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아의 Artistic Developer 트렌드뷰] 20세기에 소홀하던 예술, 어떻게 융합할 것인가

2015-07-20 16:01
장은아 원더피엠 대표(한국외대 겸임교수)


2009년에 1월 아이패드가 세상에 선보이던 날,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넘기며 애플에 대한 정의를 했던 말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애플은 언제나 리버럴 아트(Liberal Arts)와 테크놀로지(Technology)가 교차하는 지점에 존재해 왔다. 우리가 아이패드를 만든 것은 항상 테크놀로지와 리버럴 아트의 갈림길에서 고민해 왔기 때문이다. 그 동안 사람들은 기술을 따라 잡으려고 애썼지만 이제 기술이 사람 속으로 스며들게 해야 한다"

이 때부터 기술력과 인문학의 융합이라는 말이 등장했고, 그때부터 우리는 컨버전스(Convergence)라는 용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컨버전스의 시도가 처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찍이 15~16세기에 이탈리아 피렌체를 지배하던 메디치 가문에서 예술가, 철학자, 과학자, 상인 등 서로 다른 분야의 공동작업을 후원하기 시작하면서 유럽 문화·예술의 부흥기인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했다.

이것을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라고 하며 전혀 다른 역량의 융합으로 생겨나는 창조와 혁신 현상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여러 다른 분야의 융합을 통해 만들어지는 창조물의 경쟁력은 이미 검증된 바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인 비투루비안 맨(Vitruvian Man)은 인체의 비례관계를 해석한 도판인데, 이 드로잉은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인간중심의) 과학을 예술과 어떻게 융합시켰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이 그림은 대칭-비율, 절대-상대적 수학적 사고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인간의 이상적인 인체의 아름다움을 정확한 수학적 비례를 통해 규명하고자 한 것이다.

르네상스의 과학적 사고는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원근법과 명암법의 탄생을 만들었고, 이것은 훗날 사진기의 원리가 됐다. 다빈치가 인체 내부에 대한 스케치를 여러 장 남겼다면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았던 미켈란젤로는 해부학 연구의 실체를 그림 속에 은유적으로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이 시기는 문화·사회·예술·과학·정치 분야에 있어 가장 부흥한 시대로 꼽히며 역사적으로 문화 예술의 혁명기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메디치 가문처럼 서로 다른 분야의 융합을 시도하는 것은 현실에서 쉽지만은 않다.

최근 "한국의 미래 경제는 융합만이 살 길이며, 융합시대에 정부와 민간 모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융합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으나, 르네상스 시대가 추구했던 본질과는 무관하게 융합이라는 단어 자체만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모양새다.

인간 본연의 가치를 찾으려는 르네상스 시대와 달리 물질적인 가치 추구를 위해 생존과 경쟁을 도모하기 위한 수단으로 '융합'을 강조하지는 않은지 생각해 본다.

특히 우리에게 예술이란 정규 교육과정 속 교과서에서 접했던 미술, 음악, 문학, 무용에 대한 감상과 기억에서 멈춰버린 탓에 성인이 되서는 예술이 먼 나라 이야기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미술분야의 경우 교과서에 실린 작품들은 40~50년이 지나도 언제나 등장하는 작품들일 뿐 최근의 변모되는 예술의 과정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않다.

성인이 된 후 알게 된 현대 예술은 소싯적 배웠던 그 모습과는 너무도 달라 이 작품을 어떻게 감상하고 평가해야 할지를 모른 채 점점 멀어지고, 예술은 예술 종사자들만의 장이 돼 대중과는 쉽게 소통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하게 됐다.

이런 이유로 우리의 예술과 문화가 산업과 접목·발전하기는 쉽지 않고, 경제 성장에 비해 문화·예술의 발전이 더딘 것이다.

예술인들이 예술을 대중과 사회 속에서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우리가 꿈꾸는 제2의 르네상스가 열리게 된다. 우리는 20세기에 소홀했던 예술에 관심을 기울여 산업 간 융·복합화가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대한민국 컨버전스 시대가 열리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