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스 2014] 오거스타내셔널GC 라운드 체험기

2014-04-15 14:06
마스터스대회 끝난 직후 ‘꿈의 라운드’…세계에서 가장 빠른 그린에 휘둘렸으나 ‘골프 거장’들 자취 몸으로 느껴


미국시간으로 4월13일(일) 밤. 남자골프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골프토너먼트가 막바지로 치달을 즈음 ‘낭보’가 들렸다. 오거스타내셔널GC측이 매년 기자들에게 배려하는 ‘라운드 체험’ 명단에 이름이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 때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라운드 당일인 월요일 날씨가 흐리다는 예보를 듣고는 수시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고대하던 ‘오거스타내셔널GC에서의 라운드라니…!’ 구력이 꽤 오래된 시니어 골퍼들도 라운드 전날밤에는 설렌다고 했던가. 딱 그런 마음이었다.

최고권위를 지닌 메이저대회 개최코스에서, 바로 하루 전 ‘골프 명인’들이 열전을 벌였던 그 곳에서 라운드하는 행운을 얻은 기자는 14일 오전 일행과 함께 오거스타내셔널GC 클럽하우스 뒤의 그 유명한 ‘매그놀리아 레인’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날도 화창해 그 순간만큼은 회원이라도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잭 니클로스, 아놀드 파머, 게리 플레이어, 타이거 우즈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역대 챔피언들이 사용하는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하루전 버바 왓슨, 최경주, 조던 스피스, 프레드 커플스, 애덤 스콧 등 톱랭커들이 그랬던 것처럼 드라이빙 레인지로 이동해 몸을 풀었다. 바닥은 천연잔디였고 쌓아둔 볼은 골퍼들이 선호하는 브랜드였다. 캐디도 골퍼 1인당 1명씩 배속됐다.

마침내 오전 11시20분. 동반플레이어 3명(한국기자 2명, 일본 기자 1명)과 함께 1번홀 티잉그라운드에 올라서자 골프장 관계자들이 나와 축하해줬다. 티잉 그라운드 위치만 달랐을뿐 핀위치나 코스셋업 등은 대회 때와 똑같았다. 아마추어들은 멤버티(전장 6365야드)를 사용했다. 챔피언티(7435야드)보다 1070야드가 짧았으나 만만치 않은 길이다.

드디어 동반자 가운데 둘째로 첫 홀 티샷을 했다. 파머·니클로스·플레이어 등 ‘빅3’의 시구와 같은 위엄은 없었으나 오거스타내셔널GC에서 첫 샷이었던만큼 살짝 긴장됐다. 다행히 볼은 200야드 정도 날아가 페어웨이에 안착했고 주위에 있던 10여명의 ‘갤러리’들은 박수와 환호로써 축하해주었다. 오거스타내셔널GC에서 첫 라운드는 그렇게 시작됐다.

처음 밟아보는 유리판같은 그린=올해 그린 잔디 길이는 0.3㎝, 그린 스피드는 14피트라고 발표됐지만 그린을 롤러로 다져놓으니 풀잎은 거의 보이지 않고 맨땅처럼 생겼다. 경사가 심한 곳에서는 살짝 대기만 했는데도 볼은 저만큼 가버린다. 이처럼 빠른 그린은 처음이다.

어느 홀 할 것없이 그린은 언듈레이션이 많았고 그마저도 단단하게 다져놓았다. 특히 3,5,6,9,10,14,16번홀 그린의 스피드는 하루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이날 3퍼트는 두 차례 뿐이었으나 빠르리라고 지레 겁먹고 놓친 퍼트가 5∼6개는 됐다.

‘아멘 코너’(11∼13번홀)는 역시 어려워= 11번홀(파4) 멤버티는 챔피언티보다 앞으로 105야드를 빼 전장이 400야드다. 그런데도 결코 만만치 않은 길이다. 올해 대회에서는 18개 홀 가운데 최고난도 홀로 드러났다. 드라이버샷이 오른쪽으로 밀린데 이어 롱아이언 어프로치샷은 그린에 못미친다. 3온2퍼트로 아멘코너의 관문을 보기로 장식했다.

12번홀(길이 145야드)에서도 그린 미스끝에 보기, 13번홀(파5·길이 455야드)에서는 세 번째 샷이 그린 앞 개울(래스 크릭)에 빠져 간단히 더블보기를 했다. 아멘 코너 세 홀을 ‘보기-보기-더블보기’(4오버파)로 마무리한 것. ‘아멘’이라도 외치고 싶다..

거장들의 자취를 찾아= 올해로 78회째 대회를 하는동안 마스터스는 수많은 일화와 스토리를 양산했다. 홀마다 환희와 눈물이 서려있고, 그에따른 얘깃거리가 있다. 2번홀(575야드)은 지난해 대회에서 루이 오이스투이젠(남아공)이 두 번째 샷을 홀에 넣어 알바트로스를 기록한 곳이다. 캐디경력 12년의 매트 퍼지(32)가 “이 곳"이라며 세컨드샷을 한 지점을 가리킨다.

10번홀(파4)은 2011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선두를 달리다가 트리플 보기로 좌절했고 2년전 버바 왓슨이 기막힌 리커버리샷으로 생애 처음 그린 재킷을 걸친 곳이다.11번홀에 다다르자 2004년 세컨드샷을 곧바로 홀에 넣어 이글을 최경주가 껑충껑충 뛰던 모습이 오버랩된다.

12번홀은 가장 짧은 홀이지만, 마스터스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프레드 커플스, 톰 와이스코프, 파머…. 13번홀은 필 미켈슨이 2010년 나무 사이에서 기막힌 6번아이언샷으로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던 곳이다.미켈슨은 올해는 1타차로 커트탈락했다.

15번홀(파5)에 다다라 세번째 샷을 할 즈음 캐디들이 “이 곳이 타이거 우즈가 드롭한 곳"이라고 일러준다. 지난해 우즈는 이 홀에서 오소에 드롭한후 스코어카드를 냈는데도 실격 대신 2벌타만 받아 논란이 됐다. 그린이 까다로운 16번홀(파3) 역시 우즈의 환희가 배어있다. 2005년 대회 때 그린 뒤편 러프에서 친 칩샷이 그린 경사를 타고 데굴데굴 굴러 홀로 떨어지자 포효한 그 홀이다.

17번홀(파4)은 지난 2월 ‘아이스 폭풍’이 몰아쳐 상징과도 같던 ‘아이젠하워 트리’를 앗아간 곳이다. 지금은 그 자취가 없어졌지만 골프장측에서 다른 나무를 심으려한다는 말도 들린다.

터널같은 나무숲 가운데로 티샷을 날려야 하는 18번홀(파4)에 다다랐다. 드라이버샷은 페어웨이 복판을 갈랐으나 스코어는 뜻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 홀에서 파를 기록하면, 설계가나 선수들이 화를 내기라도 한다는 것일까.

스코어에 신경쓰는 것 못지않게 코스 풍광을 감상하고 간간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며, 그린에서 3퍼트를 하는동안 18홀이 훌쩍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