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획정위원회, 외국 사례처럼 상설기구 되는 것 중요”

2014-11-05 15:30
[선거구제 개편-3] 다시 불붙은 선거구제 개편, 외국 사례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국회의원 선거구별 인구 편차를 3대 1로 허용한 현행 선거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정치권에 ‘선거구제 개편’이란 화약고가 투하됐다. 한국 정치는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독식하는 거대한 카르텔 속에 갇혀 있다. 2017년 체제를 향해 달려가는 한국 정치는 승자 독식의 폐단을 타파할 수 있을까. 이에 아주경제는 총 3회 기획을 통해 87년 체제 이후 한국 정치를 지배한 하나의 큰 흐림이자 사회 갈등의 축인 지역주의 해소를 위한 길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아주경제 조문식 기자= 선거구제 개편은 헌법적·정치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으며 정당 간 의석수 증감의 이해가 걸린 문제다. 따라서 선거구 획정의 주요 행위자인 정당은 각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협상을 지속하게 된다. 그 결과 선거구 획정의 법정 기일을 어겨 선거관리에도 큰 차질을 가져오는 사례를 종종 보게 된다.

또 선거구 획정 시기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권은 선거구획정위원회의 구속력을 인정하지 않고, 획정 기준도 정당 간 협상 결과에 크게 흔들리고 있으며, 표의 등가성과 인구 편차의 허용한계를 위반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국회입법조사처 이현출 정치행정조사심의관(정치학박사)과 함께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의 사례를 기초로 우리의 개선점을 짚어봤다.

 

[사진 = 아주경제 정치부 조문식 기자 cho@]



◇미국 = 미국의 하원의원 선거구 획정에 관한 규정은 미국 헌법 제1조(입법부) 제2항 3절에 명시한 ‘하원의원의 수는 각 주의 인구수에 비례해 배정하되, 각 주는 적어도 1인의 하원의원을 가진다’에 기초하고 있다. 각 주에 배정된 하원 정수에 관한 선거구의 획정은 주의 권한에 속하며, 해당 주의회에서 주법(州法)으로 선거구를 획정한다.

대부분 주(州)의회에서 결정하나, 일부 주에서는 독립된 선거구위원회를 두고 활용한다. 선거구는 원칙적으로 1구 1인의 소선거구제였으나 예외적으로 주 전체를 하나의 선거구로 하는 전주(全州)선거구가 인정되는 경우도 있다. 상원의 경우 각 주 의회가 선출하는 2인씩으로 구성하도록 했지만, 수정헌법 제17조로 선거인들이 의원을 선출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

미국의 선거구 획정 기준을 살펴보면 연방헌법 제정 당시 모든 주는 최소 1명의 하원의원을 가지며, 의원 수는 인구 3만명에 대해 1명을 초과하지 못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인구 급증으로 국세조사 때마다 하원의원 정수의 총 규모가 확대됐고, 1929년 제정된 연방하원의석재분배법에 의해 435명으로 고정됐다.

인구비례에 따라 선출되는 하원의원 선거의 경우 10년마다 시행하는 인구조사 결과에 따라 주별로 선거구를 재획정한다. 상원에 대해서는 주의 인구면적, 부의 여하에도 불구하고 평등하게 취급된다. 연방헌법은 소선거구 구성에 있어 인접성, 분명한 한계, 인구의 평등성 등을 명시하고 있다.

선거구 간 인구균등과 같은 획정의 대원칙과 중추적인 기준에 대한 입법은 연방의회에서, 연방·주 및 그 이하 지방단위의 선거구 획정은 각 주에서 하도록 정하고 있다. 주별 의석 배분은 연방정부가 균등비례 방식에 의해 계산하고 대통령이 의회를 통해 각 주에 통지한다. 정수 할당에 따른 주 내의 선거구 획정은 주 의회가 결정한다.

미국의 경우 주 내에서 선거구 획정에 합의하지 못하는 경우 연방하원의원재배분법에 의해 선거구가 개정될 때까지 의원 수가 증가한 주는 증가한 만큼의 의원 수를 전주(全州)선거구에서 선거하고, 의원 수가 감소한 주는 전 의원을 전주선거구에서 선거하도록 규정한다는 특징도 있다.

 

[대한민국 국회]



◇영국 = 영국국민대표법 제1조(의회의원선거인)의 각주에 따르면 선거구의 정의는 하원의석재배정법(The House of Commons Act, 1949) 제4조에 규정하도록 하고 있다. 영국은 선거구획정위원회를 비정치적(non-political)이며 중립적인(impartial) 독립조직(independent agency)으로 규정한다.

