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번한 지하철 사고, 주범은 ‘신호기’…교체ㆍ관리 대책 시급

2014-05-11 14:26
지하철 2호선 추돌 및 1호선 역주행 모두 신호기 관련

최근 잇따라 발생하는 지하철 사고의 '주범'으로 지하철 속도와 정지, 진행 여부를 기관사에게 알리는 신호기 오류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 방송화면 캡쳐]



아주경제 권이상ㆍ이명철 기자 =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추돌사고 6일만에 지하철 1호선이 역주행하는 아찔한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이번에도 사고원인은 ‘신호기’ 오작동이었다.

지난 8일 오후 2시35분께 서울 용산에서 출발한 1호선 동인천행 전동차는 경기도 부천 송내역과 부개역 사이에서 신호기 고장으로 300m정도 후진을 했다. 부개역 진입 전 ‘진행’ 신호를 표시해야 할 신호기가 오작동으로 ‘정지’ 신호를 표시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신호기가 정상 작동되면서 다시 ‘진행’ 신호가 나타났지만, 열차는 오르막길 선로에 멈춘 상태라 후진해 탄력을 확보한 뒤 전진해야 했다.

지난 2일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추돌사고 역시 철도 상황을 미리 알려주는 신호기가 고장나 발생한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났다. 상왕십리역에 진입하기 전 2개의 신호기 색깔이 잘못 표시된 것이다.
 

지하철 등 신호등 역활을 하는 열차 신호기 모습. [이미지제공=서울메트로]

8일 벌어진 1호선 역주행은 신호기 내 삽입된 카드 불량이 원인인 것으로 결론 지어졌다. 

코레일 관계자는 “자체조사 결과 신호기 내에 주파수를 수신하는 카드 3개 중 1개의 기능이 현저히 떨어져 정지신호 현시가 발생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며 “주파수 수신카드는 기준치보다 매우 낮은 수치로 측정돼 이를 즉각 교체해 정상 작동토록 했다”고 전했다.

신호기는 지하철과 전동차, 열차 등을 통제하는 신호등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역과 역사이 200미터마다 설치돼 신호기 색깔로 열차 간격이 조절된다.

기관사들은 이 신호기를 보며 앞차의 위치나 상태 등을 파악해 운행 속도와 정지 여부 등을 결정한다.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현재 서울 지하철 1∼4호선에 설치된 신호기 890여개 가운데 지난 사고가 발생한 2호선 구간에 설치된 신호기는 643개에 달한다.

코레일의 신호기는 코레일이 운영하는 수도권 전철(장항∙경인∙경원∙중앙∙안산과천∙분당∙일산∙경의∙경춘선)과 일반철도 등에 적용됐다. 단 고속철도(KTX)는 시속 300km 내외로 다니는 특성상 열차 내 차단신호가 장착됐다.

그런데 이런 신호기는 허술한 관리체계로 유지되고 있다.

서울메트로는 신호기 시스템 정밀검사 주기를 1년에 2번으로 정해놓았다. 물론 기관사가 단순 오작동을 체크하는 일상점검은 매일 열차운행 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일상점검이 아닌 전문가가 시스템 전반을 확인하는 월상점검의 경우 전동차는 2개월에 한 번, 신호기는 6개월에 한 번씩 일괄조사가 이뤄진다.

코레일은 신호기를 포함한 선로 전환기 등 신호설비에 대한 점검을 자체 인력으로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철도의 유지 보수를 철도 운영기관인 코레일에 위임∙위탁한 국토부는 철도안전감독관을 파견해 1년에 3~4차례의 정기점검과 수시점검을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신호기 담당 철도안전감독관은 단 1명에 그쳐 사실상 세세한 관리 감독은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신호기 주요 관리는 물론 부품을 외주업체에 의존하고 있는 점도 지적을 받고 있다.

지하철 2호선의 경우 신호기 전원장치 등은 철도 신호제어 시스템 전문업체인 유경제어가 맡고 있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신호기 설치, 개량공사 등은 때마다 외부업체에게 발주를 내 관리∙보수한다”며 “대부분 국산부품으로 구성된 신호기 고장이 자주 있는 편이 아니고, 문제 발생 시 바로 교체하기 때문에 노후화와 상관없이 일정한 교체주기를 두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메트로는 이번과 같은 신호기 오작동으로 인한 지하철 사고가 잦은 편은 아니라고 항변했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신호기 작동으로 지하철 연착 등의 상황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종종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는 대형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정상적 시스템 작동”이라며 신호기 고장으로 일어난 추돌사고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코레일은 이번 신호기 장애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단 서울메트로가 신호기 오작동으로 사고가 난 반면 1호선의 경우 카드 불량에 따라 신호기가 정상적으로 정지 신호를 나타낸 것으로 신호기 장애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국토부 철도기술안전과 관계자는 “신호기 시스템 내부에서 일시적인 장애가 발생했다는 것으로 보면 된다”며 “이 장애로 정지 신호가 정상적으로 켜졌고 장애 원인에 대해서는 현재 조사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지하철 신호기 오류로 인한 사고피해는 다른 원인의 열차사고보다 피해가 크다.

철도기술연구원과 원자력연구원, 경희대, 아주대 등의 연구진은 공동 작성한 ‘철도사고 위험도 분석 및 평가체계 구축’ 보고서를 통해 신호 문제로 열차 운행 도중 발생하는 충돌 사고가 다른 유형의 사고보다 큰 피해를 낳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를 계기로 서울시와 서울메트로는 지난 9일 서울지하철 운영시스템 10대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개선방안의 골자는 지하철 신호기 고장 등으로 인한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2022년까지 8000여억원을 들여 노후 차량을 교체하고 1∼9호선 관제센터를 하나로 통합한다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지하철 운영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지만 안주해선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며 “사고 예방을 위해 단기, 중ㆍ장기 개선 계획을 체계적으로 실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코레일은 경부선과 장항선 등 다른 선로 신호기에 대한 점검을 진행 중이다. 오는 12일까지 점검 결과를 정리한 후 이에 대한 대책도 수립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