문제는 정치가 풀어야 한다. 모든 것의 출발은 정치다. 우리도 독일처럼 연정정치가 필요하다. 사회민주당(사민당) 출신 슈뢰더 전 총리가 우파 정책의 ‘하르츠 개혁’을 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하르츠 개혁을 통해 제2의 경제 부흥기를 이끈 독일처럼 못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

◆‘남미냐, 독일이냐’의 중대 기로라는 전망이 인상 깊다. 그렇다면 지금 최경환 경제팀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제대로 된 경제진단이 우선이다. 한국 경제가 구조적 위기에 빠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결국 구조개혁을 통한 체질개선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경제 활성화를 위한 동력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다음 금리를 내리든,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든 하라는 것이다. 지금 최경환 경제팀은 체질개선 없이 돈만 푸는 꼴이다. 펌프를 통해 물이 올라오려면, 펌프 자체가 제대로 돼야 한다.

◆한국 경제의 체질개선을 위한 해법을 제시해 달라.
“경제민주화 약속을 지켜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재벌 때리기 차원이 아니다. 중소기업과 벤처 등이 일어날 수 있도록 공평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재벌은 경영세습을 통해 봉건영토화의 모습으로 전락했다. 정부와 대기업이 손잡고 창의적인 연구·개발(R&D) 구축에 나서야 한다. 정부 주축으로 전국 곳곳에 R&D 전진기지를 만들어야 한다. 최소 10년 플랜을 통해 정부 예산과 대기업 사내유보금 등을 통해 200조원을 구축한 뒤 그 바탕에서 신성장동력도 찾고 창조경제도 해야 한다. 그간 우리 경제는 정치 논리 속에서 계속 병들었다. 이걸 풀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밖에 없다.” [대담=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 / 정리=최신형 기자]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 [사진=아주경제 유대길 기자 dbeorlf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