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부실키운다…당국 압박에 중기·기술금융 대출 급증 '제2 모뉴엘' 우려

2015-05-21 16:31

 

아주경제 홍성환 기자 = 모뉴엘 사태로 시중은행들이 3000억원이 넘는 돈을 날릴 처지에 놓이면서 은행권을 중심으로 머지않아 '제2의 모뉴엘 사태'가 터질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기술금융 드라이브를 걸고 실적 줄세우기에 나서면서 은행들은 앞다퉈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늘리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전문인력, 기술평가 방법 등 관련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이어서 늘어나는 실적만큼 부실대출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은행권 전체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25조8006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말 19억8994억원과 비교해 한 달 새 5조9012억원 늘어난 수치다.

특히 올 들어 4개월 동안에만 무려 16조8759억원이나 급증했다. 이는 당초 금융당국에서 밝힌 목표치(20조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지난 4월 한 달만해도 9000건이 넘는 기술신용대출이 이뤄졌다. 영업일수로 나누면 하루당 400건이 넘는 셈이다.

은행별로 보면 기업은행이 6조3208억원으로 가장 많고 국민은행이 4조2947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이어 우리은행 3조9253억원, 신한은행 3조8812억원 순이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은 각각 2조6224억원, 1조5766억원이다.

은행들이 이처럼 기술신용대출 확대에 나서고 있는 것은 은행 혁신성평가에서 기술금융 실적이 차지하는 비중이 40%나 되기 때문이다. 평가 결과에 따라 실적이 미흡한 은행에는 불이익이 주어진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혁신성평가 항목에서 기술금융 실적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술금융대출 급증에 힘입어 중소기업대출도 꾸준히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4월 말까지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은 22조원이나 증가했다. 이미 지난해 연간 증가폭(33조5000억원)의 절반을 훌쩍 넘어섰다.

하지만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이 늘어나면서 부실 우려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장기 불황으로 인해 기업들의 사정도 좋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4년 3분기 상장기업 경영분석을 보면 이자보상비율이 100%에 미달하는 기업이 30.5%로 나타났다. 이자보상비율이 100%를 밑돈다는 것은 영업이익으로 대출이자도 갚지 못한다는 의미다.

특히 아직까지 전문 인력, 기술평가 역량 등 기술금융과 관련된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단순히 대출총액만 늘어나는 것은 곧바로 부실대출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여기에다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과정에 금융당국이 지나지게 간섭하고 있는 점도 부실대출 사태를 초래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문제가 된 경남기업의 경우 3차 워크아웃 이전에도 금융감독원이 경남기업에 700억원대 자금 지원이 이뤄지도록 채권은행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정황이 검찰수사를 통해 흘러 나오고 있다.

이에 금융권 안팎에서는 금융당국의 지나친 간섭으로 인해 제2의 모뉴엘, 경남기업 사태가 또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회생이 어려운 기업인 걸 알면서도 금융당국을 비롯한 이른바 권력기관의 압박에 따라 지원에 나선 사례가 어디 경남기업뿐이겠느냐"면서 "금융당국의 지나친 관치 관행을 청산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