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듯…'상류사회' 박형식
2015-08-12 08:28
“연기에 대해 이렇다저렇다 이야기하는 것이 여전히 민망해서요.” 한참을 머뭇거리다 꺼낸 신념은 조심스럽지만 확고했고 설익었지만 단단하게 여물어 가는 중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셨죠?” 박형식은 제 진심이 오롯이 전달되지 못할까 봐 종종 되묻고는 했다.
“캐릭터의 감정에 완전히 충실해야 하죠. 말투 같은 것도요, 대사를 내 입맛에 맞게 치는 게 아니라 정말 그 사람이 돼서 내뱉는 거예요. 어떤 노력을 해서든지 기필코 감독님, 작가님의 상상 속에 있는 인물을 그대로 구현해내고 싶어요. 감독, 작가와 하나가 되는 거죠. 그럼 박형식은 없는 것 아니냐고요? 경험, 가치관, 감성이 박형식 것인걸요.”
박형식은 유창수를 “‘순수’한 사람”이라고 했다. “힘겨움을 모르고 자란 창수가 악할 리가 있을까요? 계급의식이 있을까요? 단지 표현이 서툴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가난하면서도 밝기만 한 이지이(임지연)를 보고 ‘마음이 이렇게 하얀 사람도 있구나’하며 호기심이 생긴 것도, 지이를 만나 점점 따뜻하게 변화하는 것도 창수 안에 순수함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 창수가 친형보다 더 믿었던 친구(성준)에게 ‘넌 네 계급의식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지 못할 거야’라는 말로 배신당할 때 마음이 오죽했겠어요. 창수가 아무리 재수 없고 싹수없는 말을 해도 귀엽게 느껴지지 않았나요? 창수 안에 숨겨진 순수함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창수가 지이와 헤어지고 어머니 앞에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결혼은 정말 안 되겠다”며 오열했을 때 박형식에게 16부작 드라마 ‘상류사회’를 통틀어 가장 많은 찬사가 쏟아졌다. 애써 웃어 보이며 “미치겠다, 엄마”라고 툭 내뱉은 박형식은 난생처음 겪는 이별의 아픔이 생경하다는 듯, 엄마 뜻대로 살았던 자신의 꼴이 우습다는 듯 “이게 뭐야”를 되뇌다가, 사랑하는 사람이 마음에 얹힌 듯 가슴을 치며 꺽꺽거렸다.
박형식은 다시 촬영하는 듯 앞섬을 뜯고 가슴을 쳤다. ‘연기의 기술’에 대한 목마름을 다시 한번 호소했다. “캐릭터와 혼연일체 한다고 다가 아니에요. 그걸 시청자가 어떻게 알겠어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기술적인 면을 채워야죠. 화 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이렇게(박형식은 테이크 아웃 커피잔을 손으로 구기고, 책상을 내려치고, 목소리를 한 톤 높였다.) 여러 가지인데 그것 중에 어떤 것이 가장 공감받을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박형식은 인터뷰 내내 고뇌했다. 말하고자 마음을 먹고 나면 거침없이 제 생각을 전했지만 말하기로 결심하는데 꽤 오랜 시간을 썼다. 이유를 물었더니 “유난스럽게 숙제 검사를 받는 느낌”이라고 답했다.
“제가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인데 누구한테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나 숙제 열심히 하고 있어요. 벌써 이만큼 했어요’라고 하는 것 같아요. 말하는 것 자체도 유난스러울뿐더러 나중에 숙제가 완성됐을 때 미숙하면 더 혼날 것 같아 두렵기도 하고요. 혼자 숙제를 잘 끝내서 작품으로 증명해야죠.” 소리 없이 잠잠하다고 강물이 흐르지 않는 것은 아니지. 연기에 목마른 박형식은 바지런하지만 다급하지 않게, 묵묵하지만 멈추지 않고 우물을 파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