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화재] 안전 외면한 예견된 '인재'…안전불감증 여전

2015-01-12 15:18
드라이비트 공법 유독가스 발생…사망자 모두 연기 질식
MB정권 부동산 정책 도시형 생활주택…안전 사각지대

아주경제 임봉재 기자 = 세월호 참사, 고양시외버스터미널 화재 등이 주는 교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안전을 외면, 화재로 130명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벌어졌다.

소방당국이 신고받은 지 수분 만에 출동했으나, 인명 피해가 속출했다. 외벽에는 가연성 외부 마감제가 설치된데다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고, 소방통로가 확보되지 못하는 등 악재가 겹쳐 피해를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정부의 주택정책이 불러온 허술한 인허가 규정과 관리 부재가 대형참사를 불러왔다.

이에 따라 또다시 '인재'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12일 오후 12시 현재 4명이 숨지고, 126명이 부상했으며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의정부시는 이번 화재로 인명피해가 큰 만큼 종합비상대책본부를 꾸려 사고 수습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번 화재는 건물 1층 주차장에서 시작된 불이 출입구를 막았고, 불과 유독가스가 건물 안팎으로 빠르게 퍼지면서 많은 인명 피해를 낸 것으로 소방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 4명 사망, 124명 부상…10명 생명 위독

지난 10일 오전 9시 13분께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동의 10층짜리 대봉그린아파트 1층 주차장에서 불이 나 한경진(26·여)씨 등 4명이 숨졌다. 시신은 의정부성모병원, 의정부백병원, 추병원, 의정부의료원 등에 각각 안치됐다.
건물 안에 있던 주민 124명은 연기를 마셔 의정부와 서울지역 병원 등 15곳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이 가운데 10명은 생명이 위독해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의 집중 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46명은 유독가스를 마셔 어지러움증을 호소했으나 병원에서 간단한 진료를 받은 뒤 귀가했다.

또 불은 옆 건물로 옮아붙어 10층과 15층짜리 건물 등 3개동을 태웠다. 인근 또 다른 4층짜리 건물과 주차타워, 다가구주택, 단독주택 2곳도 피해를 입었다. 불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소방대에 의해 2시간 여만에 진화됐다.
소방당국은 이번 불로 90억원의 재산피해가 난 것으로 잠정 추산했으며 수사본부와 함께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 주차장 오토바이서 발화…불꽃 부위·원인 '미궁'

수사본부는 화재 원인을 찾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지만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소방당국과 수사본부에 따르면 CCTV 확인결과 4륜 오토바이가 대봉그린아파트 1층에 주차됐고, 운전자 A씨가 건물 안으로 들어간 뒤 불꽃이 일었다. 5분 뒤 옆 2륜 오토바이에 이어 다른 차량에까지 옮아붙었다.

CCTV 화면이 선명하지 않아 불꽃이 어느 부위에서 왜 일었는 특정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르다. 일부는 배선 결함에 따른 섬광이라고 판단했지만, 현재로선 단정할 수 없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은 영상에서 A씨가 오토바이를 1분 30초가량 만져 수상히 여겨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지만 특이점을 찾지 못했다. A씨는 경찰에서 "오토바이 키가 잘 돌아가지 않아 오토바이를 살폈다"며 "두 달 동안 탔는데 기계적인 결함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오토바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분석을 의뢰,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오토바이가 모두 불타 뼈대만 남아 정확한 화재 원인을 찾는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찰과 소방, 전기안전공사는 더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해 12일 오전 11시부터 대봉그린아파트와 주변 피해 건물 등 화재현장에서 감식을 벌였다. 발화점을 밝혀낸 만큼 연소가 확대된 과정과 피해가 커진 이유 등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또 층별 구조와 사망자 발견 지점, 화재 경보기 작동 여부 등을 점검했다.

