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하락, 내수냐 수출이냐…정부는 ‘갈팡질팡’

2014-06-11 14:44
세월호·지방선거·개각 등으로 시장 개입 시점 놓쳐
원·달러 1000원선 붕괴 초읽기…“좀 더 지켜봐야”

아주경제 배군득 기자 = 정부가 경제정책 우선순위를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하락하자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000원선에 근접하면서 정부는 내수와 수출 등 어느 쪽에 먼저 손을 대야할지 갈팡질팡하고 있다.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1000원선이 붕괴될 경우 두 경제지표에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서다.

세월호 사건 이후 위축된 내수를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환율을 900원선 후반까지 관망하겠다는 입장과 더 이상 떨어질 경우 우리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마저도 적잖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의견이 정부 내부에서도 팽팽하게 맞서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로서도 어느 한 곳 시원하게 대안을 제시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현재로서는 좀 더 지켜보자는 쪽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부가 세월호 사고와 지방선거, 개각 등으로 시장개입 시점을 놓치면서 환율 하락을 방치했다는 견해도 나온다. 환율 하락을 더 방치 할 경우 수출기업들의 타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 환율 떨어지는데…정부 개입 언제쯤

시장에서는 정부가 환율 하락의 마지노선을 어디까지 보느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당장 1000원선 붕괴는 어쩔 수 없더라도 정부가 판단하는 위험수위가 얼마인지에 시선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900원 중후반까지 시장개입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내수시장이 회복되면 환율하락이 반등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분석인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세월호 사고 이후 대부분 경제정책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4~5월 경제정책은 마비 상태에 놓였고 지방선거와 개각 등이 맞물리면서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일련의 상황이 정부가 환율 하락에도 시장 개입을 적극적으로 할 수 없었던 표면적 결과다. 내부적으로는 침체된 내수시장을 회복하기 위한 의도적 관망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세월호 참사에도 국내 경기가 전반적으로 개선세를 이어가고 있고 세계 경제 역시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점진적 개선 흐름이라는 판단이다.

지난해 경상수지가 80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상황이라 원화 절상을 막을 명분도 마땅치 않다는 게 정부측의 판단이다.

정부 한 고위 관계자는 “환율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 정부 재정상황이나 거시건정성을 볼 때 900원선 후반까지는 견딜 내성이 있다고 본다”며 “수출기업들도 예전과 다르게 환위험에 대처하는 능력이 좋아졌다는 판단이다. 정부의 시장개입은 늦출수록 좋다”고 말했다.

◆ 환율 900원대, 정말 괜찮은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시장 개입 시점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이미 대다수 전문가들이 1000원선 붕괴를 전망한 상황에서 향후 이슈는 언제 정부가 개입하느냐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대부분 아직까지 정부개입이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높은 가운데 수출과 내수 모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은 “현재 달러화가 국내로 유입할 수 있는 여건이 과거 세자릿수 환율을 보였던 2006∼2007년보다 양호하다”고 전제한 뒤 “원·달러 환율 1000원 붕괴는 수출경쟁력 약화를 가져오고 관광수지 적자폭을 확대시켜 내수 경기에도 부담을 줄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미국 재무부가 의회 보고서에서 한국정부 외환시장 개입 문제를 언급하는 등 국제사회의 외환시장 개입 자제 요구 분위기를 고려해 외환당국 정책수단은 제한될 것으로 점쳐진다.

금융시장 한 전문가는 “정부가 당장 시장개입을 서두르기보다 환율 하락시 긍정적인 정책을 내놓는 게 중요하다”며 “무역수지 흑자 등 환율 하락으로 인한 수출 타격을 어느 정도 상쇄할 능력이 있는 만큼 정부 개입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추경호 기획재정부 1차관은 “환율이 약세를 보이지만 현재 국내 외화유동성 상황은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외채구조 개선, 재정건전성 유지 등 대외건전성 제고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