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기] "우리의 삶, 세월호와 함께 멈췄다"…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2015-04-14 00:00
[세월호 기획-②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아주경제 노승길 기자 = 지난해 4월16일 304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어느덧 1년이다. 상당수 국민은 이 엄청난 충격과 슬픔에서 벗어나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생존자와 실종자 가족, 희생자 유족들의 시간은 1년 전 그대로다.
그들에게는 매일매일이 4월16일이다. 1년이 지나가고 있음에도 당시 끔찍했던 기억에 시달리며 정신적·육체적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도저히 생업을 이어갈 상태가 되지 못해 직장을 그만두거나 가족을 뒤로 한 채 진상규명을 위해 매달리는 사람들까지. 세월호 참사는 그들에게서 가족과 친구뿐만 아니라 자신의 살아갈 힘마저 앗아가 버렸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한 달 반이 지났을 무렵부터 외로움, 우울증, 폐쇄공포증 등이 차례로 찾아와 회사마저 다닐 수 없었다고 전한다. 그는 지난 1년에 대해 죽음이라는 두 글자를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고 말한다.
외동아들 방현수씨(사고당시 20세)를 잃은 방기삼씨(50)는 20년간 운영하던 가게를 접었다. 아들을 위해 가게를 시작했으나 그날 이후로 더 이상 꾸려나갈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또한 세월호 침몰 순간까지 학생 10여명을 구조하는데 일조한 것으로 알려진 '파란 바지의 구조 영웅' 김동수(50)씨도 지난 3월 사고 당시의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었다.
김씨는 "모든 생활이 끊겼다. 고등학교 3학년인 딸은 학원비를 아끼려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애들 엄마도 일을 나간다"며 "이곳저곳 병원치료를 다니느라 정부에서 달마다 나오는 108만원도 모자라 대출까지 받아 생활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제주에 있으면서 정말 괴로운 것은 주변 사람들이 세월호가 모두 해결된 것인 듯 왜 그때의 일을 못 잊느냐고 말하는 것"이라며 "지나가는 학생들이나 창문만 봐도 안에 갇혀 있던 아이들이 생각나는데 너무들 쉽게 잊으라고만 한다"고 괴로워했다.
세월호 참사로 동생과 동생의 아들을 잃은 권오복씨(60)는 아직도 팽목항에 머물러있다.
권씨는 가정이 파탄 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도 느꼈지만 형으로서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동생과 동생의 아들에게 도리를 다해야겠다는 이유다.
권씨는 "모든 일이 세월이 가면 어느 정도 잊히기 마련인 것을 알고 있다"며 "하지만 인명 구조에 '골든 타임'이 있듯이 정부가 남은 사람들을 찾고 사고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인양의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특히 참사 1년이 되어감에 따라 사고 당시와 비슷한 감정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런 감정이 심리적·신체적·행동적 반응으로 나타나는 '기념일 반응' 현상에 시달리는 사례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단원고 학생 등 생존자 10여명을 지난 1년간 치료해온 윤호경 고대안산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지난달 들어 비교적 안정을 찾던 학생 중 일부가 '힘들다'며 병원을 찾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고 말한다.
그는 "한동안 잊고 살던 학생들이 불현듯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고 한다. 이맘때쯤 수학여행을 가다 사고를 당해서 그런지 길 가다가 활짝 핀 꽃만 봐도 그날이 생생해진다고 말하는 등 기념일 반응이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보통의 경우 사고 1년이 지나면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새롭게 살아가는 시작이 되지만, 아직도 세월호 사고는 정상적인 치유과정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아직도 마무리되지 못한 세월호 관련 정치, 사회적 논란 등이 이들의 트라우마 치료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족들은 "세월호 사고 진실규명과 여객선 인양만이 유족들을 치유하는 길"이라며 오늘도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