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아트Talk] CEO 화가' 권기수 "직원 반으로 줄었지만 동구리는 동구리"
2015-02-27 16:44
2년만에 롯데갤러리에서 '후소'개인전 신작 20여점 3월23일까지 전시
'CEO 화가' 권기수(43)는 솔직했다. 2011년까지만해도 작업하는 직원 10여명 이상을 거느렸지만, 현재는 반으로 줄었다고 했다. "다달이 월급주기가 힘들다"면서도 "그동안 같이 일한 후배들만해도 30~40명이 된다. 따지고 보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지 않았냐"며 웃어넘겼다. '작가인데, 왜 직접 그리지 않냐'는 물음에 대한 변명같고 항변같은 답이기도 했다.
'젊은 작가가 스스로의 손을 거치지 않고 작품을 제작하는 것에 대한 곱지않은 시선은 여전하다. "수많은 조수를 두고 팝아트를 주도한 앤디워홀과 무라카미의 예를 들며 현대미술가들이 작업실을 공장시스템으로 운영하는 게 대세"라며 논리를 펼쳤던 작가는 그 신념에는 변함은 없지만 예전보다 자신감이 준 듯했다.
"남일 처럼 들리지 않았다"는 권기수는 "2008년 세계경제시장이 불황을 타면서 미술시장이 더 힘들어졌다"며 공장같은 작업실 운영이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CEO 화가 사장' 이 된건 늘어난 주문때문이었다. 작업실에 재고가 없을정도였다. 권기수는 아이디어와 컴퓨터작업까지만 하고 그 다음단계는 어시스턴트가 진행한다. 2007년 국내미술시장에 꽃핀 팝아트 활황의 정점에서 작가는 단맛을 보았다.
불황을 탄 국내미술시장은 득세하던 팝아트가 퇴조하며 스타작가들의 생계를 위협할 정도까지 됐다. 권기수도 "2008년이후 살아남은 작가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며 "그나마 전업작가로 살아남아 작업하는 것도 다행"이라고 자조했다.
화려한 색감, 아크릴작업의 매우 현대적인 작품은 팝아트로 오해받기 쉽지만 그는 늘 팝아트가 아니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작품은 동양화적 소재와 개념으로 팝아트를 뛰어넘었다는 것. 전통의 소재를 차용한 것이 아니라 조립한다고도 했다. 그는 홍익대 동양화과에서 순수동양화를 전공했고 졸업후에도 한동한 수묵작업을 했다.
"학부시절 주류에 속하지 못하고 주변인이라는 소외감을 달고 살았어요. 동양화가 강조하는 미덕의 개념이 현대사회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반항을 많이 했죠. 동양화가 주창하는 전통적 정신성을 역행해 당시 동양화계에서 나름 천덕꾸럭 취급을 받기도 했어요. 하지만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하잖아요. 저는 지금도 동양화화 동양정신을 기본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동구리를 통해 죽림칠현이야기나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등을 차용하여 현실에 대한 도피,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표현하고 있지요. 소재도 산수화 사군자(매화 난 국화 대나무)등이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배경을 그려 넣습니다."
27일 서울 소공동 롯데갤러리에서 펼친 권기수 개인전 '후소(HOOSOU: 後素)'전은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처럼 보인다. 화려했던 과거를 지우려는 듯 낙서하듯 한 신작 20여점을 걸었다. 2013년 제주 박여숙갤러리에서 연 전시 이후 2년만이고, 서울에서 전시는 4년만이다.
"전시제목은 공자의 '회사후소'의 문구에서 따왔어요. 낙서하기의 흔적속에 태어난 동구리는 지우는 행위가 곧 그리는 행위와 통한다는 깨달음을 다시 얻은 작품입니다."
꽃비가 내리는 듯한 화련한 색감, 흠집하나 없는 동구리, 마치 프린트를 한 것같은 완벽한 색칠, 컴퓨터로 뽑아낸 듯 깔끔한게 특징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화면이 선들로 복잡해졌다. 작가의 현재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 2002년 태어났죠. 늘 같은 작품이라고도 하지만 동구리는 계속 갈 겁니다." 이제 14살이 된 동구리, 사춘기 소년처럼 복잡미묘한 심경을 드러내지만 '희망'을 붙들고 있다. 낙서처럼 휘갈린 선들과 선사이 빼꼼이 모습을 드러낸 '동구리'는 여전히 웃고 있다. 100호 정도 크기는 2400만~2800만원에 판매한다. 전시는 3월23일까지.(02)726-4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