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아직 갈 길 먼 한국의 성문화

2015-09-01 09:25
아비쉑 추카르부티, RB코리아 전무

[사진=아비쉑 추카르부티 RB코리아 마케팅 전무]

콘돔의 역사는 길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양이나 송아지의 내장으로 만든 제품을 썼다는 기록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서는 기름에 적신 비단 종이로, 일본에서는 거북 딱지나 동물의 뿔과 같은 딱딱한 물질로 만들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콘돔이 양산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순이다. 고무의 신장성을 늘리는 기술이 가능해지면서다. 이후 1930년대 폴리우레탄 개발과 라텍스 제조법이 등장하면서 대량 생산이 시작됐다. 최근에는 다양한 색과 향을 입힌 제품이 나오기 시작했고, 더 나은 착용감을 위해 해부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한 제품도 나오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갖가지 브랜드들도 이 시기 쏟아졌다.  

한국 제품은 세계에서도 품질 좋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유독 한국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는 산업의 문화적 특수성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콘돔은 품질 못지 않게 소비자들의 감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다. 수천년 동안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역사를 지녀온 만큼 소비자들과의 소통에 오랜시간 공들여야 한다.

글로벌 콘돔업체들이 한국에 처음 진출할때 주목한 점은 보수적인 성 문화였다. 한국사회에서는 아직 콘돔을 사는 것 조차 금기시되고 있다.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은 사업 초기부터 20대를 중심으로 성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책임감 있는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캠페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청소년들의 학교 내 성교육도 이름뿐인 성교육이 아닌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강의여야 한다.

문화적 접근 못지 않게 맞춤식 시장공략도 중요하다. 듀렉스가 성공한 이유는 지역과 인종에 따라 차별화했기 때문이다. 성병 위험도가 높은 지역에는 두께감 있는 제품을 개발한 게 대표적이다. 

콘돔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안전한 성생활'이다. 콘돔이 성인용품이 아닌 '의료기기'로 분류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글로벌 1위 기업인 듀렉스의 경우, 안전성 검사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1회 생산분 43만개를 전량 폐기하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다. 의료기기인 만큼 제품의 안전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피임약 복용률은 가장 낮다. 반면 낙태율은 높은 국가에 속한다. 적절한 성교육을 받지못한 청소년이 성인이 되어서 콘돔·성 문화 자체에 부정적 인식을 갖기 때문에 한국브랜드는 자국 시장은 물론 세계에서도 외면받고 있다.

콘돔은 수천년전부터 지금까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할 것이다. 한국도 이제 변해야 한다. 최근 시장이 커지면서 일부 한국 젊은이들이 올바른 성 의식 전파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시대가 바뀌고, 새로운 시선으로 성을 바라보는 젊은 층의 모습처럼 한국도 다양한 목소리를 받아들이는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이면 글로벌 시장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를 볼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