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진보당 해산 결정…새로운 국면 맞은 정치권 셈법 복잡
2014-12-21 14:32
아주경제 조문식 기자=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소속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을 박탈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국회가 ‘비선 실세 국정개입 의혹’ 등을 둘러싼 대치로 파행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헌재발 진보당 해산으로 연말 정국에 비상이 걸렸다. 헌정 사상 사법기관에 의한 정당 해산이 처음인 것은 물론 비례대표뿐 아니라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의 자리까지 박탈해 ‘월권적 결정’이라는 논란도 일고 있다.
헌재는 진보당에 대해 △주도세력의 북한 추종 △강령인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의 대남혁명전략과 거의 같거나 매우 유사 △폭력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집권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음 등으로 판단했다. 또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일부 당원의 활동이 아니라 당 주도세력의 일이라고 판단해 해산 결정의 주요 근거로 삼았다. 이날 결정 이후 정당 해산은 즉시 효력이 발생했다.
◆여권, 정치적 기회…야권, 중대한 도전
여권은 헌재의 진보당 해산 결정을 정치적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새누리당 윤영석 원내대변인은 “정당의 설립과 활동의 자유는 대한민국의 헌법 가치를 존중하는 것을 전제로 보장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평했다. 청와대 윤두현 홍보수석은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고 박근혜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수현 대변인은 “민주주의의 기초인 정당의 자유가 훼손된 것을 심각하게 우려한다”며 “새정치민주연합은 통합진보당에 결코 찬동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통합진보당의 해산에 대한 판단은 국민의 선택에 맡겼어야 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정의당은 특별 성명을 통해 “이번 판결은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강력히 규탄한다”며 “정당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판결로 매우 개탄스럽다”고 비판했다.
◆헌재 결정 이후 정당 해산 즉시 효력
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법적 절차는 신속하게 집행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헌재 결정 직후 통합진보당의 등록을 말소하고, 국고보조금 압류와 재산 동결 조처를 마무리했다. 국회사무처도 진보당 의원들에게 일주일 안에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을 비우라고 통보했다. 이처럼 올 연말 정국이 기존의 ‘비선 실세 국정개입 의혹’ 관련 여야 정쟁은 물론 ‘진보당 해산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정치 이념논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결정에 대해 진보당은 “6월 민주항쟁의 산물인 헌법재판소가 허구와 상상을 동원한 판결로 스스로 전체주의의 빗장을 열었다”며 “오늘 이후 자주·민주·평등·평화통일의 강령도, 노동자·농민·민중의 정치도 금지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말할 자유, 모일 자유를 송두리째 부정당할 암흑의 시간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며 “정권은 진보당을 해산시켰고 저희의 손발을 묶을 것”이라고 질타했다.
◆새로운 국면 맞은 정치권…셈법 복잡
헌재의 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정치권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여권은 청와대 비선 실세 국정개입 의혹 파문에서 벗어나 정국 주도권을 되찾는 명분을 얻었지만, 야권은 당분간 혼란을 겪게 될 것으로 분석된다. 새누리당은 ‘종북 프레임’을 통한 보수층 결집에 나서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동력 회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반면 진보당 해산에 반대했던 새정치연합은 앞으로 미칠 파장과 이해득실을 계산하느라 분주한 상태다.
새정치연합은 진보당과의 총선 연대는 물론, 여야 협상 과정에서 얻어낸 자원외교 국정조사 등에서 힘이 빠지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또 야권발 정계개편을 놓고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야권 내 정의당 등 소수정당의 움직임과 신당 창당, 새해 4월 치러질 보궐선거 등에 대한 분석도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의원직을 상실한 진보당 소속 의원들의 무소속 출마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