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문태준 시인의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2015-04-17 07:42
문태준 지음 ㅣ 창비(창작과비평사)펴냄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서정시인 문태준의 여섯번째 시집이다. 불교적 사유가 도드라진 시편들로 주목을 받았던 '먼 곳' 이후 3년만에 낸 이 시집은 "되도록 비유를 절제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웅숭깊은 성찰이 깃든 언어로 긴 여운을 남기며 가슴을 울린다.

 2014년 서정시학작품상 수상작 '봄바람이 불어서'를 비롯하여 모두 61편의 작품이 실린 이 시집은 비교적 짧은 시편들로 이뤄져 두께는 얇지만 따뜻하고 편안하다. 그의 시는 세계의 대상들을 넉넉한 마음으로 포용하며 우리를 아늑하고 평화로운 공간으로 이끈다

"돌아와 나흘을 매어놓고 살다//구불구불한 산길에게 자꾸 빠져들다//초승달과 새와 높게 어울리다//소와 하루 밤새 게으르게 눕다//닭들에게 마당을 꾸어 쓰다//해 질 무렵까지 말뚝에 묶어놓고 나를 풀밭을 염소에게 맡기다//울 아래 분꽃 곁에 벌을 데려오다//엉클어진 수풀에서 나온 뱀을 따르며 길게 슬퍼하다//조용한 때에 샘이 솟는 곳에 앉아 웃다//이들과 주민(住民)이 되어 살다"([귀휴(歸休)] 전문)

"당신은 나조차 알아보지 못하네/요를 깔고 아주 가벼운 이불을 덮고 있네/한층의 재가 당신의 몸을 덮은 듯하네/눈도 입도 코도 가늘어지고 작아지고 낮아졌네/당신은 아무런 표정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네/서리가 빛에 차차 마르듯이 숨결이 마르고 있네/당신은 평범해지고 희미해지네/나는 이 세상에서 혼자의 몸이 된 당신을 보네/오래 잊지 말자는 말은 못하겠네/당신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네/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을 보네"([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전문)

이번 시집에는 여러편의 연작시가 눈길을 끈다. 특히 제3부를 이루는 ‘드로잉’ 연작은 이 시집에서 두드러지는 성과로 주목할 만하다. 시인은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뒤범벅된 눅눅한 삶의 핍진한 풍경을 감성적이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다. "왜소한 그늘"([12월의 일])과 "축축한 음지"에서 "스스로 말라가는, 아물어가는 환부"([마르고 있는 바지])를 어루만지고, 제 모습을 잃어가는 "아픈 혼"([소낙비])들의 궁핍한 초상을 따뜻한 연민과 동정의 눈길로 감싸안으며 시인은 현실 내부로 깊숙이 파고들어 존재의 의미와 삶의 비의를 찾는다.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