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한국판 매카시즘’ 광풍 째각째각…박근혜 정부 3년차 ‘시계제로’
2014-12-19 15:14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헌법재판소가 19일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 해산’을 결정하면서 정국이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당해산심판 청구 소송도 헌정사상 처음인 데다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의 예상을 깨고 압도적 다수(위헌 8, 합헌 1)로 진보당의 목적 등이 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시, 박근혜 정부의 ‘매카시즘(Mccarthyism·반공산주의) 빗장’이 풀린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헌재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 2주년인 이날 진보당 해산을 결정하면서 NL(민족자주파)을 기반으로 한 진보정당이 일거에 붕괴, 정부의 본격적인 공안몰이로 이어질 공산이 한층 커졌다.
◆헌재, 예상 깨고 8 대 1 압도적 다수로 정당해산 결정…“진보당은 北 추종세력”
헌재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린 마지막 재판에서 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사건과 관련, ‘8(위헌) 대 1(합헌)’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최종 결정했다. 김이수 재판관만이 소수 의견으로 진보당 해산을 반대했다.
헌재는 이와 관련,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이 자주파에 의해 도입됐다”고 지적한 뒤 “자주파는 미 제국주의에 종속된 식민지 반봉건사회 또는 반자본주의로 이해하고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진보당 이정희 대표와 이석기 의원 등이 포함된 경기동부연합을 거론하며 “자주파에 속하고 그들의 방침대로 당을 주도해왔다”며 “당의 주도세력은 과거 민혁당 및 영남위원회, 실천연대, 일심회, 한청 등에서 자주·민주·통일 노선을 제시하면서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북한과 연계돼 활동하고,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했다”고 밝혔다.
또한 헌재는 △맹목적인 북한 지지 △우리나라를 미국과 외세에 예속된 천민적 자본주의 또는 식민지 반자본주의 사회로 인식한 점 △저항권적 상황이 전개될 경우 무력행사 등 폭력을 행사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한다는 입장을 가진 점 등을 이유로 정당해산을 긍정했다.
◆헌재, 황교안 법무부 장관 주장 되풀이…진보당과 北 연결고리 ‘없는’ 결정문
또한 헌재는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사건’에 연루된 이석기 의원의 내란 관련 회합 참가자들과 진보당의 연결성에 대해 “이들은 경기동부연합의 주요 구성원”이라며 “회합을 주도한 이석기의 경기동부연합 수장으로서 지위 등을 종합하면, 이 회합은 통진당의 활동으로 귀속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헌재는 진보당의 목적과 관련, “최종적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판단한 뒤 △경기동부연합의 내란 관련 회합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 △중앙위원회 폭력 사건 및 관악을 지역구 여론 조작 사건 등을 이유로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봤다.
헌재는 가장 중요한 진보당 정당해산의 구성요건인 △해산 필요성 △비례원칙 위배 여부와 관련해서도 “적극적이고 계획적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공격해 그 근간을 훼손하고 이를 폐지하고자 했다”고 긍정한 뒤 “정당 해산 이외의 다른 대안은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헌재의 최종 결정문에서 진보당의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와 북한 추종의 고리를 찾기 힘들다는 데 있다.
헌재의 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청구의 최종 결정문은 그간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새누리당의 논거와 ‘판박이’다. 진보진영 내부에서 헌재가 일방적으로 진보당 해산 주장을 했을 뿐 구체적인 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특히 진보당 해산을 결정한 헌재의 논거는 정당해산 제도를 용인한 유럽국가들의 권고지침인 ‘유럽 평의회 산하 베니스위원회’ 지침에도 어긋나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실제 그 지침에는 △폭력의 실제적 동원 △폭력을 동반한 동원의 실질적인 위험성 등이 인정될 때 정당해산을 용인할 수 있다.
하지만 헌재가 이날 진보당 해산 근거로 든 이 의원의 내란 관련 회합은 1,2심 재판 결과가 엇갈릴 정도로 법리적 논쟁이 불붙는 사안이다. 2심에서는 “회합 참석자들이 내란 범죄의 구체적 준비방안에 대해 어떤 합의에 이르렀다고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이 의원의 내란음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내란음모의 △구체성 △적극성 △현실성 등이 결여됐다는 얘기다.
◆조국 “진보당 해산, 공안파의 승리…여지없이 쓸어버리는 구나”
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청구소송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계류 중인 상황에서 헌재가 예상을 깨고 조기에 결론 내림에 따라 ‘정상화의 비정상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 셈이다.
뿐만 아니라 헌재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 2주년에 발맞춰 선고하면서 사실상 청와대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인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문을 막기 위해 사법부를 동원한 게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에 불을 지르게 됐다.
정의당 노회찬 전 대표는 이날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해 법무부의 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청구 시점이 지난해 9월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사실 (이 시점은) 국가정보원 부정선거 문제 대한 논란이 컸을 때였다”며 “이 때문에 정부가 정치적 위기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공안카드가 아니었냐는 지적도 있었다. (헌재가 최종 선거를 하는 시점도) 비선실세 논란으로 인한 정치적 곤경에 처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이석기 사태 전후로 불기 시작한 ‘김기춘(청와대 비서실장)-황교안’ 등 공안파 작품 의혹이 당분간 정치권을 뒤흔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진보당 정당해산과 관련해 “헌재 안팎 ‘공안파’의 완승”이라며 “8 대 1로 해산 및 의원직 박탈 결정, 여지없이 쓸어버리는 구나. 희망이나 기대와 달리 헌법재판소 내에 ‘중도파’는 없었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도 이날 성명서를 내고 “헌재의 정당해산 판결은 역사와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것”이라며 “헌재 스스로가 헌법정신을 파괴한 행위”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민주적 기본 질서를 파괴한 것은 통합진보당이 아니라 박근혜 정권”이라며 “박근혜 정권은 분명 국민과 역사의 철퇴를 맞을 것이며, 이미 그 날로 향하는 시계 초침은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헌재의 결정과 관련, “대한민국 부정세력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자 헌법과 자유 민주주의의 승리”라며 “대한민국이 종북세력의 놀이터로, 국회가 종북세력의 해방구로 전락하는 것은 오늘로 종지부를 찍었다”고 밝혔다.
헌재의 정당해산 결정으로 논란의 마침표는커녕 의혹만 확산일로를 걷게 됨에 따라 박근혜 정부 집권 3년차 정국은 시계제로 상태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