◇ 연소 확대 요인 '드라이피트' 공법…사망자 모두 질식사 

연소 확대 요인으로 건물 외벽에 쓰인 '드라이비트' 공법이 꼽히고 있다. '드라이비트'라는 내부에 스티로폼이 들어 있는 단열재로 마감 처리됐다. 시공비가 저렴하고 시공이 편해 공사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불이 나면 단열재가 타면서 외벽을 타고 불이 빠르게 확산되고 유독가스를 발생시킨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불이 외벽을 타고 급속도로 번진 것으로 소방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화상보다 유독가스 질식에 의한 인명 피해가 컸다. 사망자 4명에 대한 부검 결과 1차 사인은 일산화탄소 과다에 의한 질식사로 판명됐다. 
이같은 이유로 이날 유독가스는 건물 전체로 퍼져나갔다. 유독가스가 내부 계단과 통로를 통해 지상으로 빠르게 퍼져 건물 전체를 메웠다. 이 때문에 한씨는 건물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안현순(67·여)씨와 윤효정(29·여)씨는 연기를 마셔 의식을 잃은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 중에 숨졌다. 이광혁(44)씨는 화재 진압 후 소방관들이 불길이 거셌던 2∼4층을 수색하다 사망한 것이 발견됐다.
수사본부는 짧은 시간에 많은 인명 피해가 남에 따라 인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조사를 벌이고 있다.

◇ 소방안전시설 스프링클러 설치되지 않아…관련법 허점

불이 처음 시작된 대봉그린아파트와 불이 번진 드림타운에는 기본적인 소방안전시설인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10층 이하여서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다. 이 두 건물은 10층짜리다. 15층짜리 인근 해뜨는 마을에는 외벽이 타던 초기엔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다가 내부에 불이 번지면서 작동했다.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던 이유다. 현행 소방법은 아파트는 11층 이상일 경우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민안전처는 11층 이상 건물에만 스프링클러를 적용한 이유에 대해 '국제 기준을 따랐다'고 밝혔다. 일본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10층 이하 건물은 거주자들이 스스로 불을 끄거나 피하기 쉽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체 진화를 불가능했다.

실외 비상계단의 경우에도 바닥 면적이 300㎡ 미만이라는 이유로 설치되지 않았다. 소방시설 설치와 관련한 법 제도에 허점이 있다는 대목이다. 반면 미국은 층수 규정이 없는 대신 외부로 직접 통하는 피난로가 없는 경우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 소방차 진입못해 초기 진화 늦어져

불이 처음 난 대봉그린아파트 인근 도로에 불법 주차된 자동차가 소방차의 진입을 막으면서 초기 진화가 늦어졌다. 이날 화재신고가 접수된 시간은 오전 9시 26분과 9시 27분. 입주민 2명이 각각 112상황실과 119상황실에 신고했다. 소방당국은 곧바로 관련 기관에 상황을 전파했고, 신고 접수 후 6분 만인 오전 9시 33분에 소방선발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불법 주차된 차량을 옮기느라 소방차가 현장에 접근하지 못했고, 20분이 지나서야 화재 진압이 가능했다. 화재 진압의 '골든타임'을 놓친데다 현장에 접근했을 때는 이미 불길과 유독가스가 건물 전체로 퍼진 후였다.

◇ 원룸형 도시형 생활주택…안전 사각지대

모두 타버린 대봉그린아파트과 불이 번진 드림타운, 해뜨는마을 모두 '원룸형 도시형 생활주택'이다. 도시형 생활주택은 2009년 도입된 이명박 정부때 부동산 정책이다. 1~2인 가구와 서민 주거안정 대책의 하나로 공급이 추진됐다. 원룸형 오피스텔이지만 아파트 이름을 붙일 수 있고, 상업지역에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아파트에 비해 각종 안전 및 편의시설 설치 의무가 대폭 줄었다. 사실상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정부는 2013년 주택법 시행령과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켜 지자체장의 판단에 따라 원룸형 도시형 생활주택의 입지를 제한할 수 있게 하고 주차장 기준도 뒤늦게 강화했다. 이에 따라 개정안 통과 이전에 지어진 도시형 생활주택에 대한 대대적인 안전점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지난 10일 오전 9시 13분께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동 대봉그린아파트 등 건물 4동과 주차타워, 단독주택 등에서 불이 나 4명이 숨지고 126명이 부상했다. 또 226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90억원(소방서 추산) 상당의 재산피해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