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아트Talk]리움에서 개인전 연 양혜규 "나는 코끼리처럼 예측불허"
2015-02-09 18:06
12일부터 짚풀로 만든 중간유형등 신작 공개..블라인드등 35점 전시
9일 서울 이태원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만난 설치작가 양혜규(44)는 도발적이었다. '검은 에너지'가 짙게 발산됐다. 검은 뱅헤어, 검은 부츠, 온통 '검은 패션'으로 휘감은 양혜규는 당겨진 휜 활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전달됐다.
"자연은 무심하면서도 무자비하다"고 말하는 작가는 '그 자연'처럼 변덕스러운 듯했다. 무표정한 얼굴이다가도 무언가 전복시킬 것 같은 독한 표정이 나타났다. 또 동안으로 보이는 얼굴은 어느 순간 나이든 여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변덕은 작업,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때 예민해졌다.
"자신은 이기적"이라며 고집과 주장이 센 면모를 숨기지 않았다. 양혜규는 “내가 하는 일은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잘하고 싶고 일을 통해 성장하고 싶다”며 “나에 대해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전시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보였다.
또한 "어렵다. 모르겠다는 그 궁금증을 바탕으로 살갑게 이해하고 진정한 호기심으로 앞으로 나의 활동을 봐주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작품을 보고 많은 질문을 해주었으면 한다"고 부탁도 했다.
해외미술계에서 유명세를 탔지만 국내에선 낯설다. 해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등에서 전시가 이어졌지만 이번 전시는 5년만에 열리는 국내 전시다.
특히 삼성미술관 리움에서의 개인전이라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리움이 2004년 개관 이후 국내 생존작가 개인전을 마련해준 것은 2012년 서도호 전 이후 두 번째다. '양혜규의 파워'를 증명한 셈이다. 리움은 "서도호 이후 한국 작가로는 가장 발전 가능성 있는 작가로 주목해 이미 4~5년전부터 기획한 전시"라고 했다.
"이번 전시는 전적으로 작가가 직접 설치하고 꾸몄다. 작가의 작업을 존중한다"는 홍라영 리움 총괄부관장이 말하자 양혜규는 "전시는 중매결혼"이라며 "전시장측에서 먼저 사랑고백을 하는 것을 듣고 싶었다. 작가는 계산적인 여자 입장"이라며 당당함을 보였다. "작가는 우주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국내에서 전시하고픈 공간이 많지 않은데 리움은 좀 해볼만 했다"며 "리움에서 전시했다는 것보다 좀더 많은 관객과 소통하고 싶다"고 말했다.
홍라영 총괄부관장도 "그동안 국내에서 양혜규의 예술을 살펴보는 기회가 적었는데 양혜규의 작업전반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가 일반 관객들과 어떻게 소통하게될지 자못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양혜규' 이름만으로 국내미술계를 흔들고 있는 전시는 어떨까.
‘코끼리를 쏘다 상(象) 코끼리를 생각하다’란 제목으로 열리는 전시는 2001년 이후 발표한 대작부터 새로운 작업의 방향을 보여주는 신작 등 35점으로 꾸몄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회복이 전체를 아우른다는 개념이다.
제목과 달리 전시장에 코끼리는 없다. ‘코끼리’는 양혜규에게 자연과 인간 본성의 존엄함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코끼리라는 소재는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1903~1950)의 수필 ‘코끼리를 쏘다’와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1914~1980)의 소설 ‘하늘의 뿌리’에서 가져왔다. '코끼리'는 자연 생태계를 의미하고 자연으로부터 괴리된 인간 윤리를 호소하는 매개와 같은 존재라고 했다.
일본 가나자와의 어느 공원에서 짚풀로 공들여 감싼 큰 나무들이 서있는 조형물처럼 서 있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양혜규는 짚풀에서 문화인류학적 맥락을 발견했다고 한다. 기계화되고 산업화된 오늘날에도 원시 -농경사회의 재료인 짚풀이라는 재료와 인류의 수공이 문명과 역사를 가로지르며 편재하는 동시에 각 문명에 따라 상이하게 토착화되어 발현되어 왔다는 점을 발견한 것. 인조짚을 일일이 엮어만든 신작 '중간유형'은 보편성과 개별성 유사함과 상이함이 공존하는 짚풀공예의 혼성적 속성을 담았다.
작품은 대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동안 명품관처럼 우아하고 '있어보였던' 리움 전시장은 난장판이 됐다.
거대한 짚풀 건축물이 맥락없이 놓여있고, 의자들과 책상(VIP 학생회)이 이게 전시된 것 인가 할정도로 널려져있다. 또 맥주 박스와 포장된 그림박스가 쌓여 금방이라도 창고로 이동해야 할 것같은 '짐'들이 놓여있다. 알고보면 이 작품은 양혜규를 살린 생명수같은 작품이다. 2004년 작 ‘창고 피스’ 다.
이런 작품이 팔릴까? 하겠지만 '창고 피스'는 팔렸다. 작품은 안팔리고 물건같은 작품이 쌓여만 갈때 빛처럼 나타난 독일 컬렉터가 구입했다고 한다. 전 세계 작가들의 독특한 작품만을 소장하는 컬렉터라고한다. 리움에 전시된 이 '창고 피스'는 그 소장가에게 빌려와 전시했다.
리움 블랙박스에는 양혜규의 대표작인 블라인드 작품이 설치됐다. 그 옆엔 바우하우스 무대실험을 패러디한 놋쇠 방울을 주재료로 한 '소리나는 인물'등 금빛의 캐릭터들이 춤을 추듯한 형상으로 걸려있다.
도대체 맥락이 이어지지 않고, 이해가 쉽지 않은 작품들. 전시장에서 길을 잃을 정도다.
과대포장된걸까, 앞서가는걸까.
양혜규도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는 "가벼운 시대, 머리쓰는 일도 필요하지 않냐"면서 “하나의 주제가 아니고 매우 큰 얘기를 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짚풀작업은 어디에서도 내보이지 않은 검증받지않은 신작전"이라며 작가 스스로도 자신감은 부족해보였다. 그는 "이번 전시는 만용이라면 만용이고 용기라면 용기인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고, 앞으로 추적해보고 싶은 주제였기에 시작해봤다”고 고백했다.
'코끼리' 상'象'자를 그림처럼 형상화해 시작한 종잡을수 없고 혼란스럽기짝이 없는 전시는 '사막에서 바늘찾기'처럼 난해하다.
거대함만을 쫓다보니 의미를 잃었다.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건축물(종교를 초월한 사원등)들을 한데 모아놓은 전시장안 쪽, 이미 인간의 인지능력으로는 형용할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과 거대함을 표현하고 있는 듯 하지만 소통하기엔 애매하다. 유명세를 탄 작가에 너무 기대를 한 걸까.실험성이 짙다. 차려놓은 건 많은데 먹을것 없는 잔칫집같은 전시다. 작품 반응에 유독 호기심과 불안감을 보이던 작가의 부탁처럼 "살갑게 호기심을 가지고" 볼 것을 권한다.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고 위축될 필요는 없다. '예술은 어려운게 아니다'. 양혜규의 작업도 따져보면 일상에 있지만 소외되고 방치된 물건들로 만들어졌다.
작품설명을 들으면 이해도를 높일수 있다. 리움미술관이 무료 전시강연회를 연다. 오는 14일 오후 2시 태현선 큐레이터와 도록에 서문을 쓴 김성원교수가, 오는 3월 21일에는 양혜규 작가가 직접 작품설명을 할 예정이다. 관람료 일반 7000원. 전시는 5월 10일까지. (02)2014~6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