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교육 활성화해야” vs “우리말 지켜야”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논란(종합)

2015-08-24 11:46

아주경제 이한선 기자 =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병기 추진을 놓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교육부 국가교육과정개정연구위원회는 24일 한국교원대에서 초등 한자교육 활성화를 위한 공청회를 열고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추진계획을 밝히면서 의견수렴에 나선 가운데 반대 시민단체들은 한글을 보호해야 한다며 기자회견을 통해 반대 입장을 내놨다.

김경자 국가교육과정개정연구위원장은 배포 자료를 통해 한자 교육 활성화와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에 관한 주제발표 내용을 공개하고 "2015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초등학교 한자 교육 활성화 방안을 추진하고자 한다"며 "초등학생에게 학습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말의 어휘력을 향상시키고 동시에 교과의 개념 학습을 돕는 한자 교육 활성화 방안을 탐색하는 것이 이번 공청회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초등학교 적정 한자 수는 300자에서 600자 중 어느 지점에서 결정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교과서에 한자를 얼마큼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에 대해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본문 안 한자어 옆에 괄호를 치고 그 안에 한자를 병기하는 방식, 교과서 날개나 각주에 한자어의 한자를 제시하고 그 의미를 드러내는 방식, 단원 말미에 주요 학습 개념을 제시하면서 그러한 개념이 어떠한 한자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설명하는 방식, 한자가 한글과 달리 표의 문자임을 드러낼 수 있는 방식으로 그림과 한자를 제시하는 방식 등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며 "자연스럽게 한자에 노출시킨다고 할 때 병기된 한자와 관련해 사교육이 유발되지 않도록 평가를 하지 않는 방안 등 어떤 별도의 지침을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검토도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한글 전용 어문 정책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글을 읽는다는 것이 단지 문자 기호 자체를 읽고 쓰는 것을 넘어서 문자 그 자체로 의미를 생성하고 표현하고 이해하는 사고 능력과 의사소통 능력임을 강조하고 독해의 측면에서 볼 때 낱말은 문맥 속에서 의미를 이해하는 것으로 한자 표기 및 한자 지식이 초등학생들의 읽기 능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며 "한글 전용 어문 정책을 지지하는 학자들 중에서도 교과서 한자 표기를 반대하는 것이 곧 한자 교육의 필요성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이 둘은 별도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한자 교육의 강화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우리말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쓸 수 있다는 점에서 한자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한글 전용이 곧 한자 교육 폐지와 동일시돼 온 것은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고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한자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를 양산하면서 청소년들의 국어 능력 저하로까지 이어지게 됐다고 비판한다"며 "한자 교육 활성화를 찬성하는 또 다른 일각에서는 한자 문화권 국가 간의 이해와 교류 증진을 위해서는 한자 능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장하면서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한 우리나라로서는 한자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한다"고 소개했다.

전광진 성균관대 교수는 공청회에서 “문제는 한자가 아니라 한자어에 있다”며 “한자가 낱낱 글자라면, 한자어는 우리말과 우리글에서 배척하고 싶어도 도저
히 무시할 수 없는 그런 엄연한 존재로 이 세상의 어떤 언어이든 고유어만 쓰고 있는 언어는 없으며 많든 적든 외래어가 있고 외래어가 적을수록 좋은 언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라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나라를 단위로, 민족을 단위로 볼 때 외래 문화는 전혀 없고 자생의 고유문화만 고스란히 지키고 있는 나라나 민족이 우수하다고 보면 안 되며 외래적인 요소를 주체적으로 수용해 자기 문화를 살찌우는 것이 현명한 처사이고 역사는 그렇게 발전돼 왔다”며 “자기 것만 순수하고 좋다고 여기어 외래문화를 배격한 나라나 민족은 스스로 멸절의 길을 걸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한자는 자취를 거의 감추고 있지만 한자어는 무수히 많이 쓰이고 있다”며 “한자는 생각의 눈을 뜨게 하며 한글전용에서는 무엇이 고유어이고 무엇이 한자어인지에 대해 외관상으로 전혀 구분이 안 돼 초등학생들은 한자어라는 존재 자체를 잘 모르고 있고 존재에 대한 인식만으로도 효과가 대단히 클 수 있다”고 밝혔다.

전 교수는 “한자는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게 되고 한글전용은 읽기를 잘하게 하지만 핵심어에 대한 파악이 어렵고 생각이 파고들 여지를 남기지 않는 반면 한자병기는 단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여지를 남기고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게 하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전 교수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는 한자를 배제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었으며 훈민정음 자체가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고 있고 세종의 명령에 따라 신하들이 지은 용비어천가, 세종이 직접 지은 월인천강지곡, 세종의 명령에 따라 아들 수양대군이 지은 석보상절 같은 문헌이 모두 그러한 전통을 따르고 있다”며 “한글 창제 이후 약 500년간 한자와 한글이 혼용되어 온 사실은, 그 둘이 상호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국민적 통념이 있었음을 명백히 말해준다”고도 했다.

