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금융시대' 오나…은행권 '기술값' 투자 시동

2014-05-11 08:00

아주경제 박선미 기자 = 담보물건이 아닌 기술력을 담보삼아 자금을 지원하는 '지적재산권(IP)금융'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은행들은 기술력을 갖춘 강소기업의 '돈맥경화'를 뚫기 위해 IP금융과 관련된 조직을 신설하고, 실제 자금 지원으로 연결하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올 들어 'IP사업화자금대출'을 통해 총 7개 기업에 50억원을 지원했다. 총 500억원 규모로 조성된 이 대출의 1호로 선정된 기업은 40년의 업력을 보유한 파세코다. 파세코에 대한 IP사업화자금대출은 10억원이다.

파세코는 1974년 설립된 회사로, 현재 연소 난방기기와 업소용·빌트인 주방기기를 주로 생산하고 있다. 석유난로와 가스레인지 등을 국내는 물론 미국, 중동, 러시아 등에 수출해 지난해 127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번 대출은 파세코의 '과열 방지센서를 갖춘 가스레인지의 실드 버너' 특허가 바탕이 됐다. 정의혁 기업은행 기술금융부 팀장은 "가스 분출 압력을 조절, 불꽃이 나오는 구멍에서 화력을 균일하고 안정적으로 유지해 연소 성능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IP금융은 부동산과 같은 유형의 담보 대신 기업의 기술력을 담보로 한다. 기업은행 기술금융부의 사전평가를 거쳐 선정된 기업에 대해 한국발명진흥회가 지식재산권 가치평가를 실시한다. 이를 통해 기술력이 입증되면 대출이 바로 집행되는 구조다. 기업은행의 경우 건당 1500만원에 달하는 평가 수수료를 특허청과 함께 전액 부담한다.

기업은행은 현재 IP사업화자금 대출과 관련해 40개 기업을 상대로 상담과 평가를 진행 중이다.

앞서 산업은행도 IP담보대출 상품을 출시한 이후 지난해에만 156억원의 실적을 거뒀다. 주로 기능성 섬유 원단과 타이어첨가제, 생체연령 측정기술, 스마트기기용 소프트웨어 기술 등의 기술을 담보로 대출을 해줬다.

여세를 몰아 산업은행은 올해 IP담보대출 지원 규모를 300억원으로 늘렸다. 대출범위도 특허권 위주에서 상표권 등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수출입은행 역시 IP신용대출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8월 IP수출자금 제도를 도입한 이래 의류 브랜드 상표권, 게임 판권, 드라마 저작권 등을 대상으로 750억원 가량을 대출해줬다.

국책은행 외에 시중은행들도 IP금융 관련작업을 진행 중이다. 신한은행은 기술평가 전담부서인 산업기술평가팀을 신설, 운영하고 있다. 또 지적재산보유기업에 대한 신용대출 확대 등을 협의 중이다.

지난해 6월에 출시한 '기술형창업지원대출'의 경우 4월 말 기준으로 3900억원의 실적을 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이 중 상당 금액이 담보없이 취급됐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도 지난해 12월 상품개발부서 내에 창조금융팀을 신설한 바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현재 기술금융 지원을 위한 상품 출시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은행권에서 창조금융의 일환인 IP금융이 본격화되기 시작했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이명박 정부 당시 추진됐던 '녹색금융'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창조금융은 무형인 기술값으로 대출해주라는 것인데, 사실상 기술감정 능력 등을 보완해야 하는 곳이 적지 않다"며 "시류에 따라 움직이기에는 은행 입장에서도 부담이 큰데다 자칫 녹색금융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