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화장후 유골은 바다에 뿌려달라”
2015-04-06 14:24
화장 생태장 보급위해 솔선수범한 중국의 지도자들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1956년 중국공산당이 화장과 생태장을 국가정책으로 규정한 후, 중국의 지도자들은 솔선수범 차원에서 자신의 사체에 대한 유언을 남기고 이를 실행토록 하고 있다. 생태장은 화장한 후 유골을 바다나 강에 뿌리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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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2월19일 향년 93세로 타계한 덩샤오핑(鄧小平)의 유해는 베이징 서쪽 바바오산(八寶山) 혁명공묘에서 화장됐다. 이후 유해는 인민해방군 수송기로 동중국해 넓은 바다에 뿌려졌다. 유해를 뿌린 이는 부인 줘린(卓琳)이었다. 덩샤오핑은 생전에 안구 각막은 국가에 의학용으로 기증하고, 시신은 화장해서 유골을 바다에 뿌리라고 유언을 남겼다. 홍콩 반환을 보고 싶어했던 덩샤오핑의 뜻을 기려 후손들은 유해를 홍콩이 보이는 바다에 뿌렸다.
1992년 사망한 저우언라이의 부인 덩잉차오(鄧穎超) 역시 같은 절차를 밟았다. 아직까지도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덩잉차오는 저우언라이가 사망한 후인 1978년에 "사체는 의학용으로 해부한뒤 화장을 하고 유골은 남김없이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는 유언에서 “나는 이미 남편과 함께 65년전에 화장후 생태장하기로 약속을 했었다”고 밝혔다. 덩잉차오는 수십년간 입었던 누더기 검은색 양복을 수의삼아 바바오산 화장장에서 화장된뒤 유골은 톈진(天津) 앞바다에 남김 없이 뿌려졌다.
마오쩌둥(毛澤東)의 경우는 다르다. 마오쩌둥은 1956년 화장정책을 시행할 때 화장건의서에 직접 서명했다. 이는 그 역시 화장에 동의했음을 뜻한다. 하지만 1976년 9월9일 마오가 사망하자 중공 당국은 그의 시신을 영구 보존 처리한 후 수정관에 넣어 마오주석기념당에 안치했다. 당시 마오는 신격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화장을 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