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걱정 끔찍이… 남경필 기고문 어떤 내용이길래

2014-08-18 10:01
아들 걱정 끔찍이… 남경필 기고문 어떤 내용이길래

아주경제 장성환 기자 =


오늘의 대한민국을 읽는 5대 키워드


프란치스코 교황, 오늘 명동성당 평화미사 마치고 출국

지난 14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끝으로 4박5일간의 한국 일정을 모두 마치고 출국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오전 명동성당에서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고 한반도 평화에 관한 메시지를 발표할 예정이다.
미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밀양 송전탑 건설 예정지역 주민, 용산 참사 피해자 등 다양한 형태의 상처로 인해 평화와 화해가 필요한 인사들이 초청받았다.



軍 자살자 10명 중 4명이 관심사병… 육군이 97%

군 복무 중 자살한 사병 가운데 10명 중 4명이 관심사병으로 드러나면서 군 당국의 관심사병에 대한 관리가 총체적으로 부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법제사법위원회 서영교 의원실이 국방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과 2013년 두 해 동안 자살한 사병 83명 가운데 관심사병은 40%인 33명에 달했다.
연도별로는 2012년 자살한 사병 38명 가운데 15명, 지난해 자살한 사병 45명 중 18명이 각각 관심사병으로 지정된 병사들이었다. 이들 중 1명(공군)을 제외한 나머지 32명(97%)은 육군 소속이었다.



'220㎜ 물폭탄' 전북 비 피해 속출… 호우특보 12곳

전북 고창에 220㎜가 넘는 비가 쏟아지는 등 전북지역에 폭우가 내려 비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전북소방본부에 따르면 220㎜가 넘는 비가 내린 고창군 흥덕면의 한 주택이 물에 잠겼고, 정읍시 소성면 기린리의 오리농장도 침수 피해를 입었다.
기상대는 오전 3시 40분을 기해 고창과 정읍에 호우경보를 내린 데 이어 오전 6시 40분 완주와 임실 등에도 호우경보를 발효해 전북 지역에는 모두 12개 시·군에 호우특보가 내려졌다.



기준금리 인하로 780만명 이자부담 年 11만원 감소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가계 부문의 변동금리 대출자의 평균 이자부담이 연간 11만4000원 줄어들고 기업은 95만5000원 감소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금융당국은 금리인하 효과가 가계와 기업의 대출금리 인하로 연결되도록 즉시 대출금리에 반영하라고 시중은행에 당부했다.
금융감독원은 한은 금통위가 지난 14일 기준금리를 2.50%에서 2.25%로 0.25% 포인트 낮추면서 가계와 기업의 은행대출 관련 이자부담이 연간 1조8000억원 감소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출처:YTN 방송화면 캡처]




아들 걱정 끔찍이… 남경필 기고문 어떤 내용이길래


장남의 후임병 가혹행위 사실이 확인된 남경필 경기지사가 군에 보낸 두 아들을 걱정하는 내용의 기고문을 모 일간지에 게재, 논란이 되고 있다.
기고문은 8월 15일자에 실렸는데, 남 지사는 이틀 앞선 13일 장남이 폭행·성추행 혐의로 조사받는다는 사실을 군으로부터 연락받았다.
남 지사는 15일자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의 마음' 시를 소개한 뒤 두 아들을 군에 보낸 소회를 전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기고문은 장남의 일을 군에서 통보받기 하루 전인 지난 12일 일간지에 보낸 것"이라며 "기고문에 나오는 병장은 차남이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15일 기고문이 일간지에 실리기 전 남 지사가 기고를 철회하지 않은 데 대해서는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일간지에 실린 남경필 지사의 기고문은 김현승 시인의 시 '아버지의 마음' 중에서 일부를 인용했다.

"자식 걱정에 밤잠 못 이루는 이 시대 모든 아버지의 심정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들 둘을 군대에 보내놓고 선임병사에게 매는 맞지 않는지, 전전긍긍했다. 병장이 된 지금은 오히려 가해자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좌불안석이다. 며칠 전 휴가 나온 둘째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걱정 붙들어 매시란다."

이어 "돌이켜보면 나는 효자는 아니었다. 경영학 배우러 미국에 유학 갔다가 아버지 임종도 못 지켰다. 갑작스러운 부음에 황망히 귀국했을 때, 영정 속 아버지는 근엄한 얼굴로 나를 맞아주셨다. 늘 '최선을 다해라'며 어깨를 두드려 주시던 모습이 눈앞을 스쳤다."

"무뚝뚝할 정도로 묵묵했던 아버지였기에, 장남인 내가 대를 이어 정치인이 되기를 바라셨다는 어머니 말씀에 자책감과 함께 더욱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나 또한 두 아들을 키우며 아버지의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조금씩, 한 걸음씩 이 땅을 희망과 행복의 나라로 발전시켜 나가는 바탕이 아버지의 속 깊은 마음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아버지의 힘이 우리 사회의 근본 힘임을 믿는다"라고 소회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