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FTA 타결] 공산품 ‘맑음’ 농산물 ‘흐림’…방어선 지키기만

2014-11-10 14:04

아주경제 김선국 기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10일 최종 타결됨에 따라 농식품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이번 한·중 FTA에서 농수산물 개방 수준(품목 수 기준 70%, 수입액 기준 40%)을 역대 FTA 최저 규모로 '방어'했다. 쌀은 양허 품목에서 제외했다는 것을 정부가 강조하고 있지만 국내 농수산업계의 피해는 불가피해 보인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중국으로부터의 농수산물 수입액은 2008년 28억2200만 달러에서 지난해 47억1400만 달러로 5년 새 67.0%나 증가했다. 

한·중 간 농림축산물 수출입 상위 주요 10개 품목[자료=농림축산식품부]


우리나라의 FTA 수혜 품목으로 여겨지는 공산품 역시 중국산 물량이 국내 시장을 무섭게 파고들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노경상 한국축산경제연구원장은 10일 "한·중 FTA에 따른 피해가 당장은 크지 않지만 10년이나 15년 뒤에 심각할 것"이라며 "농축산업에 대한 보완대책을 장기적 측면에서 강력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임정빈 서울대 교수는 "농업은 장기적으로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관세율이 떨어지면서 가랑비에 옷 젖듯 농업이 계속 피해를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수산업계의 한 전문가는 "한·중 FTA 타결로 수산업계가 피해를 받는 건 다 아는 사실이고 수산업계는 초민감품목에 포함돼 양허 제외를 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며 "피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수산업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정부가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전문가는 "중국 불법조업 단속을 강화하고 불법조업을 통해 잡은 수산물이 국내 유통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한우자조금 관계자는 "FTA 타결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국내 한우산업은 수급이 불안정한 만큼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정책들이 나와야 한다"며 "국내 총 소 사육두수가 300만두인데 동북3성 지방에 한우와 비슷한 계열의 황우가 2000만두 된다"고 말했다.

최근 한우자조금의 연구용역으로 수행한 '한·중 FTA에 따른 한우산업의 피해 및 대책 연구' 보고서에서는 "중국 동북지방 등에 있는 육우 선도기업들이 우리나라에 쇠고기 수출을 추진하면 연간 3185억원 정도의 피해가 발생한다"고 전망됐다. 

이병오 강원대 교수는 "중국은 넓은 목축지역에서 소를 길러 사료비가 한우보다 훨씬 적게 들고 토지임대비용, 임금 등에서도 한우보다 경쟁력 있는 만큼 중국의 육우 선도기업들이 이익이 된다면 우리나라에 수출을 추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자유무역협정(FTA) 대응 범국민대책위원회'는 "한·중 FTA는 중국산 농산물의 범람으로 신음하는 국내 농업을 완전히 파탄시킬 것이고 중국산 저가제품의 수입 급증으로 국내 중소기업에도 큰 타격을 줄 것"이라며 "FTA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석운 범대위 공동대표는 "대비책 등이 공론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달아 국민과의 합의 없이 FTA를 체결하는 것은 경제주권을 내다버리는 것"이라며 "국회 보고와 국민공청회 없이 진행한 FTA는 무효"라고 비판했다.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정부의 수입개방 정책으로 우리 농산물의 가격이 곤두박질쳐 농민의 생사가 위태롭다"며 "FTA 체결 전인 지금도 양파, 마늘, 고추 등 중국으로부터 밀려오는 농산물로 농업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는데 FTA가 체결되면 시설 채소 등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공산품 업계는 중국과의 FTA 체결 소식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정유화학업계는 업계는 올해 1∼5월 대 중국 무역에서 석유제품 21억 달러(전체 수출액의 3.6%), 석유화학제품 87억 달러(15.6%)의 수출 실적을 각각 기록했다. 국내 생산된 석유제품의 18%, 석유화학제품의 45%가 중국으로 수출될 만큼 중국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FTA 타결로 석유화학제품에 부과되는 관세가 사라질 경우 가격 경쟁력이 높아질 전망이다.

중국은 그간 국산 업스트림 석유화학제품(에틸렌·벤젠 등 기초유분과 파라자일렌(PX) 등 중간원료)에 대해 2%, 다운스트림(폴리프로필렌(PP) 등 합성수지) 제품에 5.5∼6.5%의 관세를 적용해왔다.

석유화학제품 평균 관세율은 3.9%로 대 한국 평균 관세율 3.2%보다 높다. 이 관세가 철폐되면 연간 무역수지가 15억 달러 이상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정제설비를 증설해 자급률을 키우고, 저가 원료 기반의 중동·북미산 석유화학제품 진입이 증가해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국산이 추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면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완성차업계는 고급차 분야 등에서 일부 수혜가 예상된다. 중국이 현재 수입차에 매기는 관세율은 22.5%, 우리나라가 수입차에 물리는 관세율은 8%이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그랜저와 제네시스, 에쿠스 등 준대형·대형차를 주로 중국에 수출하고 있는데, 관세가 철폐되면 가격 경쟁력이 올라가 중국 수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한국에서 생산, 수출하는 제네시스는 중국에서 약 37만8000위안에, 중국 현지에서 생산되는 BMW5는 43만5600위안에 팔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브랜드 인지도에서 밀리는 현대차가 가격을 더 낮추면 고급차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다는 얘기다.

중국의 고급차 시장은 현재 BMW를 비롯해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도요타, 혼다, 닛산, 폭스바겐 등 유명 자동차 브랜드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국내 자동차업계는 한·중 FTA에 따른 수혜보다는 중국산 제품의 공세를 더 우려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이미 중국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현지 생산·판매 체제를 구축한 터여서 수출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현대·기이차가 중국에서 생산·판매한 차량은 157만여대인데 비해 한국에서 중국으로 수출한 물량은 4만8000여대에 불과하다.

조선업계는 FTA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편의에 따라 어디에서나 등록할 수 있다는 '편의취적' 원칙이 보편화한 선박의 경우 현재도 어차피 관세가 매겨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중 FTA가 체결돼도 국내 업계엔 긍정적 영향도, 부정적 영향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국내 조선업은 태생부터 수출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선박에는 관세가 없는 관계로 FTA 영향이 없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