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농어촌] '숨비소리' 명맥 잇는다…제주 해녀 르네상스

2015-06-16 15:40

제주 법환포구에 세워진 해녀 조각상 [사진 = 노승길 기자]

아주경제 노승길 기자 = '숨비소리'란 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물 위로 올라와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를 말한다. '호오이 호오이' 마치 휘파람을 부는 것처럼 들리는 숨비소리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극한까지 숨을 참아내는 해녀들의 삶의 소리다.

해녀의 삶은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란 속담이 있을 정도로 고되다. 맨몸으로 바다에 들어가 수산물을 채취하는 그네들의 삶은 힘들고 위험하다. 해녀의 삶을 살겠다는 젊은 사람이 줄어드는 이유다.

그러다 보니 해녀 대부분이 50대 이상일 정도로 고령화됐고 머지않아 우리나라 전통문화유산인 해녀의 명맥이 끊길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돌고 있다.

1970년대 1만4000여명에 달했던 제주해녀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4000여명 밖에 남지 않았다. 단순히 숫자의 감소 못지않게 고령화는 더 심각한 문제다.

70대 이상이 34.5%, 60대 37.9%로 60∼70대 해녀가 전체 해녀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30대 미만은 0.2%에 불과하다.

고령과 질병 등에 따른 물질 조업 은퇴와 사망 등으로 현직 해녀가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해녀가 가장 많았던 1960년대 전후에는 제주에서 물질을 배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산업화와 관광개발 정책 등의 영향으로 새로 물질을 배우는 사람도 점차 없어졌다.

이에 정부와 제주도가 해녀학교를 설립하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등 해녀 문화 보존을 위한 노력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사진 = 노승길 기자]


우선 해녀의 명맥을 잇고, 직업 해녀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해녀학교가 서귀포시 법환동에 지난달 23일 문을 연 것은 그 시발점이다.

서귀포시, 서귀포수협, 법환동 어촌계 등이 손잡고 운영하는 법환잠녀마을 해녀학교는 해녀 물질과 문화 등을 전수하는 전문 교육 과정을 운영한다.

단순히 해녀 체험을 위한 시설이 아닌 전문해녀 양성을 위한 해녀학교는 이곳이 최초다.
 

법환포구에 마련된 해녀학교 자연체험장. 뒤에 범섬이 보인다. [사진 = 노승길 기자]


교육 과정은 해녀 문화를 교육할 인력을 키우는 '해녀교사반', 직업 해녀 양성이 목적인 '양성반', 하루 동안 물질을 체험하는 '체험반', 해녀 문화한 전문 지식을 갖춘 해설사를 양성하는 '해설사반' 등 4개로 나뉜다.

법환마을 해녀 89명 중 52명이 해녀학교 교사로 참여해 현장에서 터득한 생생한 물질 기술과 지식을 전수하고 있다.

양성반 졸업생에게는 어촌계에 가입해 일정 기간 '인턴 해녀' 과정을 거치면서 물질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다행히 해녀 교육과정에 젊은 층의 관심과 호응이 좋은 편이다. 양성반 1기 교육생 30명 중 30∼40대가 80%고, 20대도 2명이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제주에 왔다는 해녀학교 학생 박은실(32)씨는 "소라나 전복 등을 직접 잡아서 먹고 싶다는 생각에 해녀학교에 지원했다"라며 "제주도에 연고도 없이 혼자 내려왔지만 졸업 후 어촌계에 가입이 된다면 생업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양홍식 서귀포시 해양수산과장은 "젊은 분들이 큰 호응을 보여주는 것은 제주 앞바다에 숨비소리가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이라며 "해녀학교 개교를 통해 해녀문화 계승 및 보전을 비롯해 어촌 마을 살리기, 수입창출 등 다양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 노승길 기자]


해녀학교와 함께 제주 해녀의 삶과 역사를 집대성 해놓은 제주시 구좌읍 해녀박물관 역시 해녀 문화의 보존에 앞장서고 있다.

해녀의 의식주 생활, 일터, 생애를 한눈에 알 수 있는 각종 유물과 자료의 전시는 물론 노약자 배려, 공익에 대한 헌신, 생태계와의 공존 등 해녀의 공동체 정신도 엿볼 수 있다.
 

해녀들의 작업 쉼터인 불턱을 모형으로 전시해놓은 해녀박물관 [사진 = 노승길 기자]


또한 해녀 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한 행사로는 다양한 해녀 체험 프로그램으로 짜인 제주해녀축제, 제주 해녀사진 전시회 등을 매년 연다.

해녀박물관은 해녀문화 보존·전승에 관한 조례 제정, 해녀문화 국제학술대회 개최, 해녀문화 자료집 발간 등으로 해녀문화 세계화 추진에도 힘써왔다.

이 같은 제주도의 노력에 힘입어 문화재청은 올해 3월 제주해녀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했다. 등재 여부는 내년 하반기에 정해진다.

그동안 종묘제례, 강릉단오제, 아리랑, 김장문화, 농악 등 한국 고유문화 17건이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내년에 해녀가 등재에 성공하면 우리나라에서 18번째다.

강권용 해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여성, 자연, 노약자, 생태계 등 해녀가 가진 가치가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가치와 들어맞는다"라며 "해녀가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될 가능성은 99%"라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