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증세·문재인 박정희 참배] 與 ‘좌클릭 ’ 野 ‘우클릭’, 총선 체제 착수…“중도를 잡아라”
2015-02-10 00:34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선거의 당락을 가르는 중도 무당층을 잡아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체제의 출범으로 9일 여야가 2016년 총선 체제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2년간 계속된 보수와 진보의 극단적 대립에서 벗어나 2012년 총·대선 당시 여야의 구도였던 ‘중간층’ 잡기에 나선 것이다.
여야 모두 산토끼인 중도 무당층 선점을 1년 남짓 남은 2016년 총선의 ‘1차 승부처’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이날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부담의 최소화”라며 증세 불가에 쐐기를 박은 데다 제1야당 내부에서도 문 대표의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참배를 정면 비판, 여야의 산토끼 잡기 행보가 순항할지는 미지수다.
“한국 정당이 보수와 진보의 양대 구도로 고착됐기 때문에 선거 때마다 중간층을 먼저 잡는 쪽이 이긴다. 그 순서는 언제나 ‘선(先) 집토끼 결집→후(後) 산토끼’ 흡수다.” 새정치연합 한 관계자가 이날 기자에게 던질 말이다.
여야가 나란히 자기 진영의 구도에서 한발 벗어나 중도로 이념적 좌표를 옮기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정당은 사실상 양당 체제다. 이 체제에선 선거 막판 양 진영 지지층이 총결집한다. 이른바 ‘흔들리지 않는’ 집토끼가 존재한다.
선거 때마다 재연되는 ‘51대 49’ 싸움에서 중도 무당층에 중첩된 ‘스윙보터’(swing voter·특정 정당이 아닌 이슈나 정책에 의해 움직이는 계층)를 잡는 쪽이 유리하다는 분석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특히 최근 박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과 무당층 급증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여야의 중도층 잡기 경쟁에 불이 붙는 모양새다.
이날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의 2월 첫째 주 정례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31.8%로 한 달 사이 11.4%포인트 하락했다.
정당 지지도에선 새누리당 36.1%, 새정치연합 26.7%, 정의당 3.8%를 각각 기록했다. 무당층은 30.8%에 달했다. 이는 1년 전 대비 10.0%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이날 아주경제와 통화에서 이와 관련, “중위투표 현상이 강화되는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위투표 현상이란 거대 양당 체제에서 유권자의 선호가 다른 다수 정당이 존재할 때 양당은 집권에 필요한 과반 득표를 얻기 위해 극단을 피하고 중간층 선호에 맞춘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與 ‘경제’ 좌클릭 vs 野 ‘정치’ 우클릭
눈여겨볼 대목은 새누리당이 증세 등 ‘경제이슈’로 이념의 좌표 이동을 시도한 반면, 새정치연합은 국민통합 등 ‘정치이슈’를 선점하면서 좌클릭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이는 새누리당이 △수도권 △화이트칼라 △40대 등 중도층에 ‘부패’, ‘웰빙’ 정당 이미지로 인식된 것과 무관치 않다. ‘재벌 감싸기·대기업 옹호’ 등의 비판에 직면한 집권여당으로선 먹고사는 문제인 ‘복지’ 이슈를 쥐고 정국을 정면 돌파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이 2011년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면서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한 당시 상황을 재현하려는 의도인 셈이다. 이른바 ‘Again 2012’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참배정치를 고리로 ‘우클릭’을 시도했다. 문 대표는 이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데 이어 대안정당·정책정당·수권정당화를 재차 강조했다. 그간 강경파 이미지에 갇힌 친노(親盧·친노무현)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종합방송편성채널인 ‘JTBC’가 이날 리얼미터에 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 포인트)를 실시한 결과, 문 대표의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참배에 ‘공감한다’는 의견은 53.5%로 과반이 긍정적으로 답했다.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4.9%에 그쳤다. 새누리당 지지층에선 60.6%, 새정치연합 지지층에선 58.5%가 각각 문 대표의 참배정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문 대표가 문희상 전 비대위원장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 이유다.
문 대표는 통합 행보에 나서면서도 경제 이슈와 관련해선 박근혜 정부와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문 대표는 이날 국회 새누리당 당 대표실에서 김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 “각오 좀 하셔야 한다”고 뼈있는 말을 건넸다. 김 대표가 통합의 정치를 주문하자 3년 연속 계속된 세수 문제 등을 거론하며 던진 말이다.
이는 정치는 우클릭 하되, 경제민주화와 복지로 상징되는 경제체제 논쟁에서는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에 따라 문 대표는 자신의 대표적인 경제정책인 △법인세 인상(법인세율 22%→25%로 인상) △소득주도성장(서민층의 소득 인상을 통한 내수활성화) △최저임금 인상(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 50% 인상) △소득세 인상(최고세율 구간 조정 또는 세율 인상) △비정규직 차별 철폐(시간당 임금수당 등 차별 해소) 등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새누리당의 ‘경제’ 좌클릭과 새정치연합의 ‘정치’ 우클릭이 지지층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비박(非朴)인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이 증세 불가에 쐐기를 박은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주한외신기자단과의 기자회견에서 “증세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참배정치에 나선 문 대표 역시 정청래·유승희 최고위원의 반발로 첫 일정부터 스텝이 꼬였다. 중도층 표심 잡기를 1차 승부처로 인식한 두 대표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배 본부장은 “앞으로도 기존 정치권에 대한 혐오가 극대화되면 중위투표 현상이 가속화할 것”이라며 “중도층은 유권자 10명 중 3.5명 정도로, 총선에서 3∼5% 득표율 격차로 결정되는 경우가 전체의 30곳 정도다. 중위투표자가 여소야대, 여대야소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