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칼럼] 가을단풍 제대로 즐기는 법
2014-10-13 23:50
흔히 ‘단풍’하면 울긋불긋한 등산복 차림의 수많은 탐방객과 어우러진 내장산 단풍이나 기암절벽, 폭포사이의 화려한 설악산 단풍을 떠올린다. 밀집도나 화려함에서야 내장산이나 설악산 단풍에 비할 바 아니지만 지리산 피아골 단풍도 좋다.
피아골에 있는 연곡사에서 부처님께 인사드린 후 주능선을 향해 한발 한발 옮기다보면 저마다의 색깔로 다가오는 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 본격적인 산행이 곤란한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라면 칠선계곡을 따라 선녀탕에 다다른 지점에서 깊은 숲을 바라보거나 백무동 초입에서 지리산 계곡의 물소리와 단풍에 몸과 마음을 적셔보는 것도 정상에 이르는 산행에 버금가는 기쁨이다.
우리 눈에 비친 아름다운 단풍은 사실상 나무들이 겨울을 맞이할 채비를 하는 데서 비롯된다. 나무들은 가을에 기온과 습도가 낮아지면 자연스레 광합성을 멈춘다.
나무들은 기온이 보통 5℃ 이하로 내려가는 날씨가 지속되면 잎자루 끝에 ‘떨켜’를 만들어 양분의 이동을 중단하고 엽록소를 분해하게 되는데 이때 ‘안토시안’이 만들어지는 나무는 붉은색으로, ‘크산토필’이나 ‘카로티노이드’와 같은 색소를 가진 나무는 노란색으로 단풍이 든다.
단풍을 이야기 할 때 전체의 80%가 물들면 절정이라고 하는데 이번 주말이면 설악산이 절정에 이를 것이고 28일은 북한산,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이 많은 지리산은 24일, 내장산은 다음달 7일 단풍이 절정일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단풍철이면 국립공원을 찾는 탐방객은 1400만 명이나 되지만 대자연을 여유롭게 즐기는 낭만적인 산행, 자연과 교감하며 생각에 잠기는 여행은 흔하지 않다. 월요일 아침 출근길 러시아워처럼 한 때 한 곳에 모두 모여 정상 정복을 향해 총 돌격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우리의 가을산행 모습이다.
몇 시간 만에 주파했다는 무용담은 많아도 어떤 사연과 사색이 있었다는 추억담은 많지 않다. 게다가 스스로가 자연에 얼마나 많은 부담을 주고 왔는지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사람은 더욱 적다. 산행자는 뒤를 돌아다보지 않지만, 남아있는 자연은 전후가 확연히 다르다.
깊게 패인 등산로, 확산되는 샛길, 근절되지 않는 흡연과 쓰레기 버리기, 야생동물 서식을 방해하는 야간산행과 열매채취 등 흔적이 남게 된다. 때문에 가을 단풍을 온전히 즐기려면 좋은 동반자뿐만 아니라 자연까지 챙길 수 있는 여유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꼭 등산만이 아니더라도 국립공원 단풍을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어린 자녀나 어르신과 함께 하는 가족단위 탐방이라면 국립공원에 위치한 명찰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지리산 화엄사와 가야산 해인사, 속리산 법주사처럼 이름있는 사찰들은 많은 문화재들이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삼고 있어 자연과 문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또한 산꼭대기 정상을 밟지 않더라도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2~3시간 정도의 트레킹이나 둘레길을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완연한 가을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한 번은 다 바치고 다시 겨울나무로 서있는 벗들에게…’라며 첫 마음을 노래한 박노해 시인도 자신을 충실히 바치고 말없이 서있는 나무들에게서 아름다운 벗의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어느덧 10월 중순, 그동안 번잡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신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도 모른 채 바쁘게 살아왔다면 이 가을 계곡 물소리와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몸과 마음을 청량하게 비워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