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가·저유가라는데 체감물가는 딴 세상
2015-01-11 23:54
아주경제 노승길 기자 = #충북 청주시에 사는 주부 정 모씨(39)는 "요즘 뉴스를 보면 '저물가다, 디플레이션이 우려된다' 등의 말들을 많이 하는데 막상 마트에 가면 장보기가 겁날 정도다. 반찬거리와 가족이 먹을 과일, 아이들 간식만 사도 10만원은 우습게 넘어간다. 도대체 뭐가 저물가고 뭐가 디플레이션인지 서민의 입장으로서는 이해가 안 갈뿐"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가 장기화된 저물가로 디플레이션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지만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딴 세상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국제유가가 배럴당 50 달러선까지 내려앉으며 기록적인 저유가를 기록하는 상황임에도 불구, 소비자는 휘발유값이 약간 하락한 것 외에는 큰 체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 소비자물가 상승률, 26개월 연속 0~1%대에 그쳐
1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8%로 14개월 만에 최저로 내려앉으며 0%대에 진입했다. 26개월 연속 0~1%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연간 상승률 역시 마찬가지로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3%에 그쳐 2013년과 동일, 1999년(0.8%) 이후 2년 연속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2.5∼3.5%)에 한참 밑도는 수준이다.
특히 현재 한국경제의 저물가 현상은 수요 부진이 원인이라는 점이 문제다.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수요가 줄어 물가하락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저물가로 인해 한국경제가 일본의 1990년대와 같이 디플레이션에 진입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져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 저물가? "체감상 장바구니 물가는 급등"
이렇듯 수치상의 저물가가 심각한 상황에서도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장바구니 물가는 급등이라는 표현까지 가능하다. 생활과 밀접한 제품들의 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식품소비행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주부들의 장바구니 체감 물가지수는 114.4에 달했다. 이는 2013년 같은 기간을 100으로 놓고 산출한 수치로 단순하게 따지면 15%가량 물가가 올랐다는 의미다.
2013년 조사 역시 체감 식품물가가 전년대비 28.5% 올라 2년 연속 두자릿수 상승률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해마다 급등하는 장바구니 체감물가지수 상승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57.7%로 전년 대비 9.4% 포인트가 올랐다.
장바구니 체감물가를 반영하는 11월 생활물가지수 증가율도 전년 동월대비로는 0.7% 상승했다.
정부 관계자는 "경기침체로 가계의 실질구매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생활에 꼭 필요한 식료품 등이 가격이 약간만 상승하더라도 체감물가는 확 오른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다"고 말했다.
◆ 저유가? "기름값, 국제유가 오를 땐 총알이더니 내릴 땐 거북이"
국제유가가 50 달러선이 붕괴되면서 지난 6개월간 절반 이상 떨어졌다. 하지만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도는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지난해 6월 107.93달러였다. 같은 시기 우리나라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유 가격은 대략 1757원 수준이었다.
두바이유는 최근 50달러를 밑돌면서 55% 가량 폭락을 기록했지만 연초 휘발유 평균 가격은 1416원으로 19.4% 떨어지는 데 그쳤다. 국제유가하락에 비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휘발유 가격 하락은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원유 가격 하락과 비례해 휘발유 가격이 내리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세금이다. 휘발유 1ℓ의 가격을 1500원으로 가정한다면 세금이 908원으로 절반을 훌쩍 넘는다. 이에 따라 국제유가가 하락을 거듭해도 세금을 뺀 약 600원 안에서 가격변동이 있을 뿐이다.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체감물가와 지표물가의 괴리는 개개 소비자의 '주관'때문에 이전에도 있었다"며 "'디플레이션 우려'와 '체감물가 고공행진'이라는 상반된 명제의 같은 해법은 가계 가처분소득의 향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