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채무자 대리인 제도’··· '누더기 법안'에 대상범위 한정

2015-05-24 07:00

[사진제공=아이클릭아트]
 

아주경제 이정주 기자 = 과도한 채권추심을 방지하고 금융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채무자 대리인 제도’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해당 법안(공정추심법)이 국회 심의를 거치는 동안 대폭 수정되면서 '누더기' 법안이 돼버린 탓이다. 심의과정에서 대상범위가 지나치게 한정되고,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지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금융감독원이 불법 채권추심 척결대책으로 제시한 '채무자 대리인 제도 홍보 및 활성화 지원'이 실제 법안 개정 이후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대상범위가 대부업체로만 한정된 데다 지자체의 예산 문제로 정작 서민층에 혜택이 돌아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채무자 대리인 제도는 채무자가 변호사 등을 채권추심에 응하기 위한 대리인으로 선임, 채권추심자에게 통지하면 채무와 관련해 추심자가 채무자에게 말·글·영상 등을 보내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추심에 관한 모든 연락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채무자 대리인을 통해야 한다.

채권자가 이를 위반할 경우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채무자 입장에서는 과도한 추심행위에 따른 피해 및 부담을 덜 수 있고, 추심자의 금융약자에 대한 불법행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문제는 채무자 대리인 제도의 대상 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점이다. 개정법안이 국회 법사위를 거치며 예외 조항이 과도하게 추가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서민들이 실제로 급전이 필요할 때 많이 이용하는 카드·캐피탈·신용정보사 등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는 최근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가 대부업체 이용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91%가 신용정보·카드사 등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데 찬성한 것과는 상반된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국회 입법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부분들이 다 빠진 누더기 법안이 됐다”며 “개정법으로는 (금융약자 보호에)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지역이 너무 제한적이라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현재 무료로 변호사를 지원하는 곳은 서울시와 성남시 두 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시행령 개정 당시 중앙정부 예산이 아닌 각 지자체 관할로 정하는 바람에 제도 운영 의지가 있는 극소수 지자체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금융선진국인 미국이나 일본에서 시행 중인 채무자 대리인 제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며 “정작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적용 대상을 넓히고 중앙 정부의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