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살 생일 앞둔 무협, 기업인 회장은 단 세 명, “정체성은 무엇?”
2015-02-25 06:00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경제 5단체 가운데 하나인 한국무역협회(이하 무협)가 26일 열리는 정기총회에서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을 제29대 회장으로 선임한다.
1946년 7월 31일 설립된 무협은 무역진흥과 민간 통상협력 활동 및 무역인프라 구축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1988년 서울 삼성동에 무역센터와 코엑스 등 대규모 시설을 완공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총 7만여 회원사가 가입돼 있는 무협은 출자법인으로 전시컨벤션 전문기관인 코엑스, 전자무역추진기관인 한국무역정보통신(KTNET), 한국도심공항(CALT) 등을 거느리고 있으며 출연기관으로 대한상사중재원, 산학협동재단, 한미경제협의회 등이 있다.
무협은 경제 5단체 가운데에서도 가장 큰 자산과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무협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무협은 무역인들의 모임이 맞는가?”이다.
반면, 기업인 출신 회장은 21대 박용학 회장(대농그룹 회장)과 22~23대 구평회 회장(E1 명예회장), 23~25대 김재철 회장(동원그룹 회장) 등 단 3명 뿐이다. 고위 공무원들의 무차별적인 낙하산 인사에 대한 여론의 비난이 일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기업인들을 수장 자리에 오른 것이다. 이들은 1991년 2월부터 2006년 2월까지 15년간 자리를 이어갔지만 이게 다였다.
2006년부터 다시 공무원 출신들이 내림 인사가 이어졌고, 이도 모자라 그나마 무협 출신들이 맡아왔던 상근 부회장 자리도 공무원 출신들에게 내주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무협에는 이제 기업인 출신 회장은 배출하지 못하는 것이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경제 5단체 가운데 1961년 5.16 군사정변을 통해 정권을 잡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가장 먼저 지지를 선언한 무협이었다. 무협은 대통령에 오른 박정희 정부 기간 동안 수출 드라이브 정책의 최대 수혜 단체로 부각됐다. 이 가운데 ‘벼락 맞은 송아지고기’라고 표현하는 ‘무역특계자금’은 무협이 지금의 위상을 갖게 된 대표적인 특혜였다. 1969년 1월 1일부터 상공부 장관이 정하는 품목 이외의 모든 품목을 수입할 때, 수입금액의 1%를 수입허가나 수입 인증시 무협의 특수회비로 징수한다는 법령에 따라 징수한 무역특계자금은 1998년까지 7000억원이 넘는 돈이 걷혔다. 삼성동 무협 타운도 이 돈으로 만들어졌다. 돈이 몰리면 권력도 몰리는 법이다. 특혜를 받았으니 정부 인사가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기금의 운용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잡음이 일었지만 진실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조직은 성장시켰지만 정부와의 밀월관계에서 비롯됐다는 한계로 인해 무협이 무역업계 대표단체라는 상징성은 빛을 발했다.
무역업계 차원에서 무협의 개혁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김재철 회장의 뒤를 이어 2006년 이희범 회장이 낙점됐다는 소식을 접한 회원사들이 강하게 반발, 복수 후보를 내세우고 회장 직선제 등 개혁을 요구했던 것이다. 되돌아보면 이 때가 회원사들이 겉으로 드러낸 무협에 대한 마지막 애정이었다. 이어진 후임 회장 인선 때는 모든 회원사들은 침묵했다. 아니, 무관심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올해 인선 과정에서도 기업인을 추천하려는 움직임은 아예 없었고 공무원 출신 인사가 내려올 것이라는 데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해봐야 무협은 바뀔게 없다는 실망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내년이면 무협은 설립 70주년을 맞는다. 고위 공무원 출신 김인호 회장 체제에서 일흔상 생일상을 차린다. 새롭게 변해야 한다.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김인호 회장은 고위 공무원 낙하산 인사라는 꼬리표를 달고 임기를 시작한다. 관료 출신 역대 회장중에서도 무협을 키우는데 일조한 이들이 많다. 꼬리표를 자랑스럽게 만들기 위해서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역인들에게 다시금 관심의 대상이 되는 무협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협에 몸을 담고 있는 전 임직원들의 마인드도 바뀌어야 한다. 현실을 그저 받아들이기만 할 뿐 개선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 수동적 자세는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적인 조직으로 웅크러진 무협 조직을 대대적으로 혁신시키는 일은 무협 구성원들이 해내야 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무협의 존재감은 더욱 줄어들었다. 무협이 있어야 하는 당위성을 증명해야 한다. 서비스 지원자의 입장에서가 아닌 회원사의 자세에서 바라보고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야 한다.
새 회장을 맞이한 무협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를 이뤄낼지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