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대물림되는 삶…한국폴리텍대학 남인천캠퍼스 학장 강희상

2014-11-12 08:43



주말마다 새벽이면 자전거를 타고 10여Km를 달려 전주천변 새벽시장에 간다.

전주천은 우리나라 도심하천 최초로 생태계 복원에 성공한 1급수 하천이다. 전주와 완주군 등지에서 오신 시골 농부들이 직거래로 농산물과 해산물을 판다.

싱싱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새벽시장은 아침 열시가 되면 썰물처럼 철수하기 때문에 번개시장이라고도 부른다.

한국폴리텍대학 남인천캠퍼스 학장 강희상[사진제공=한국폴리텍대학 남인천캠퍼스]


각종 채소와 과일은 기본이고, 낙지 꽃게 등 해산물과 산나물이 즐비하다. 시장에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사는 것은 직접 만들어 파는 도토리묵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다. 두부전과 도토리묵 무침은 아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다.

어떤 날은 꽃게찜 재료, 또 어떤 날은 갈낙탕(소갈비와 낙지), 주꾸미 볶음을 만들 재료를 사기도 하고 아내가 좋아하는 녹두빈대떡도 산다. 커다란 배낭이 가득차면 집으로 향한다. 새벽시장에서 돌아올 때는 자전거 페달 밟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집에 돌아오면 아내와 아이들은 아직도 단잠을 자고 있다.

조심조심 야채를 다듬고 밥을 하고 무치고 데치고 서너 가지 반찬을 만들어 식탁에 올려놓고 아내와 아이들을 깨운다. 아이들을 깨울 때는 먼저 다리쪽 이불을 걷고 종아리 마사지를 한다.

이어서 어깨를 주무르고 아이의 귀에 속삭인다. “아빠가 예쁜 딸 좋아하는 갈낙탕 만들었는데 맛 좀 봐주셔요.” 아내를 깨울 때도 마찬가지다. 종아리와 어깨를 주무르면 혈액순환은 기본이고 자는 동안 굳어있던 신경이 깨어나서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나의 주말은 아침 두 끼 봉사로 시작한다. 벌써 20년이 넘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아내와 아이들의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 한 주간 쌓였던 스트레스가 몽땅 날아간다.

설거지는 아들몫이다. 주말엔 남자들이 부엌을 차지하는 것이 우리 집 풍경이 되었다.

지인들과 모인 자리에서 주말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물음에 주말 두 끼 봉사 이야기를 했더니 모두들 손사래를 쳤다.

부부 동반 모임이나 부인들 앞에서는 절대 말하지 말란다. 공공의 적이 될 거란다.

대부분의 한국남자들은 부엌 근처에 가는 것을 금기로 여긴다. 가부장적인 사회분위기가 만들어낸 지극히 남성 우월 주의적 행태이다. 맞벌이 부부인 고등학교 동기 부인은 퇴근 후 꼼짝도 하지 않고 거실에 누워 TV 채널만 돌리는 남편을 보면서 신혼시절부터 지금까지 갈등의 연속이다.

가사를 분담하고 여성에 대한 배려있는 생활을 하는 친정 부모와 오라버니를 보면서 자란 탓에 그런 분위기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매일 싸운다. 그 친구가 한번은 나에게 “요즘은 너 때문에 자주 싸운다.”고 말했다. 사연인즉 퇴근한 그 친구는 가사는 물론이고 모든 대소사도 부인에게 미룬다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나와 비교하면서 잔소리할 수밖에…….



아들이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그 당시 온라인게임 ‘스타크래프트’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직원들과 만찬을 마치고 집에 가다가 아들이 다니는 학원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마침 학원 강의가 끝날 시간이라서 같이 가려고 학원에 갔는데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들과 친한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우물쭈물 말을 못하는 것이었다.

느낌이 이상해서 아래층 PC방에 갔더니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스타크래프트에 심취해 있었다. 나를 보더니 혼비백산 컴퓨터도 안 끄고 일어나서 따라 나왔다.

집으로 오는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죄인처럼 안절부절 못했다. “아들, 게임이 그렇게 하고 싶었어?” “네, 죄송합니다.” “괜찮아 공부하다가 가끔은 할 수도 있지. 그렇지만 수업을 빼먹고 하는 것은 학생으로서 본분을 망각한 거니까 앞으로는 쉴 때 한 번씩 하는 것으로 하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났다. 사실 아들의 상태는 거의 게임중독 수준이었다. 아내가 해결책을 제시했다.

다음날 거금을 들여 최신 컴퓨터와 각종 게임프로그램을 사서 아들 방에 설치해 놓고 아들에게 말했다. “간섭하지 않을 테니 게임도 맘대로 하고 그 대신 수업은 빠지지 마라.” 다음날부터 아들은 학원을 파하기 무섭게 집으로 달려와 게임에 몰두했다. 그러기를 한 달여가 지났다. 아들이 아침밥을 먹다가 “아빠, 이제 게임 질리도록 했으니 컴퓨터 방에서 치워주셔요.” 아들은 그 이후 지금까지 게임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끊임없이 야단치고 감시하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면 아이는 반항하게 되고 때로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평온한 가정생활은 성공적인 사회생활로 이어진다. 대학 4학년인 아들과 3학년인 딸은 사회성이 좋아서 친구들이 많다. 부모의 생활태도는 대를 이어 학습된다.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를 보면서 자란 아이가 가정을 이루면 폭력이나 폭언을 당연시 한다. 맞고 자란 아이는 폭력에 순응하고 저항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랑받고 자란 아이는 사랑할 줄을 안다.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은 작은 관심과 배려다. 배려는 작은 희생으로부터 나온다.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것, 편들어 주는 것, 공감해 주는 것, 칭찬해 주는 것이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고 하지 않던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사랑도 미움도 폭력도 언어습관도 인생의 가치관도 심지어는 입맛까지도 대물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