이는 선거구 획정 기준, 획정 절차 및 이의 제기 등으로 규정돼 있다. 영국은 지난 1992년 의회선거구법(Parliamentary Constituencies Act)의 개정으로 선거구 획정을 8~12년 사이에 실시하도록 할 것을 규정한다. 또 선거구 획정을 위해 지난 1949년 의석재배분법에 의해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에 각각 상설독립기관인 선거구획정위원회(Boundary Commission)를 설치해 선거구 획정 업무를 관장하도록 했다.

획정위원회는 4인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위원장은 하원의원이 겸임한다. 하지만 실제 선거구 조정 과정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부위원장은 고등법원판사 중에서 해당 지역의 법원장이 법관 1명을 지명하며 위원 2명은 내무장관, 환경교통지역장관이 각각 1명씩 지명하도록 규정돼 있다. 국회의원(하원의장은 제외)은 선거구획정위원회원이 될 수 없다는 점도 중요하다.

획정위원회는 지역별로 하원의원선거구와 유럽의회의원선거구에 관해 인구 증감, 지방자치단체의 구역변경 및 기타 이유로 의석재배분의 취지 또는 의석재배분이 불필요하다는 취지의 정기보고를 8~12년마다 관계 장관에게 권고하도록 돼 있다. 그 외에도 특정 선거구의 재획정이 필요한 경우 수시보고를 할 수 있다.

선거구 획정에 관한 입법은 유권자 수의 균등과 지방정부의 경계를 존중하도록 하고 있다. 특징적으로 지방정부의 경계, 군 간 경계는 분할할 수 없으나 도내에서 구(district)는 상호 겹치거나 분할할 수 있다. 선거구 조정의 최소 기준단위인 지방의회 의원선거구(ward)는 분할을 금지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선거구 조정·획정 과정에 정당이나 국회의원이 직접적인 참여는 할 수 없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이와 함께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선거구 조정 개시 전에 선거구 조정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는 절차가 있는데, 이것이 유일한 정당과의 공식적인 협의 절차다.

각 정당은 초안이나 수정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지방조사 시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많은 지지자를 동원해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다. 선거구 획정의 맨 마지막 단계는 국회동의안(order in council) 작성이다.

이와 함께 관계 장관은 필요할 경우 수정을 가해 국회동의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할 수 있지만, 국회에서 실제 수정한 선례는 없다. 국회는 동의안에 대한 가부만을 결정할 뿐이지 수정은 불가능한 것으로 돼 있다. 만일 국회에서 부결되면 새로운 동의안을 작성해야 하는데 이러한 선례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 아주경제 정치부 조문식 기자 cho@]



◇프랑스 및 일본 = 프랑스의 선거구 획정은 프랑스선거법 제125조 제1항에 의해 동법 별표 1에 규정하고 있다. 동법 동조 제2항에는 선거구의 경계는 최근의 경계변경 사유가 있었던 날로부터 제2차 국세조사가 실시된 후 인구통계의 변동에 따라 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지난 1986년 7월 국민의회의원선거구획정의 기준·절차에 따라 정부가 조직법에 의해 선거구획정을 한다.

프랑스의 경우 선거구는 정부가 선거구획정조직법에 의거해 획정한다. 선거구는 시·읍·면, 구 등의 행정구역을 존중해 획정한다. 하지만 연속된 지역으로 구성한다. 인구 편차는 선거구 획정의 지표이며, 선거구의 인구수와 당해도의 선거구별 평균 인구수 간의 편차는 20% 이내여야 한다.

프랑스의 선거구 획정 절차를 살펴보면 헌법위원회가 선거구 획정 지침을 마련한다. 이어 내무부가 획정 실무를 담당하며 내각이 최종 결정을 한다. 선거구획정조직법안은 국사원(최고행정재판소)에 회부되기 전 국사원의 위원 2인, 파기원(대법원)의 법관 2인, 회계검사원의 수석위원 2인 등 6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위원회의 자문을 구해야 한다. 이처럼 프랑스의 경우 선거구 획정은 행정부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특징이 있다.

일본의 경우 선거구 획정은 법정주의로서 공직선거법 제13조 제1항 및 제2항에 의해 소선거구는 동법 별표 1에, 비례대표는 동법 별표 2에 규정하고 있다. 참의원 의원선거구의 경우에는 동법 제14조에 의해, 비례대표선거구 외의 지역구는 동법 별표 3을 통해 규정하고 있다.

