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SNS 루머 속 병원 가보니

2015-06-04 02:00
- 불안 들어찬 진료실…'대기환자 0명'

일 서울 시내 한 병원 메르스 감염자 선별진료소 앞에서 병원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남궁진웅 기자 timeid@]


아주경제 한지연 기자 = "며칠 전부터 썰렁해요. 오후 진료로 붐빌 시간인데 한 명도 없잖아요."

3일 오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 환자가 다녀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서울의 A의원. 평소 같으면 외래환자들로 한창 붐벼야 할 시간이지만 환자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환자 대기실에는 대기인원 '0명' 표시가 선명했다.

병원 관계자는 "환자는 지난주부터 끊겼고, 인근 어린이집 학부모들의 민원전화만 온다"며 "병원에서 일하는 우리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병원이 입주한 건물 앞의 약국과 식당, 카페 등도 손을 놓고 있었다. 이 의원이 위치한 건물 1층 카페 점원은 "이 시간이면 진료를 마치고 나온 아이들과 엄마들로 앉을 자리가 없어야 정상인데 며칠 전부터 손님이 뚝 끊겼다"며 "'메르스 괴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인근 식당과 레스토랑, 옷가게 등 상가 전체가 울상"이라고 말했다.

A의원을 이용했던 학부모들은 극도의 불안감을 드러냈다.

30년간 이 지역에 살았다는 안모(37)씨는 "해당 병원은 365일 밤 늦게까지 진료해 이 지역 직장맘들이 자주 애용했던 곳"이라며 "메르스 감염 위험도 모르고 애들을 데리고 (병원을) 다녔던 걸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고 분노했다.

박모(29)씨는 "이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육아맘 카페 등을 통해 메르스 감염 위험 병원 명단이 돌고 있는데 정부가 감추기만 한다고 감춰지냐"며 "인근 지역주민, 어린이집, 유치원 등에는 병원 명단을 공개해 시민들 스스로 조심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병원이 입주한 상가 주인들도 분통을 터뜨렸다. 가뜩이나 빈 상가가 많은데 출처 없는 ‘메르스 괴담’이 번지면서 건물 전체가 마치 바이러스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건물에서 1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60)씨는 "우리 건물에 있는 병원에 메르스 의사가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면서 "누군가 차라리 속 시원히 말해줘야 손님이 없어도 덜 억울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3일 서울 한 대형마트 쇼핑카트 보관소에서 한 직원이 카트 손잡이 부분을 소독하고 있다. [유대길 기자 dbeorlf123@ ]


인근에 위치한 B대형병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해당 병원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가 메르스 확진자로 판명 나면서 B병원을 이용 중인 대다수 환자가 불안에 떨고 있었다. 실제 해당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료진과 행정직원, 환자 등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마스크를 착용한 최모(37)씨는 "친구 병문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왔는데 병원은 물론 이 지역을 오는 것조차 꺼려진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보다 SNS로 받는 메르스 소식이 더 빠르고 구체적인데 손 놓고 정부 말만 믿어달란 거냐"고 반문했다.

인근 편의점, 마트, 약국 등 병원을 둘러싼 지역상권도 직격탄을 맞았다.

병원 인근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며 "메르스 괴담이 본격적으로 유포되던 3일 전부터 일 평균 매출이 35%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병원 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69)씨는 "신종인플루엔자, 야생진드기, 에볼라 때도 불황이었지만 요즘 같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어 "점심부터 오후 2시까지 가장 바쁠 때인데 손님이 평소의 절반도 안된다"고 울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