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해봐라”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질문
2014-04-09 16:00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은 생전에 계열사 사장들을 호출한 뒤 던진 첫마디가 이 말이었다고 한다.
앞뒤 설명 없는 직설적인 질문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당황할 게 뻔하다. “이야기해봐라”라는 여섯 글자에 숨어 있는 속뜻은 계열사 사장 또는 임원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에서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 무엇이고, 어떠한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지를 묻는 것이었다고 한다.
사장이 전하는 설명을 들은 뒤 이 회장은 다음으로, “왜 그런가?”,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또 질문했다. 다 듣고난 뒤에는 “그것만 하면 다 되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30년 넘게 삼성에 재직하며 그룹의 혁신과 성장을 주도했던 손욱 전 (주)농심 회장은 자신의 책 ‘십이지 경영학’에서 “이 회장이 이렇게 질문한 취지는 경영자라면 상황 분석을 올바로 해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핵심과제를 적어도 3개 정도는 항상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이를 해결할 비전과 전략을 설정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다”고 설명했다.
지난해부터 사업재편을 진행하고 있는 삼성그룹의 현 상황을 보면서 이 회장의 이 말이 다시화제가 되고 있다. 삼성의 사업재편은 언제 마무리 될 것인지, 어떻게 변화가 있을지 알 수 없다. 이는 이 회장이 던지는 “이야기해봐라”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해법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손 전 회장은 이 회장의 질문법이 미국의 찰스 벤자민 케프너와 트리고가 1958년에 전파한 ‘KT법’이라는 사고 기법과 유사하다고 강조했다. KT법은 △상황분석(SA: Situation Analysis) △문제분석(PA: Problem Analysis) △결정분석(DA: Decision Analysis) △잠재적 문제 분석(PPA: Potentional Problem Analysis)의 4단계로 사고 순서를 체계화한 것이다.
상황분석(SA)의 주체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과제는 무엇인가”이다. 문제분석(PA)은 “왜 그렇게 되었나=원인이 무엇인가”가 주제다. 결정분석(DA)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최적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과정이며, 잠재적 문제 분석(PPA)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며 그때 어떻게 하면 좋은가=실행상 리스크는 무엇이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다룬다.
이 회장의 “이야기해봐라” 문답법도 대화 흐름을 따라가 보면 KT법과 거의 비슷하다고 손 전 회장은 설명했다.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는 상황분석이다. “뭐가 문제인가”라는 질문이 문제분석이며, “어떻게 풀 것인가”는 결정분석에 해당한다. 특히 “그것만 하면 다 되냐”라는 물음이 가장 중요하다.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를 체크하는 과정을 통해 바로 잠재적 문제 분석을 실시하라는 것이다.
삼성은 1986년 KT법을 그룹 경영상황에 맞게 수정·보완해 ‘합리적 사고방식’(EMTP)이라는 교육 과정을 만들어 신임 초급간부에게 교육을 시키고 있다. 덕분에 삼성 경영자 대부분이 자연스럽게 경영 고수의 보편적 사고방식을 몸에 익힐 수 있었다고 한다.
이 회장의 질문은 삼성그룹 계열사 경영자들에게만 던지는 것이 아니다. 삼성그룹 계열사를 역임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삼성의 사업재편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계열사를 쪼개고, 합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말단 사원들도 ‘이야기해봐라’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룹 전 구성원이 상황을 파악해 위기의 실체를 인식하고 문제와 원인을 분석해 근본 대책을 세운 후 성공에 도달할 수 있도록 대책에 따른 실패를 예방할 수 있도록 의식을 바꾸는 것이 진정한 목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