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의 즐거운 고민, 車강판 시장 구도 급변

2014-04-02 17:12
현대·기아차, 현대제철·현대하이스코 비중 늘지만 포스코 제품 수입도 줄이지 않아
경쟁 장려 속에 최고 차 강판 욕심 드러내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현대로 할까, 포스코를 쓸까?”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에게 즐거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는 고객 포스코와 자신이 직접 키운 현대제철·현대하이스코가 현대차에 차 강판 공급을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을 빗댄 것이다. 자동차 강판을 골라 쓰는 재미를 즐기는 듯하다.

현대제철·현대하이스코에게 있어 포스코는 경쟁자이며, 반드시 넘어서야 할 목표다. 반면, 완성차 업체인 현대·기아자동차에게 있어 포스코는 최고 품질의 차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핵심 공급처다. 정 회장은 어느 쪽에도 손을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경쟁을 독려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애정을 갖고 키웠지만, 이 회사에만 올인하지 않는 것은 최고의 차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을 만들기 위해 내 자식만 편애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2일 현대하이스코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회사의 주요 매출처 중 최대 고객사를 현대자동차로 변경됐다. 현대하이스코의 최대 고객사가 현대차가 올라선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였다.

그동안 현대하이스코의 최대 고객사는 관계사인 삼우였다. 삼우는 현대하이스코의 스틸서비스센터(SSC) 중 하나로 현대하이스코로부터 냉연제품을 공급받아 이를 재가공해 현대차가 원하는 규격의 부품으로 만들어 납품해왔다. 그동안 현대하이스코 매출에서 삼우가 차지하는 비중은 9%에 달했다. 냉연부문을 현대제철에 넘기면서 현대하이스코와 현대차의 관계는 다소 멀어지지 않겠느냐는 전망까지 나왔다. 하지만 핫 스탬핑을 비롯한 차량 경량화 사업이 냉연사업의 뒤를 받쳐주면서 현대차와의 협력관계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현대제철은 2014년 목표로 한 강판 판매량 1970만t중 31%의 비중에 해당하는 610만여t을 냉연사업에서 이루겠다는 방침이며, 이 가운데 약 400만t은 현대차에 공급하는 차 강판이 차지할 것이라고 제시한 바 있다. 매출액 대비 5% 이상 비중을 차지하는 현대제철의 주요 고객사 명단에 현대·기아차가 등재될 시기도 그만큼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현대·기아차의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포스코의 공급 비중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포스코와의 거래를 급격히 줄이지 않고 있다. 포스코가 금감원에 제출한 2013년 사업보고서를 보면, 현대·기아차가 회사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대로 지난해와 동일한 비중을 유지했다. 금액면에서는 약간 줄었겠지만, 당장은 포스코가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수요처인 현대차의 공급선 다변화 정책과 더불어 포스코도 현대제철에서 개발하지 못한, 현대차가 해외 철강사에서 수입하는 강판을 개발하는 등 새로운 판로를 개척해 고객사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결과다.

이에 대해 경쟁체제 개편에 따른 긍정적 효과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완성차에 있어 가장 품질이 좋은 차 강판을 생산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정 회장은 현대제철·현대하이스코의 제품보다 더 좋은 품질이라면 포스코의 제품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실천하고 있으며, 이는 업체간 기술개발 의지를 북돋고 있다는 것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신형 제네시스와 쏘나타가 초고장력 강판 적용 비율을 높였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현대제철을 띄우기 위함이 아니다”라며, “정 회장의 경쟁 장려가 현대제철과 포스코에게 경쟁 심리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