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교의 세상보기] 박근혜의 사정, 시진핑의 사정

2015-04-29 18:48

정원교 국제담당 대기자

수사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서는 소위 ‘3보’가 맞아 떨어져야 한다. 검찰에서는 오래전부터 보안, 보고, 보도를 수사의 3보로 꼽았다. 일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지만.

우선 보안. 수사를 둘러싼 보안 유지가 되지 않는다면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수사 진행 상황이 구체적으로 노출되면 잠재적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하거나 심지어 잠적해 버리기도 한다.

다음은 보고다. 내부적으로 보고가 원활하게 이뤄져야 수사를 놓고 혼선이 빚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과거 이게 제대로 안 돼 수사팀 내부에서 갈등이 빚어졌던 사례가 적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보고는 거꾸로 외압의 빌미를 주는 측면도 있다.

보도 또한 빠뜨릴 수 없는 요소다. 보도가 수사 기밀을 노출시키거나 수사를 앞질러 갈 경우, 또는 수사와는 역주행하게 되면 전체적인 수사가 헝클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보도가 보고보다 수사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특히 정권 차원에서 벌이는 사정(司正)의 경우 3보는 수사 성공의 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 필요조건은 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해외자원개발 비리 수사는 출발부터 문제가 있었다. 대대적으로 나팔을 불면서 시작하는 것부터가 영 미덥지 않았다. 3보 중 첫째인 보안은 철저히 무시된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정부가 제 발등을 찍은 뒤 국정은 방향을 잡지 못하는 실정이다. 박근혜 정부는 왜 뒤늦게 해외자원개발을 사정 대상에 포함시켰을까. 해외자원개발은 원래 성공 확률이 낮은 게임인데도 말이다. 이웃 나라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반부패 드라이브를 통해 정적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한편으로 높은 지지율 속에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았음직하다.

하지만 이는 겉만 보고 속은 들여다보지 못한 거다. 시진핑이 벌이는 부패와의 전쟁은 오래 전에 정교하게 기획된 작품이다. 더욱이 언론 자유가 없는 데다 사법권 독립도 안 돼 있는 중국의 현실은 공산당 주도로 무소불위의 사정을 밀어붙일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그래픽=아주경제 임이슬 기자]

여기에다 자식이 없어 좌고우면할 것도 없는, ‘특급 소방수’이자 ‘포청천’으로 불리는 왕치산(王岐山)이 당 최고 감찰기관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로 버티고 있는 건 시진핑의 사정이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는 충분조건이다.

야오이린(姚依林) 전 부총리의 사위인 왕치산은 탁월한 업무 추진력으로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에게 발탁된 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2003년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차례로 극복해 낸 인물.

이러한 왕치산을 중앙기율위 책임자로 앉힌 사람은 다름 아닌 시진핑이다. 지난 2012년 11월 18차 당 대회를 통해서다. 당시 시진핑이 총서기로 등극하기 전 부패와의 전쟁을 치를 ‘장수’로 이미 왕치산을 지목해 뒀으니 이 얼마나 원려(遠慮)인가.

호랑이(부패한 거물 당 간부)를 치는 수순도 치밀하기 이를 데 없다. 절대 몸통을 직접 겨냥하는 법이 없다. 주변에서부터 서서히 ‘가지치기’를 해 나간다. 더 이상 꼼짝 못할 상황까지 몰고 가면서 ‘목표물’을 사냥한다.

중국공산당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한 명이었던 저우융캉(周永康), 군 최고지휘부인 중앙군사위원회 전 부주석 쉬차이허우(徐才厚·사망), 전 통일전선공작부장 링지화(令計劃), 전 충칭시 서기 보시라이(薄熙來) 등 ‘신(新) 4인방’을 때려잡을 때 예외 없이 그랬다.

저우융캉을 예로 들면 엽색 행각과 조강지처 살해, 시진핑 암살 모의, 고향 장쑤성에 호화 주택 보유, 아들 저우빈 체포 등을 관영 언론과 인터넷 매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보도한 뒤 마침내 체포됐다. 그에 앞서 저우융캉 세력인 석유방, 비서방, 산시(山西)방 인맥이 줄줄이 낙마한 건 물론이다.

‘성완종 자살’ 같은 일이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조사 단계에서부터 쌍규(雙規) 처분을 받기 때문이다. 쌍규란 당원을 영장 없이 구금 상태에서 조사하는 것으로 우리 기준으로 보면 명백한 불법 구금이다.

10년 임기 가운데 전반기 5년 내내 사정을 계속할 태세인 시진핑. 임기 중반 ‘돌출 사정’을 들고 나왔다가 동력을 상실할 위기에 처한 박근혜.

어디로 향하는 지도 모른 채 ‘조자룡 헌 칼 쓰듯’ 사정의 칼을 휘두른 건 정권을 관통하는 그랜드 플랜이 없다는 사실을 고백한 꼴이다. 그나마 ‘성완종 게이트’가 정치 발전의 계기라도 된다면 다행이겠지만 지금으로선 정쟁으로 흐를 듯한 우려가 앞선다.

(아주경제 국제담당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