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순혈주의 원저우 한국에 문을 열다

2015-01-18 13:47
한중산업단지 조성 추진 공식화, 한중FTA산업협력서밋 개최하며 분위기 띄워

지난 15일 원저우 상그릴라 호텔에서 개최됐던 한중산업협력 원저우서미트 행사 모습.[사진=조용성 기자]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뛰어난 상술을 지닌 비즈니스맨이 많기로 유명한 중국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시. 인구 912만명의 이 도시 핵심 상권으며, 유동인구가 가장 많다는 우마제(五馬街) 거리는 지난 17일 다소 스모그가 낀 날씨에도 시민들로 북적였다. 다만 길가에 빼곡히 들어서있는 상가들이 4년동안 중국에서 생활을 해온 기자의 눈에도 생소한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점이 이채로웠다. 약 500m 길이의 이 거리에 외국브랜드라고는 KFC, 아디다스, 맥도날드, 뉴발란스 등이 전부였다. 한국브랜드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미터스본 같은 중국의 유명브랜드들도 눈에 띄었지만, 대부분의 상점들은 원저우 현지브랜드였다. 원저우 기업들이 만들어낸 의류와 신발, 가방, 잡화, 보석점 브랜드가 점령한 이 거리는 외지인들의 눈에 상당히 생소하게 다가온다. 제품의 질이나 색감, 디자인은 그렇게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았지만 각양각색의 제품들이 원저우 시민들의 발길을 휘어잡고 있었다.

원저우는 순혈주의 색채가 농후한 곳으로 유명하다. 과거 2000년대 '외국기업은 물론 타지역 기업들이 진출하면 100전 100패'라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별칭과 함께 '외지기업의 무덤'으로 칭해지기도 했다. 그만큼 타지인을 배격하고 현지인들끼리 똘똘 뭉치는 경향이 높은 것. 이날 원저우 최고 핵심상권 거리의 낯설은 광경에도 순혈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이날 만나본 원저우시의 한 공무원은 “이 곳은 다른곳에 비해 현지 꽌시(關係)가 특히 중요하며, 원저우 사람들끼리의 단합이 강해 외지인이나 외국인에 대한 진입장벽이 무척 높다”고 소개했다. 원저우인들은 여전히 자신의 자녀들이 원저우 사람과 결혼하기를 원하며, 타지인들에게 쉽사리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다는 게 이 공무원의 설명이다. 외국기업이 많지 않기에 외국인 역시 쉽게 목격되지 않는다. 원저우에 거주하는 우리나라 교민수는 10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원저우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다는 우마제의 오전 거리모습.[사진=조용성 기자]



◆외지기업의 무덤이라 불린곳

또다른 원저우시의 공무원은 “원저우 상인들은 열악한 상황에서 맨손으로 성공을 일궈낸 경험을 지니고 있으며, 시민들은 원저우상인이라는 호칭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며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면이 외지인들에게는 순혈주의로 비쳐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요즘은 예전처럼 외지인을 배척하는 분위기는 사라졌다”고 소개했다.

원저우진출을 5년째 모색하고 있지만 현지 파트너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시장진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리나라의 한 기업인은 “서울본사에서 원저우진출을 주문한 후 원저우진출을 검토했지만, 조사결과 동종업계 경쟁사들이 섣불리 원저우에 진출했다가 낭패를 본 경우가 많았다”라며 “외지인을 배척하는 분위기와 원저우인들끼리 뭉치는 등의 진입장벽을 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그동안 만나본 원저우 기업인들은 합작조건으로 하나같이 '완벽한 간섭배제'를 내걸었다”면서 그간의 합작협상이 번번이 실패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 기업인은 “원저우는 여전히 매력적인 시장인데다, 최근 순혈주의 문화에 변화의 기운이 감지되고 있는 만큼,  적합한 현지 파트너사를 물색하는 작업을 지속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깊어가는 미래발전 고민

이처럼 순혈주의 색채가 강한 원저우가 한국기업들에게 빗장을 열어젖혔다. 한중산업단지 조성을 추진할 뜻을 공식적으로 공표하고,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강한 의욕을 드러낸 것. '원저우상인'이라는 글로벌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원저우시이지만, 낙후된 산업을 어떻게 업그레이드시킬지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었다. 원저우시가 대부호들을 배출한 기반은 라이터공장, 신발공장, 가죽공장, 전기부품공장 등 노동집약적 산업이었다. 하지만 현지 인건비 상승으로 가격경쟁력은 인도,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에 밀리는 상황이다. 기업들의 매출은 줄어들고 시정부의 세수도 감소하는데 겹쳐, 현지 부동산시장이 급속히 냉각하는 등 지역경제에 악재들이 쏟아졌다.