일본의 선거구 획정 기구는 중의원의원선거구획정심의회가 담당하며, 지난 1994년 중의원의원선거구획정심의회설치법에 의해 총리부 산하에 상설기관으로 설치됐다. 이는 7인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국회의원이 아닌 인사로 양 의회의 동의를 얻어 내각총리가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본 중의원의원선거구획정심의회의 위원장은 호선으로 선출하며 위원의 임기는 5년이다. 심의회는 중의원선거구선출의원선거구의 개정에 관해 조사 및 심의 기능을 수행한다. 또 조사·심의결과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는 개정안을 작성해 총리에게 권고하는 형식이다.

이와 관련, 권고는 10년마다 행하는 국세조사의 결과가 관보에 공시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행한다. 이외에도 각 선거구의 인구가 현저히 불균형을 이루거나 기타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될 때도 수시 권고가 가능하다. 총리는 심의회로부터 권고를 받았을 때 이를 국회에 보고한다. 일본의 경우에도 획정에 관한 실무는 행정부가 주관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이현출 정치행정조사심의관(정치학박사)



◇한국 선거구제의 주안점 = 다양한 외국의 사례를 살펴본 가운데 선거구 획정 개혁 방향에 대해 국회입법조사처 이현출 정치행정조사심의관(정치학박사)은 5일 “한시적 기구로 존재하는 선거구획정위원회를 상설 독립기구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심의관은 “국회의원이 자신의 지역구를 최종적으로 획정하는 것은 마치 선수가 룰을 정하는 원리와 같아 당리당략에 의해 선거구가 획정될 가능성이 많고 대외적인 정당성 확보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외국의 사례처럼 상설기구가 되면 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선거구 획정에 대한 충분한 자료 검토와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이 심의관은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상설화와 더불어 획정위에 획정안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이 심의관은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정당 간 또는 의원 간 이해관계 대립으로 선거구획정위원회의 획정안 통과가 지연되고, 원안이 특정 정당이나 의원에게 유리하게 편향적으로 변경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영국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상설된 독립기관에서 획정안을 제출하면 의회는 가부만을 결정할 수 있고 수정은 불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 심의관은 “영국의 경우 정당과 정치인은 획정위 활동 개시 초기 단계에서만 의견을 개진하고 나머지는 획정위에 맡기는 전통이 있는데 이는 한국의 선거구 획정 논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선거구 획정에는 다양한 기준과 요인들이 포괄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인구수, 주민의 생활경제권과 행정구역, 지세, 교통 등 생활권, 기존 선거구 현황 및 향후 조정 가능성 등 다면적 검토가 요구된다”며 “인구수가 적은 농어촌 및 산촌 지역은 인구수만을 기준으로 삼으면 지역 대표성이 선거구 획정에 반영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지역구선거에서는 지역 고유의 특성과 현안이 대표 선출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선거구 획정에 있어 지역 대표성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날 이 심의관은 도시로 인구가 유입되며 지방인구의 감소가 가속화되는 현실에서 인구수만을 편향된 기준으로 적용한다면 농촌 지역의 선거구가 도시 지역에 비해 지나치게 확대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심의관은 “미국의 하원 선거구 획정 과정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주에서 인구수의 균등이라는 요소 이외에도 선거구의 지리적 인접성과 조밀성, 연방헌법 및 선거법과의 합치성, 행정구역과의 조응성, 지역 이익의 대표성, 정치적 경쟁성, 상원선거구에 대한 귀속성, 정당 및 선거 관련 자료의 배제성 등을 일반적인 획정 원칙으로 규정한다”고 전했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에 대해 “지난 2012년 2월 27일 통과된 공직선거법 선거구획정안이 세종특별자치시의 단독선거구 설치를 결정한 것은 이러한 선거구 획정 기준의 다면적 고려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어 “세종특별자치시의 경우 선거구 획정의 인구기준 하한선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법적·행정적 위상과 지역 대표성 등의 측면을 고려할 때 독립선거구로 설치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 심의관은 “현행 선거구 획정 방식이 인구편차 3대 1을 기준으로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개별 선거구 간 또는 광역시·도 간 인구편차의 균형이 보장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라며 “인구 상하한선에 집중돼 있는 경계선거구들은 인구편차 기준에 부합하지만 개별 선거구 간 또는 광역시·도 간 인구편차는 심각한 불균형을 보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인구편차 기준과는 별도로 선거구 평균 인구수와 행정구역과의 조응성 등의 기준을 보완적으로 고려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개별 선거구 간 인구격차가 전국 단위에서 보면 허용범위 내에 있어도 광역시·도 간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평했다.

이날 이 심의관은 한국이 미국이나 독일 등과 같이 1대 1, 1.5대 1, 2대 1 수준으로 갈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양원제를 취하고 있는 나라는 지역대표성이 기본적으로 보장돼 있다”며 “우리처럼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바로 인구 대표성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려고 하면 매우 혼란스러워진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