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계열사 인수하면 홍역 치룬 재벌, 그들이 놓친 것은?
2014-04-29 16:12
포스코가 지난 2010년 5월 인수한 종합무역상사 대우인터내셔널에 대한 매각을 검토중이라는 소식에 대우그룹 임원 출신 인사들은 한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옛 ‘대우’ 계열사들은 말 그대로 최대 이슈다.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대우인터내셔널, 대우증권, 대우자동차(현 한국GM),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등은 그룹에서 쪼개진 후 채권단 관리 신세를 지고 있지만 각 업종에서 1, 2위를 다투는 경쟁력을 보유한 기업이다. 재계는 이들 옛 대우 계열사 중 어느 것 한 곳이라도 잡으면 해당 분야에서 선두를 치고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며 인수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들 대우 계열사들은 ‘독배’였다.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중 하나인 미국 제너럴 모터스(GM)는 대우자동차를 인수 후 2002년 ‘GM대우’라는 새 사명으로 국내시장에 진출했다. 이런 GM이 2009년 파산하면서 GM대우는 생존의 기로에 몰렸으나 새로 출범한 ‘뉴GM’에 포함되면서 위기를 모면했다. ‘대우’를 뗀 한국GM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고서 안정을 찾았다.
그래도 한국GM은 다행인 편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 인수 우선협상 대상자에 선정돼 새 주인이 됐다. 하지만 무리한 인수로 인해 그룹 전체에 유동성이 악화되면서 3년도 채 안돼 2009년 다시 매물로 나와 채권단인 산업은행의 소유가 됐다.
대우조선해양은 2008년 한화그룹이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인수가격은 6조5000억원.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화는 2009년 1월 인수를 포기했다. 한화는 산업은행에 납부한 이행보증금 3150억원을 돌려받지 못해 소송중이다. 또한 인수 포기 후 총수 일가가 관련된 갖가지 사태에 직면하며 그룹 경영이 공백상태에까지 몰리는 등의 수난을 겪었다. 역시 산업은행 산하에 있는 대우증권은 증권업계 불황으로 아예 매각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흔히들 대우 계열사를 인수한 뒤 홍역을 치룬 재벌들이 ‘승자의 저주’에 빠졌다고 하는데, 이제 그 분위기가 포스코에도 감지되고 있다. 매각을 검토하는 표면적인 이유로 대우인터내셜 인수를 통해 기대했던 시너지 효과는 미흡하고 3자간 거래 중심의 사업 특성상 높은 부채비율이 포스코의 연결 부채 비율로 전가되면서 재무구조를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M&A 전담팀을 두고 인수 후 효과에 대해 누구보다 치밀하게 계산하는 포스코가 고작 이런 이유로 4년 만에 회사를 다시 내놓는다는 것은 납득이 가질 않는다.
그보다는 대우 인터내셔널을 포스코의 울타리 안으로 동화시키지 못한 채 겉돌게 만든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보인다. M&A에 있어 중요한 인수기업과 피인수기업간 물리적·화학적 융합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금호아시아나의 대우건설 인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인수 절차를 마무리 한 뒤 2006년 12월 28일 서울역 앞 대우센터에서 열린 CI 점등식은 박삼구 회장과 금호아시아나그룹 임직원이 대우건설 임직원과 첫 대면한 공식적인 자리였다. 이날 사회자는 행사 도중 “순국선열과 창업회장(고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에 대한 묵념”을 요청했다. 일순간 대우건설 임직원들은 고개를 쳐들었다. 대우그룹 시절 김우중 회장과 함께 매월 첫째주 월례 조회를 할 때 그들은 “순국선열과 산업역군을 위한 묵념”만 했다. 하루 전 까지만 해도 그들의 창업주는 김 회장이었고, 김 회장은 지금도 생존해 있다. 그런데 다른 창업주에게 묵념을 하라니. 이 한마디는 금호아시아나와 대우건설은 가족이 될 수 없을 것임을 시사하는 중대한 실수였다.
더군다나 인수한 지 1년도 안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그룹의 모태인 대우센터를 매각하는, 불길에 기름을 부은 사고를 터뜨렸다. 인수 후 인재 유출이 심각했던 대우건설은 추가로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고, 남아 있는 사람들의 불만도 수면아래에서 점점 더 커졌다. 급기야 2009년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계열 분리가 결정된 날, 대우건설 임직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양복 한쪽에 달고 다니던 금호아시아나 배지를 떼어버렸다. “속 시원하다”는 그들의 말에 그동안 쌓였던 모든 불만이 담겨 있었다.
이 사례를 학습한 정준양 당시 포스코 회장은 대우인터내셔널 새 식구들에게 “대우의 문화를 존중하고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해 주겠다”며 포스코 본사 파견인력도 최소한으로 했다. 최고경영자와 재무 담당 임원 및 간부급 직원 수명 정도였다.
하지만 대우인터내셔널은 포스코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색 다른 업체였다. 상명하달식의 체계를 앞세우는 포스코 문화는 해외를 자유로이 뛰어다니며 필요하다면 말단 직원도 중대한 결정을 하는 대우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대우인터내셔널로 파견되는 포스코 직원의 파견 수가 늘어났지만 대우인터내셔널 사람들은 이를 구속이라 여기고 반감을 드러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심지어 대우인터내셔널 출신 임원에게만 별도로 보고하고, 포스코 인사에게는 비밀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정말로 매각을 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통제되지 않는 대우인터내셔널 임직원들에게 ‘너희들을 버릴 수도 있다’는 압박용 카드로 내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비록 매물로 나왔지만 이들 옛 대우 계열사들은 과거 한국 재계를 호령했다는 자존심과 함께 지금 독립을 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또한 대우그룹의 응집력과 차별화 된 문화는 그룹 해체 후에도 대우세계경영연구회와 대우인회 등을 발족시켜 모임을 갖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사라진 업체 임직원들이 OB 모임을 만든 것은 대우가 유일하다. 대우 출신 OB들은 매년 이들이 여는 행사에 참석하고 있으며, 김우중 전 회장을 보기 위해 모인다. 새 주인에게 넘어간 회사들은 화환을 보낸다. 또한 이들은 여전히 김 전 회장의 명예회복을 위해 뛰고 있다.
따라서 대우 문화에 정통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이러한 대우그룹 계열사들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은 최소한 김 전 회장에 버금가는 카리스마를 갖춘 인사여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