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한국경제, 키를 잡아라] 공공기관 정상화를 위해 낙하산 인사 금지해야

2014-07-07 23:50
"낙하산 인사문제 해결안되면 반쪽짜리 정상화"

양대노총 '공공기관 정상화대책' 재검토 촉구 [사진=연합뉴스]

아주경제 노승길 기자 = "과거에도 공공기관 개혁을 시도했었지만 번번이 좌절됐던 이유를 면밀히 분석해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정상화 개혁을 이뤄내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공공기관 정상화 워크숍에서 밝힌 신념이다. 박 대통령은 역대 정부가 새로 들어설 때마다 약속이나 한 듯 공공기관 개혁을 시도했지만 노조의 반발 등에 부딪혀 결국 완벽히 이뤄내지 못한 것을 이번에는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한국경제 체질개선을 모토로 시작한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은 지난해 12월에 발표된 이후 그동안 점차 공공기관 의 숨통을 조여왔다. 정상화 대책의 핵심은 과다부채 해소와 방만경영 개선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같은 공공기관 정상화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의지는 3개월 만에 거센 풍파를 만나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하반기 공무원 인사시즌이 다가오면서 산하기관으로 이동하지 못하는 공직자들의 불만이 노골적으로 외부에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정치권의 개입으로 인한 끊이지 않는 낙하산 인사 논란이 공직사회의 불만은 물론 노조의 강한 반발을 가져왔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 정상화를 통한 경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과다부채와 방만경영 척결 못지 않게 낙하산 인사 관행을 개선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은)단기적인 대책 같다. 국민들은 근본적인 개혁을 원한다. 낙하산 인사 문제나 공공기관의 청년 고용 문제 등이 언급되지 않아 아쉽다”며 “낙하산을 막고 전문성을 가진 임원을 뽑는 것은 장기 과제로 정착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역시 “공공기관 문제의 키워드는 부채, 방만, 낙하산”이라며 “이번 대책에서는 셋 중 하나가 빠진 게 아쉽다”고 지적했다.

◆ 공공기관 정상화 어디까지 왔나

정부는 2017년까지 대부분 공공기관의 재무구조를 이자보상배율 1 이상, 부채비율 200% 미만으로 개선하겠다는 목표 아래 41개 기관의 확정된 부채 감축 정상화 계획과 295개 기관의 방만 경영 정상화 계획을 세웠다.

정부는 사업 조정과 자산 매각 및 경비 절감으로 부채 감축을, 복리후생을 줄여 방만경영 개선을 이룬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히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1기 경제팀은 성과급 삭감 등의 채찍과 중점관리기관 조기해제라는 당근으로 개혁을 추진했다.

지난달 말 기준 39개의 방만경영 중점관리기관 중 부산항만공사, 한국투자공사, 무역보험공사, 그랜드코리아레저, 방송광고진흥공사, 예탁결제원, 가스기술공사, 한국거래소, 석탄공사, 예금보험공사, 대한주택보증, 지역난방공사, 원자력안전기술원, 철도시설공단, 수출입은행 등 15개 기관이 노사협약을 타결했다.

정부는 계획대로 작업이 이행되면 2017년 공공기관 부채비율은 187%로 낮아지고 1인당 복리후생비는 평균 71만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 노사합의 난항에 낙하산 인사 문제까지…정부 '진퇴양난'

정부의 계획과는 달리 공공기관 정상화의 길은 아직도 갈 길이 여전히 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방만 경영과 과다 부채 중점관리기관의 정상화 이행 실적에 대한 정부의 중간평가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중점관리기관 39곳 중 24곳은 방만경영 정상화 이행 계획을 확정 짓지 못하고 있다.

부채 감축은 구조조정과 자산매각 등 경영으로 풀어갈 수 있지만 방만경영은 노사 협력이 필수다.

특히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공공부문 공동대책위원회가 복리후생비 삭감, 퇴직금 산정 개선 등의 문제로 정부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공대위는 정상화 대책 관련 사항은 교섭을 하지 않기로 기준을 잡고 7월 말 쟁의권 확보, 8월 총파업 투쟁을 예고해 합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노조는 정부가 정상화 계획이 낙하산 인사로 인해 변질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계획은 정부의 낙하산 인사와 무리한 재정사업 강요 등으로 발생한 것"이라며 "이를 놔두고 공공기관 직원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정상화 계획은 말 그대로 '가짜' 정상화 계획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역시 "공공기관 정상화를 위해서는 '관피아 낙하산' 관행부터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낙하산 인사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공공기관 정상화는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정부도 이른바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을 외치며 이에 동조하고는 있지만 내부적으로 진퇴양난에 빠진 상태다. 기획재정부의 경우 가뜩이나 인사 적체가 심각한데 세월호 참사로 '관피아'문제가 대두되면서 산하기관이나 협회로 나갈 길이 막혀 인사적체가 심각한 수준이다. 

실제로 현직 기획재정부의 1급 관료는 해외 행을 결정했다. 원래 1급이 갈만한 자리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없었기에 그나마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다.

◆2기 경제팀 개혁 가속도에 범위까지 확대

최경환 후보자가 임명된 이후 공공기관 개혁의 속도와 방향은 더 빠르고 더 넓게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최 후보자는 지난 2월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가 대대적 규제완화와 공기업 개혁으로 우리 경제를 혁신하려 하는 것은 정확한 처방"이라며 "국민의 기업인 공기업 직원으로서 공복(公僕)의식을 망각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최 후보자는 또 정부 정책의 문제점도 짚으며 "정부는 공기업 부채가 증가한 원인을 상세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정부와 노조, 경영인들이 각각 어디까지 책임이 있는지 분명히 가려 방만경영을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공기관 노조가 발목을 잡고 있지만 최 후보자가 공공기관 정상화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어 개혁조치가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세월호 참사 이전 공기업 개혁은 부채 축소와 방만 경영 개선이 주 과제였으나 앞으로는 낙하산 인사와 전관예우, 관공(官公) 유착 등 정부와 공기업 전반의 잘못된 관행까지 개혁 대상에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후 불거진 관피아 개혁 의지도 공공개혁과 일직선 상에 있다"며 "낙하산 근절 같은 인적 쇄신을 통해 정부부처, 공기업에 대한 개혁의 강도가 한층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공기관 개혁의 성공은 표류하는 한국경제가 제대로 된 항해로 돌아갈 수 있는 등대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