원저우시는 이를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한국기업 유치를 택했다. 한국의 기술집약적, 자본집약적 고부가가치 기업들을 유치해 현지 지역경제를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것. 실제 원저우는 현재 전기, 신발, 의류, 자동차 부품, 펌프밸브 등 5대 업종을 기반으로 인터넷, 관광, 물류, 태양광, 석유화학, 철도, 신소재, 문화산업, 바이오 등 신흥산업육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방정부가 기업유치를 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지원책은 세금감면과 토지임대료 할인이 대표적이다. 한중산업단지를 조성해 국무원의 비준을 득하게 되면 원저우시는 공식적으로 더욱 높은 우대혜택을 제시할 수 있다.
 

원저우시 천이신 서기.[사진=조용성기자]



◆서미트행사, 지역 대거출동

이 같은 배경에 지난 16일 원저우시 샹그릴라호텔에서 '2015한중산업협력원저우서미트(summit)'이 개최됐다. 서밋행사는 국무원 상무부 투자촉진국, 저장성 상무청, 원저우시 인민정부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낸 원저우시 지방정부 관계자들의 발언에서 적극적인 의지가 묻어나왔다. 천이신(陳一新) 원저우시 서기는 "원저우는 저장성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로 민영기업만 15만개 있다"면서 "현재 전통적인 공업에서 새로운 산업으로의 탈바꿈을 모색하고 있으며 한국과의 협력할 여지가 너무나도 큰 도시다"고 소개했다. 마훙타오(馬洪濤) 저장성 상무청 부청장은 "한국은 절강성의 3번째 수입대국이자 4번째 수출대상국이며, 한국의 저장성 투자는 누적 41억달러에 달한다"며 "원저우 한중산업단지는 새로운 성장모델을 제시할 것이며, 저장성과 한국의 경제협력을 한단계 더 높은 단계로 올려놓을 것이며, 한국과 중국을 잇는 새로운 창구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양이항(楊依杭) 상무부 투자촉진국 부국장은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중국에서 새로 설립된 한국기업은 전년대비 12.2% 늘어난 1270곳이었으며, 중국에 설립된 한국기업은 누적 5만8000곳에 이르고, 누적투자액은 600억달러에 달한다"고 소개하면서 "원저우 한중산업단지 설립은 양국의 경제교류 활성화를 촉진할 것이며, 이는 양국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경제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무부 국제사 천닝(陳寧) 처장은 "한중FTA 내용에는 지방경제 협력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양국 지방에서의 실질적인 경제합작을 도모한다면 양국 기업과 국민들에게 혜택이 고루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6일 원저우 샹그리라호텔에서 개최된 2015한중산업협력 원저우서미트 진행모습.[사진=조용성 기자]



◆기업간 매칭행사, 5월 대거 방한

이날 행사에서는 상무부 투자촉진국과 원저우시 인민정부간에 한중산업단지 건설을 함께 추진해 나가기로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MOU체결식도 개최됐다. 이어 이날 저녁에는 한중 기업가간의 매칭행사가 진행됐다. 한국기업 30여곳과 원저우기업 30곳이 함께 식사를 하며 교류를 진행했다. 이자리를 주재한 후강가오(胡剛高) 원저우시 부시장은 “한중산업단지 건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한국기업과 원저우기업간의 교류협력이 강화되길 십분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중국국제무역추진위원회 원저우시 위원회 천치(陳琦) 부회장은 “오는 5월 원저우시 기업 50여곳을 이끌고 서울을 방문해 중소기업중앙회 등 한국의 단체들과 매칭행사를 열고 적극적인 교류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원저우시가 추진하는 한중산업단지는 두 곳으로 추진된다. 원저우시의 어우장커우(甌江口)신구과 경제기술개발구 등 두곳에 설치되도록 추진된다. 어우장커우신구의 산업단지는 갯벌1기와 갯벌2기의 간척지 구역에 총 용지면적은 12㎢ 규모다. 원저우 경제기술개발구에 위치하게 되는 한중산업단지는 약 13㎢이다. 유치를 목표하고 있는 제조업 분야로는 자동차, 자동차부품, 공업로봇, 스마트제어시스템, 석유화학, IT, 모바일인터넷, LED, 문화예술, 쇼핑, 호텔, 물류, 레저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