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치매, 가정 파괴 질병이 아니라고 말하는 ‘스틸 앨리스’
2015-04-17 17:28
기사에 스포일러성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를 보실 분은 ‘MMSE 검사’까지만 읽기를 권장합니다.
알츠하이머병은 진행과정에서 인지기능 저하, 성격변화, 초조행동, 우울증, 망상, 환각, 공격성 증가, 수면장애 등의 정신행동 증상이 동반된다. 흔히 치매는 가정을 파괴하는 질병이라고 말한다. 가끔 정신이 돌아온 치매 환자에게 있어서도, 질병을 돌보는 가족에게 있어서도 매우 힘든 시간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랑한다”고 말하던 가족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이보다 끔찍한 일은 없을테니 말이다.
영화 ‘스틸 앨리스’(감독 故 리처드 글랫저·워시 웨스트모어랜드)는 알츠하이머병을 다룬 작품이다. 콜롬비아 대학교 언어학 교수인 앨리스(줄리안 무어)는 존경받는 언어학자다. 전 세계를 돌며 강연을 한다. 남편 존 하울랜드(알렉 볼드윈) 역시 교수다.
막내 리디아(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연극배우다. 첫째 딸 애나(케이트 보스워스)는 결혼을 했지만 아기를 갖지 못해 실험관을 통한 임신을 준비 중이다. 톰(헌터 패리쉬)는 언제나 엄마를 응원하는 아들이다.
그러던 어느날 앨리스는 운동을 하면 자꾸만 숨이 차고 어지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어휘’라는 말이 생각이 나질 않아 ‘단어’로 바꿔 강연하는 자신의 모습에 병원을 찾는다.
신경외과 병원에서 간이정신상태검사인 MMSE를 받은 앨리스. 기억력에서 문제가 있음이 나타난다. 아들 톰이 데려온 여자친구에게 환영의 인사를 두 번이나 하자 리디아는 문제가 있음을 인지한다.
아직 젊은 나이이기에 불안하지만 애써 무시하려던 앨리스는 병원에서 정확한 진단이 나오기 전에 남편 존에게 이 같은 사실을 밝힌다. 존은 “당신은 그냥 잠깐 기억력이 떨어진 것이지 알츠하이머는 절대로 아닐 것”이라고 다독였지만,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한 결과 희귀성 알츠하이머로 밝혀졌다. 거기에 가족력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절망한다.
한 달 전에 잃어버린 휴대폰을 찾고선 “어제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앨리스의 모습에 가족들은 상심이 크다. 애나의 이란성 쌍둥이를 보며 “안고 싶다”고 말하는 앨리스에게 불안함을 느끼는 가족들의 모습은 측은하게 만든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앨리스는 알츠하이머 협회의 요청으로 오랜만에 강연에 나선다. 앨리스는 형광팬으로 연설문을 그어가며 이를 완독한다. “우리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병이 잘못된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간다. 병을 이겨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라고 감동적인 연설을 마친 그는 기뻐한다.
콜롬비아 대학 교수직을 그만둔 앨리스는 존과 해변가 별장으로 간다. 인근에서 리디아의 공연이 있기 때문. 리디아의 공연을 보고 앨리스는 마치 처음 본 사람처럼 “연기가 정말 좋았어요. 다음 작품은 언제 있나요?”라고 묻는다.
또 앨리스는 집안에서 화장실을 찾지 못해 바지에 ‘실례’까지 한다. 자신의 모습에 절망하지만 이내 잊어버린다. 뉴욕으로 돌아온 앨리스는 어느날 자신의 컴퓨터에서 ‘버터 플라이’라는 폴더를 발견한다. 그 안에는 과거 정신이 온전했던 자신이 미래의 앨리스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과거의 앨리스는 “이걸 본다면 이제 때가 된 것”이라며 “침대 옆 스탠드 뒤에 있는 작은 서랍 안에 네가 먹어야할 약이 있다. 반드시 혼자만 있을 때 한 번에 다 먹어야한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자면 된다”라고 스스로에게 자살을 권한다.
침실에 올라간 앨리스는 자꾸만 영상 속 메시지를 잊어버린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결국 노트북을 들고 올라가 ‘자살’이라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약을 들고 화장실로 향하는 앨리스. 하지만 이 때 찾아온 가족으로 인해 실패한다.
존은 앨리스의 간병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현실 때문에 지방으로 발령을 받고, 그 자리를 리디아가 채운다. 존은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리디아에게 “고맙다. 나보다 네가 더 낫다”면서 눈물을 흘린다. “이 곳이 제가 있어야할 곳”이라고 말하는 리디아는 진심으로 엄마를 생각한다.
멋진 소설을 읽어준 리디아는 엄마 앨리스에게 “어떤 느낌이 드나요?”라고 묻고 앨리스는 쥐어짜듯 간신히 “러브(사랑)”라고 답한다.
더할 나위 없었던 줄리안 무어는 올해 열린 제87회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을 만 했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앨리스를 완벽하게 표현했다. 앨리스는 여전히 앨리스로 남고 싶어했고, 줄리안 무어는 이를 메소드 연기로 승화시켰다.
리처드 글랫저 감독은 지난달 10일 사망했다. 글랫저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었다. 알츠하이머만큼이나 괴로운 루게릭병을 앓은 글랫저 감독이 꿋꿋하게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 배우와 다른 제작진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는 후문이다. 12세 관람가로 오는 3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