그는 또 “순우리말이 좋기는 하지만, 양적으로 매우 적기 때문에 고품격 어문 생활에 필요한 모든 단어를 순우리말로만 적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로 세종대왕의 참뜻을 한반도에만 가두지 말고, 세계만방으로 확산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참다운 한글 사랑이자, 세종대왕의 참뜻을 받드는 일일 것”이라며 “한자병기 확대가 초등학생들을 학원으로 이끌 수 있다는 우려도 한자어와 한자를 구분하지 못한 결과이며 학습량 부담이 커진다는 것도 실태를 오인 한 것에서 나온 발상으로 현행 교과서에 이미 한자어가 무수히 많이 쓰이고 있으며 한자어 학습은 현재에도 반드시 해야 하는 어휘 학습이어서 한자를 병기한다고 해서 한자어 학습 부담이 추가로 더 늘어나는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박용규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교육부가 제시한 한자교육 활성화 추진 이유는 설득력이 너무도 없기에 문제가 있다”며 “국가・사회적 요구 증대는 한자단체의 건의를 받은 이후에 교육부가 정책 연구를 시켜 나온 연구보고서에 근거를 두고 있어 객관성이 없으며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해 초등
학교의 98%가 한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주장도 과잉해석을 한 것으로 정확한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또 “인문・사회적 소양 함양과 한자 교육의 활성화가 무슨 연관이 있는가? 한국근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고 인문・사회적 소양 함양은 초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박물관 견학이나 체험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가지게 되고 재미있는 책을 읽음으로써 얻어진다”며 “교육부는 국어기본법 시행령을 위반하고 ‘교육 목적상 필요한 경우’에 한자를 병기할 수 있다는 규정을 슬쩍 집어넣었고 ‘교육 목적상 필요한 경우’ 얼마든지 한자를 병기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 규정을 교육부는 사회적 합의도 없이 만들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으며 더 큰 문제는 국어기본법의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국어기본법 제3조 제2호는 ‘‘한글’이란 국어를 표기하는 우리의 고유문자를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제14조 제1항에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초등 한자교육의 필요성은 교육부도, 교사도, 학부모가 제기한 것이 아니었고 한자교육 요구는 2002년 한자교육 추진 단체의 건의서로부터 최초로 시작됐으며 이 단체는 2015년 현재 제40회 한자급수인증시험을 공동후원하고 있다”며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가 초등학교 한자교육 실시 건의문을 교육부에 내서 한자교육을 하도록 관철하고자 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한자 사교육 업체들이 초등학교 교장들을 상대로 급수 시험이나 방과후 상설반 영업을 뛰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한자 문맹’ 괴담을 국한문혼용론자들이 만들어 퍼뜨렸다”며 “중등학교가 아닌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을 활성화하겠다는 교육부의 방침은 국한문혼용론자들과 한자 사교육 업체들의 농간에 교육부가 놀아난 꼴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이 참여한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는 이날 교원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자 교육 활성화와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반대에 나섰다.

운동본부는 교육부가 교육과정 총론 시안에서 ‘초등학교에 적정한 한자 수를 제시하고 교과서에 한자 병기의 확대를 검토한다’라는 문구를 삭제할 것을 촉구했다.

운동본부는 “교육부가 단 1회의 공청회로 초등학교에 적정 한자 수를 제시하고, 초등 교과서에 한자병기를 강행하면서 단 1회의 공청회로 한글전용의 대한민국 문자정책을 파괴하려고 한다”며 “광복 70년의 가장 성공한 정책이 한글전용정책으로 문맹률이 없어졌고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성취했는데 우리말과 한글을 지키고 보호해야할 교육부가 한자급수시험을 주관하고 후원해서 돈벌이를 하고 있는 한자단체의 요구를 수용해 ‘초등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고 적정 한자 수를 제시하겠다’고 2015 개정교육과정 총론 시안에서 밝혔다”고 지적했다.

운동본부는 “초등 교과서에 한자는 1970년 박정희 정부에서 폐기돼 오늘에 이르렀고 46년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이 초등교육이 이뤄져 왔다”며 “문자생활을 한글로만 해도 우리말의 뜻을 이해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고, 소통에도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으며 대학교 교재에서도 한자가 사라진 가운데 한자가 없는 한글로만 작성된 교재로도 학습에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김경자 국가교육과정개정연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