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스터 백' 정석원이 생각하는 연기, 사랑, 그리고 새로운 시작
2015-01-16 10:12
아주경제 안선영 기자 = 배우에게 TV나 스크린보다 실제가 더 멋있다는 건 두 가지를 의미한다. 배우로 연기하는 모습보다 현실 속의 그가 더 매력적이라는 것, 혹은 아직 카메라를 통해 보여주지 못한 가능성이 잠재해 있다는 것. 정석원(30)은 그런 배우다.
영화 '짐승'(2011), '알투비:리턴투베이스'(2012)와 촬영을 앞둔 '대호'까지 카리스마 넘치고 무게감 있는 캐릭터를 줄곧 맡아온 그였기에 시청자는 정석원의 차가운 부분만 알고 있었다. 지난달 25일 종영된 MBC 수목드라마 '미스터 백'(극본 최윤정·연출 이상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석원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밑바닥에서 맨주먹으로 시작해 능력만으로 30대에 이사로 발탁된 정이건으로 분했다. 한 올 흐트러짐 없는 헤어스타일과 엘리트 분위기를 풍기는 안경, 깔끔한 슈트에서 차갑고 냉정한 정이건의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지난 8일 서울 역삼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석원은 기존의 캐릭터와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짧게 깎은 머리와 맨투맨 티셔츠는 성격을 쉽게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1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그는 때로는 장난기 가득한 남자아이 같았고, 때로는 연기에 대한 열정 가득한 신인배우의 모습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가수 백지영의 남편으로 '사랑꾼' 캐릭터까지 얻었으니 알면 알수록 더 궁금해지는 그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미스터 백' 끝난 소감은?
A : 시원하게 뭔가 하나가 끝난 기분이다. 미션을 마친 것 같아서 시원섭섭하다. 한편으로는 다른 미션에 다시 한 번 박차를 가하려고 한다.
A : 정말 외로웠다. 정이건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지?' 싶었으니까. 나중에는 오히려 불쌍하고 안쓰러워 보였다. 자기 편 하나 없이 혼자여서 많이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고민을 털어놓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지만 정이건은 대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더라. 사람 자체가 사람을 믿지 않고, 정말 재미없는 삶을 산 인물이다.
Q : '미스터 백'이 끝나고 얻은 게 있다면?
A :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 정이건 캐릭터가 가진 중심을 계속 유지하려고 했다. 왜 호텔을 가져야 하고, 왜 이 옷을 입어야 하는지…. 정이건은 내가 생각한 걸 끝까지 갖고 가고 싶었다. 유쾌한 로맨스코미디 안에 악역으로 출연했지만 사람들이 나를 욕할 때마다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나로 인해 각 인물이 더 돋보이기 때문에 나만큼은 처음에 잡았던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예전 같았으면 같은 악역이라도 조금은 장난스럽고, 블랙코미디 성격이 강하게 표현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이건은 이대로 갔으면 좋겠다고 감독님께 말씀드렸고, 감독님 역시 내 의견과 비슷해 기분 좋은 작업을 했다.
Q : 장나라가 '미스터 백'을 선택한 이유가 신하균 때문이라고 했다. 직접 본 신하균의 연기는 어땠나?
A : 신하균 선배는 정말 천재 같다, 천재. 마지막 주차장 신에서 서로 감정신이 오갔다. 주차장에서 받은 대본에 대사까지 추가돼 새로운 감정이 갑자기 생겼다. 제대로 소화하지 못할 충분한 상황이었지만 정확한 감정과 에너지를 나에게 주더라. 1인 2역이 전혀 쉬운 역할이 아닌데 몰입도, 집중력이 대단하다. 질투가 날 정도로 열심히 하시는 모습을 보고 때로는 창피했고, 많은 걸 배우고 싶었다.
Q : 결혼 후 연기에 대한 여유와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A : 결혼 전에는 마음이 조급했다. 어떻게 해서든 뭔가를 잘해서 빨리 성공하고 싶었다. 가끔은 왜 내가 하고 싶은 역할이 안 들어오냐고 불안해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게 다 쓸데없는 생각 같다.
결혼을 한 뒤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배우의 직업을 더 넓게, 여유롭게 보게 됐다. 잘하고 싶다고 내 마음대로 되진 않지만, 그래도 계속 준비하고 노력하다 보면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사람이 진짜 열심히 노력한다면 안 되는 게 없다고 본다. 그게 좀 오래 걸릴 뿐이지, 하하. 지금부터 10년을 죽어라 해보려고 한다. 초심을 잃지 않고 공부하고 고민하고 내면도 많이 가꾸고. 지금 존경하는 선배들처럼 되고 싶은 게 내 목표다.
Q : 덕분에 '사랑꾼' 이미지도 생겼다.
A : 정말 낯설다. 내가 살아온 인생에서 그런 이미지는 정말 오그라든다. 예전에는 내가 생각하는 멋스러움이란 그저 남자다운 것, 강한 것이었다. 그런데 진짜 사랑을 하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흡수되더라. 처음에는 서로 사랑하는 건데 그걸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좋은 기운이 많은 분께 긍정적 에너지를 준 것 같다. 그저 진심을 다해서 서로 배려해주고 아껴준 건데 좋은 이미지가 생겨서 기분이 좋다. 예전 같으면 '뭔 사랑꾼이야!'라고 화를 냈겠지만 지금은 '음, 사랑꾼이라…'하는 마음이다.
Q : 연기에 대한 생각도 변했나?
A : 20대에는 연기를 쉽게 생각했다. 30대가 되고 나니 어려운 게 확 느껴지더라. 서른이 내 연기 인생의 '진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난 이제 겨우 1년 차 배우다.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렵고, 알면 알수록 거기에 갇히는 것 같다. 30년 차 선배도 여전히 어렵다고 하더라. 연기는 여전히 두렵다. 강심장과 노하우를 얻기 위해 사전조사와 엄청난 공부, 고민해야 하는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