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노무현’ vs 문재인 ‘이승만·박정희’…與野 ‘참배정치’ 본격화, 왜?
2015-02-09 17:39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 2016년 총선을 1년여 앞두고 정치권의 ‘참배정치’가 본격화됐다.
새정치민주연합 ‘포스트 문희상’ 체제의 문을 연 문재인 신임 대표가 9일 첫 일정으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데 이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겠다고 공언했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의 대표가 반대편 끌어안기에 나선 것은 다가올 총선 국면에서 먼저 구도를 선점한 뒤 상대방을 묶으려는 일종의 ‘프레이밍’(framing) 전략으로 풀이된다. 양 대표가 통합 행보를 정국주도권의 ‘1차 승부처’로 본 것이다.
◆ 참배정치 속살은 ‘통합 아젠다’ 선점
실제 문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방문,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국민 통합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참배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야당 대표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1야당의 사령탑인 문 대표가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두 전직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한 것은 ‘통합 행보’를 통해 중도층 껴안으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그간 범진보진영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 평가와 관련해 ‘건국’, ‘산업화’ 보다는 ‘독재정권’에 방점을 찍으면서 민주주의 후퇴의 ‘가해자’로 지목, 분열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2012년 대선 당시 구도인 ‘박정희 대 노무현’, ‘범보수 대 범진보’의 대결로는 분열의 씨앗을 거둘 수 없을 뿐 아니라 외연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판단한 셈이다.
새누리당 김 대표는 이날 신임 인사차 국회 당 대표실을 예방한 문 대표의 예방을 받으면서 “신년 때 노 전 대통령의 묘역도 참배하려고 했는데 전당대회가 딱 걸려서…”라며 “빠른 시간 내에 찾아뵙겠다”고 화답했다.
개헌과 증세 등 정치·경제적 이슈마다 청와대와 대립각운 세운 김 대표의 과제가 박근혜 대통령과의 차별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노 전 대통령 묘역 참배로 산토끼를 선점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대표는 대표적인 김영삼(YS)계다. 노 전 대통령은 3당 합당 이전 통일민주당에서 김 전 대통령과 정치를 함께했다. 이들의 정치적 지지 기반은 부산·경남(PK)이다. 김 대표는 노 전 대통령 묘역 참배로 부산·경남의 김 전 대통령 지지층 결집은 물론, 친노 갈라치기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무당층, 1년새 10%P 증가…문제는 지지층 분열
참배정치는 지난 18대 대선을 기점으로 본격화됐다. 실제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당 대표로 선출된 이튿날인 2012년 8월 22일 첫 외부일정으로 국립 현충원을 찾아 이승만·박정희·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다.
같은 날 오후에는 봉하마을로 내려가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박 대통령의 당시 대선 캐치프레이즈는 ‘국민 대통합’, ‘100% 대한민국’. 야권 지지층의 냉소에도 불구하고 통합 의제를 선점한 박 대통령은 18대 대선에서 51.6%(1577만3128표)를 기록, ‘첫 과반·첫 여성 대통령’이란 타이틀을 얻었다.
분열정치 타파를 외친 당시 무소속 안철수(현 새정치연합 의원) 대선후보도 이승만·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당시 친노(親盧·친노무현) 내부에선 이를 두고 “역사인식의 부재”라고 비난했다.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였던 문 대표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만 참배했다. 진보 지지층에만 기댄 전략과 안 후보의 중도 사퇴가 맞물리면서 문 대표는 당시 48%(1469만2632표)에 그치면서 석패했다.
특히 최근 박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과 무당층 급증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여야의 통합 행보에 불이 붙는 모양새다.
이날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의 2월 첫째 주 정례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31.8%로 한 달 사이 11.4%포인트 하락했다.
정당 지지도에선 새누리당 36.1%, 새정치연합 26.7%, 정의당 3.8%를 각각 기록했다. 무당층은 30.8%에 달했다. 이는 1년 전 대비 10.0%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양당 대표가 통합 행보에 속도를 내는 까닭도 급증한 무당층과 무관치 않은 셈이다.
문제는 참배정치가 딜레마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김 대표가 노 전 대통령 끌어안기에 나설 경우 골수 친박과의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
문 대표도 마찬가지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이날 문 대표의 행보와 관련, “첫 일정으로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 인혁당 열사들의 묘소 참배가 더 우선”이라고 비판했고, 유승희 최고위원은 이날 현충원 묘역 참배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문 대표의 경쟁자였던 이인영 의원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고 잘라 말했다. 문 대표의 첫 행보가 사실상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한 셈이다.
새정치연합 정동영 전 상임고문이 합류한 국민모임 신당추진위 오민애 대변인은 문 대표를 향해 “역사에 대한 모독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