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권혁기 기자 = 성폭행 범죄가 발생하면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고, 가해자를 피해야하고,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영화 ‘한공주’(감독 이수진)는 이 같은 일들을 정면으로 다루었다. 영화는 ‘시골 한 마을에서 집단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라고만 기술했지만, 내용은 누가봐도 밀양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지난 2003년 6월 울산에 살던 A양(당시 14세)이 채팅으로 박(당시 17세)을 알게 됐다.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던 A양은 이듬해 ‘한번 만나자’는 박의 말에 밀양으로 향했다. A양의 부모님은 이혼한 상황이었고 아버지는 가정폭력을 일삼던 알코올 중독자였다.

A양은 박으로부터 쇠파이프 세례를 받고 기절했다. 박은 친구들을 불렀고, 한 여인숙으로 끌려간 A양은 박을 포함한 12명으로부터 집단강간을 당했다. 캠코더와 휴대폰을 이용한 촬영도 자행됐다.
  동영상이 유포될까 두려웠던 A양은 근 1년간 누구에게도 하소연을 못하고 집단 성폭행과, 성고문까지 당했다. A양의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경찰에 신고를 했다.

A양을 상대로 조사에 나선 ‘남성’ 경찰관은 “네가 먼저 꼬리친 것 아니냐” “네가 밀양물을 다 흐려놓았다”라고 폭언을 했고, 피해자의 신원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피의자들의 부모가 A양을 찾아가는 일도 발생했다.

더 큰 문제가 일어났다. 집을 떠났던 A양의 아버지가 나타나 친권자 자격으로 A양에게 합의서와 탄원서에 서명을 하게 했고, 44명의 고등학생 측으로부터 5000만원의 합의금을 챙겼다.

피의자 44명 중 합의로 공소권이 상실된 인원은 14명, 소년원에 송치된 사람이 20명, 기소된 10명 중에 구속된 학생은 7명에 불과했다. 3명은 불구속 처리됐다.

‘한공주’는 이런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다. 한공주(천우희)는 끔찍한 일을 당하고 서울로 급하게 전학을 오게 된다. 여러 학교에서 거절을 당하고 전(前) 학교 교장의 부탁으로 한 학교에서 받아주게 되고 공주는 조용히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다.
  혼자 살고 있는 전 학교 담임 선생 어머니의 집에서 머물게 된 공주는 슈퍼마켓 일을 도와주며 조금씩 적응을 한다. 연락이 끊겼던 친 어머니를 찾아가지만, 아버지와 이혼하고 새 남자와 살고 있던 어머니는 공주의 방문이 반갑지 않았고, 공주는 외로움을 느낀다.

우연히 공주의 노래실력을 들은 같은 반 은희(정인선)는 공주에게 아카펠라 동아리에 들어올 것을 권유한다. 처음에는 귀찮게만 여겼지만 적극적인 은희의 애정표현에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공주의 음악적 재능을 알리고 싶었던 친구들은 공주의 영상을 연예기획사로 보냈고, 급기야 팬카페를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공주가 전 학교에서 어떤 끔찍한 일을 겪었는지 친구들이 알게 됐고, 급기야 피의자들의 부모가 학교로 찾아오는 일이 발생한다.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한공주의 한마디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잘못한 게 없는데 피해야하고, 숨어야하는 현실이. “그래. 너 잘못한 게 없는 것 알아. 그래도 그게 그런 게 아니야. 잘못을 안했다고 문제가 없는 게 아니고, 잘못을 했다고 해서, 그게 전부는 아니야”라는 담임의 말이.
  “저 무서워 죽겠어요”라는 공주의 말에 어느 누구 하나 손을 내밀지 않는 영화 속 상황이 현실과 다르지 않을까봐 마음이 아프다. 은희 같은 친구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실제 A양은 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해 일용직을 전전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의자들 대부분은 대학교에 진학하고, 일반적인 삶을 영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소년관람불가로 오는 17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