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경영시대 도래] MK 신의 한수, ‘현대제철’ 질주의 길을 닦다
2015-07-29 15:11
(1) 오너의 선택, 판세를 뒤집었다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지난 24일 여의도 한국거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현대제철 2분기 실적 발표를 겸한 경영실적 설명회(IR).
이날 현대제철은 2분기 별도기준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3조7022억원과 4245억원을, 당기순이익은 1965억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영업이익률은 11.5%로 지난해 4분기 11.8%에 버금가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매출액은 모기업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완성차 판매 감소 및 공급가 하락의 영향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3% 감소했지만 2분기 건설경기 회복세에 힘입어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8.3% 증가한 것이 영업이익률 증가의 외형적 배경이었다.
올해는 정 회장이 현대가 최초의 철강업체인 현대강관(구 경일산업, 현대하이스코의 전신) 대표에 오르며 철과 인연을 맺은 지 34년을 맞는다. 5년 후에는 현대제철의 전신 인천제철 대표이사에 오르며 현재까지 철강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34년의 기간 동안 고로 일관제철소 건설의 꿈은 세 번의 좌절을 겪어야 했지만 정 회장에게 이 기간은 아픔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던 경쟁업체와의 갈등 속에서 꾸준히, 적극적으로 신사업에 투자하며 영역을 확대했다. 공급과잉과 경쟁과열 등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졌으나 정 회장의 한 발 앞을 내다본 식견을 앞세워 과감한 투자를 전개해 연이어 성공을 거뒀다.
이를 두고 현대차그룹에서는 철강사업이야말로 정 회장의 ‘신의 한수’가 아니었다면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한발 더 나아가 철강사업은 정 회장이 자동차와 함께 이뤄낸 가장 큰 업적 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1980~2000년대 국내 철강산업은 일부 품목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만성적인 공급 부족 사태에 시달렸다. 워낙 수요산업의 성장이 빠르다보니 철강 공급이 이를 따라잡지 못한 탓도 크다. 당시 대다수 철강업체들은 공장 하나 건설해 놓으면 구매업체들이 번호표를 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앉아서 돈 버는 시대였다. 굳이 빚을 얻어 사업을 확장할 필요가 없었다.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도 안정에 길들여져 있었기에 투자를 고집하는 정 회장을 못마땅해 하는 이들도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 회장의 의지는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뛰어든 사업마다 성공을 거뒀고 더 많은 부를 창출했다.
1999년 현대그룹에서 분리돼 현대자동차그룹을 이끌게 된 정 회장은 그룹이 포기한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를 넘겨받아 강원산업과 삼미특수강을 인수하며 사업을 더욱 확장해 나갔다. 그리고 2004년 한보철강을 인수해 고로 건설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사실 일관제철소 건설 결정 과정에서도 위험부담이 크다며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정 회장은 자동차사업의 성공을 위해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고 말해 추진할 수 있었다. 그 때 고로 사업을 중단했다면 지금의 현대제철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2010년 고로 1, 2고로를 완공한 뒤 공급과잉 우려가 제기됐지만 정 회장은 곧바로 3고로 건설을 결정했다. 2013년 9월 3고로가 완공된 뒤 현대차는 본격적으로 완성차에 현대제철이 생산한 고장력강판을 대대적으로 적용하며 품질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 관계자는 “철강은 정 회장이 맡은 유일한 소재 사업이다. 철강사업에 사활을 건 이유는 자동차 등 그룹 계열사들이 생산하는 완제품이 모두 철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최고 품질의 철은 최고의 완제품 생산의 밑바탕이 된다”며 “정 회장은 철강산업이 위기일 때 역발상으로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해 수요 회복 시기에 맞춰 공장을 완공해 성공을 거뒀다. 현대제철 임원들이 기존 사업에만 집중해 좁은 시야를 가진데 반해 정 회장은 한 발 밖에서 넓은 시각으로 산업을 바라봤기 때문에 가능했다. 경쟁사들보다 한 발 앞선 결단과 선택은 오너 경영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정 회장은 한국 기업에 있어 오너의 존재가 왜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