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메르스' 쓰나미 덮친 국립중앙의료원 직접 가보니

2015-06-22 00:00

국립중앙의료원 전경 [사진=한지연기자]


아주경제 한지연 기자 = "환자 치료에 대한 중압감은 물론 동료들의 감염이 늘면서 느껴지는 심리적 불안감이 크다. 어린 자녀가 있는 의료진은 감염·낙인 우려 때문에 한 달 이상 집에 못 들어간 경우도 있다. 필요한 경우 정신과 전문의와 면담하면서 공포와 싸우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의료진 A씨)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거점 의료기관인 국립의료원. 19일 찾은 병원은 화창했던 날씨와 달리 병원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웠다.

정문에 도착하자 차량을 통제하는 바리케이드가 높게 설치돼 있었다. 하루 수천명이 방문했던 이곳은 인적이 뚝 끊긴 '버려진 섬'이 됐다.

◆감염보다 무서운  환자 떠나보내는 공포 

국립의료원에는 국내 첫 메르스 환자를 비롯해 19명의 환자가 입원해 있다. 확진자가 12명, 의심 환자가 7명이다. 그동안 확진자 2명이 완쾌됐고, 3명은 사망했다.

이 병원의 감염·호흡기내과 등 30명의 의사와 간호사 80명은 한 달째 집에 가지 못하고 '메르스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의료진 안내를 받아 메르스 환자들이 입원한 본관 5∼8층 격리병동에 들어서자 '전운'이 감돌았다. 중환자 1명당 보통 5~6명의 의료진이 붙는데,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중환자에겐 1~2명이 추가로 배치된다. 이들은 한 달째 2~3시간씩 쪽잠을 자면서 24시간 동안 환자를 관리 중이다.

정은숙 수간호사는 "중환자가 늘면서 경력이 적은 신입과 결혼을 앞둔 간호사,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간호사까지 총동원돼 근무하고 있다"며 "의료진 감염에 대한 공포와 '감염 덩어리'라는 세상의 따가운 인식, 24시간 긴장할 수밖에 없는 업무 환경이 매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의료진으로서 가장 큰 어려움을 묻는 말에 조영중 진료총괄지원부장은 "응급환자가 발생해도 감염 문제로 방호복·마스크·장갑·소독 등을 해야 해 환자에게 접근하는 데만 10분 이상이 걸린다"며 "내가 감염될까 하는 두려움보다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쳐 환자가 잘못될까 봐 더 무섭다"고 말했다. 

병원은 음압병실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6~7층에 음압병상이 17개 있고, 추가 감염자 발생에 대비해 17개를 추가했다. 최대 6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동식 음압텐트 병실도 증축 중이다.

신수영 중환자실 수간호사는 "어제도 오후 3시에 컵라면 한 개를 먹고 새벽 3시까지 버텼다"면서 "31년간의 병원생활 중 지금이 가장 힘들지만, 환자가 완치돼 퇴원하면 그것만큼 큰 보상은 없다"고 말했다.
 

국립중앙의료원 내부 [사진=한지연 기자]

 

◆병원 용역직원·인근 상인도 극심한 피해

외래 환자의 발길이 끊긴 병원 1층 로비는 텅 빈 채 곳곳의 불이 꺼져 있었다. 커피숍·편의점·매점 등 편의시설도 모두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병원에는 접수 데스크 직원, 환경미화원, 경비원 등 최소 인력만이 상주해있었다.

국립의료원에서 2년째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하는 이모(59)씨는 "환자 발길이 끊기면서 업무량이 줄자 업체 측에서 미화원의 월급을 반으로 줄이겠다고 했다"면서 "의료진 고충만 주목받고 우리 같이 뒤에서 지원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과소평가받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병원 인근 상인들은 하루빨리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상인 박모(63)씨는 "이 지역은 병원 외래객과 관광객 매출이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곳"이라며 "메르스 사태 장기화로 10시간 동안 있어도 하루 밥값도 벌기 힘든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김 모(45)씨 역시 "손님들이 불안해하기 때문에 상인들은 마스크도 못쓴다"며 "메르스로 죽는 환자들도 억울하겠지만 우리도 굶어 죽게 생겼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